우리 삶이 매 순간 막막한 이유

작은 용기를 내세요

by 글천개

즐거운 월요일인가요? 아니면 막막한 월요일인가요?


오늘은 막막함의 정체가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이 막막함을 극복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4년 전인 2015년도에 부산 국제여객선터미널에서 쾌속선(코비, 비수기에는 후쿠오카 왕복 3만 9천 원짜리 티켓도 있다)을 타고 후쿠오카에 간 적이 있습니다. 물 위로 떠서 가는 코비를 타고 후쿠오카까지 가는데 약 2시간 50분에서 3시간 정도 걸립니다.

미래고속 코비, 정말 바다위에 떠있다




뱃멀미가 있는 분은 되도록 항공편을 이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파도의 출렁거림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은 그 3시간이 생과 사의 공포를 줄 수 있기 때문인데요. 저도 배가 상하좌우로 심하게 움직일 때는 손에 식은땀이 났습니다.


무서운 건 둘째치고 배를 타고 부산 앞바다를 벗어나면 그때부터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저 망망대해. 넓디넓은 바다만 보일 뿐입니다. 여기서 막막함을 느낍니다. 끝을 알 수 없는 '아득하고 막연함'을 느끼는 것이지요. 그렇게 하염없이 가다 보면 무언가 서서히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목적지에 도착하게 됩니다.


2.png 망망대해





그런데 이렇게 코비를 두세 번 타고나면 막막함보다는 지루함이 생깁니다. 왜일까요? 어찌 됐건 3시간 정도면 이 넓디넓은 바다를 지나 다시 육지에 두 발을 디딜 것을 '확실히' 알게 됐기 때문입니다. 이 3시간짜리 여정에 대해서는 말입니다.


이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경험해보지 못한, 잘 모르는 어떤 일에서 오는 아득하고 막연함'이 우리에게 막막한 느낌을 줍니다.


우리는 쾌속선 코비를 타고 바다에 나가는 것보다 삶을 사는 내내 막막함을 느끼는 경우가 훨씬 더 많지요.


우리 삶이 바다보다 더 막막해 보이는 이유는 살면서 스스로 끊임없이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왜 우리 삶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일까요? 우리는 아무것도 아는 것 없이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한 치 앞도 알지 못한 채 어둠 속을 걷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경험을 통하지 않고는 그 어떤 것도 알 방법이 없습니다. 우리가 지금 아는 것도 전부 경험을 통해서 알게 된 것들입니다. 태어나면서부터 부모님이 극진히 보살펴주긴 했지만 결국 어느 시점이 되면 스스로 모든 것을 헤쳐나가야만 합니다. 프랑스에 대해 아무리 책을 보고 이야기를 듣고 TV로 접했다한들 한번 다녀온 사람만 못합니다. 어떤 일이든 직접 경험하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한계가 분명히 있습니다.


'획득 형질'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유전학적으로 획득 형질은 다음 세대에게 유전되지 않습니다(논란은 약간 있지만). 사람이 태어나서 배우고 알게 된 지식과 경험 즉 후천적으로 획득된 것들 중 그 무엇도 자식 세대에게 유전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인슈타인의 딸이라고 해서 출생 때부터 아버지인 아인슈타인의 과학지식과 경험을 갖고 태어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누가 됐든 스스로 공부하고 연구해야만 자신만의 경험과 지식을 가질 수 있습니다.


부모는 넘어져서 다쳐도 봤고, 수많은 실패도 해봤으며, 사회적으로 안정적인 선택(최선의 선택은 아닐지라도)이 어떤 것인지도 어렴풋이 알기 때문에 자식만큼은 그러지 않도록 잘 교육하지만 결국은 자식도 비슷한 경험을 통해 성장하게 됩니다. 굉장히 특별한 아이가 아닌 한 대다수가 겪을 일을 아이도 겪게 되는 것이지요.


다들 한 번쯤 이런 상상을 해본 경험이 있을 겁니다.


'지금 시점의 세상 경험과 생각을 고스란히 가지고 10년 전 혹은 20년 전 과거로 되돌아가고 싶다고. 그럼 더 좋은 선택을 했을 텐데, 공부를 더 열심히 했을 텐데' 등의 상상 말입니다. 이런 상상은 막막함 때문에 무언가 아쉬운 삶을 살아온 자신에 대한 회한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보다 10년 후 또는 20년 후의 내가 봤을 때도 마찬가지로 바로 지금이 그토록 바라던 '과거'일 수 있습니다. 막막한 삶이 이어진다면 세월이 지나도 변함없이 막막할 겁니다. 따라서 이런 상상이나 대화는 끝나지 않을 순환 논쟁일 뿐이지요.


3.png <영화 캐스트 어웨이의 마지막 장면, 세 갈래 길에 서있는 주인공>



더 이상 막막한 삶을 살지 않기 위한 출발점은, 내 남은 삶 동안 무엇에 집중할지 내 남은 인생은 어느 방향으로 갈지 결정하는 것입니다. 무언가의 끝은 몰라도 일단 확실한 출발점에 서있다면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막연함보다는 그것을 극복하는 열정이 횃불처럼 앞을 밝혀줄 테니까요.


저만해도 막연했던 과거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습니다. 하고 싶은 일들이 넘쳐납니다. 새로운 분야의 책을 내는 것과 강의활동 그리고 다양한 분야로의 진출이 그것이며 마음이 급합니다. 되고 안되고의 문제로 망설이는 일은 더 이상 없습니다. 부동산 개발 분야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하나의 분야를 잘하면 그게 허브가 되어 타 분야로의 확장은 훨씬 쉽다는 것을 느낍니다. 과거 직장 다닐 때는 느끼지 못했던 바쁨과 미래에 대한 설렘으로 가득합니다.


20~30대쯤 되면 자신이 더 이상 세상의 중심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슬픈 순간이 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성장하는 길을 택해야 합니다. 뻥 뚫린 시원한 삶을 사는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고자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시작점은 단 한 개의 전문 분야)를 깊이 파고 공부하여 전문성을 높입니다. 스스로 해야만 이런 것들을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압니다. '돈만 내면 다됩니다' 같은 감언이설에 속지 않습니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남이 절대 해줄 수도 없고 해 주어서도 안된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더 이상 막막함에 움츠러들거나 타인에게 의존한 나머지 타인의 지배를 받는 일도 없습니다.


지금 당장 할 일은 자신이 좋아하며 성장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 그리고 그 일에 도전하여 전문가가 될 때까지 스스로 끊임없이 공부하고 실천하고 개선하는 것입니다.


작은 용기를 내어 새로운 경험과 지식의 '획득'을 노리세요. 후대에 지식은 물려줄 수 없지만 크든 작든 당신의 업적은 후대까지 물려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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