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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물꽃 Nov 03. 2023

월말정산_10_01

도져버린 강박증

못난 나를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다. 그런 내 모습까지 인정해야 비로소 편해질 수 있는 건데도 외면하고 싶은 나와 인정하려는 내가 매번 부딪힌다.


10월엔 글을 거의 쓰지 못했다. 사실은 쓰지 않은 것에 더 가깝다. 연말이 다가오니 하니 왠지 무언가 증명해내야 할 것 같은 압박감에 시달렸다. 그동안 꾸준히 써오던 글도 들여다보기 싫을 만큼 부족한 것들만 보였다. 소설을 마주할 때마다 자꾸만 내 부족함을 들여다보는 거 같아서 한동안 피해버렸다. 제대로 마주해야 나아갈 수 있다는 걸 배웠으면서도 나는 아직도 겁이 많은 것 같다.


한동안은 글을 쓰지도 않으면서 자책만 했다. 또 익숙한 패턴으로 돌아가는구나. 이대로 아무것도 해내지 못할까봐 두려워지기도 했다. 하지만 올해까지 무언가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은 사실 스스로 만들어둔 기준일 뿐 절대적인 규칙 같은 게 아니었다. 내가 혼자서 나를 압박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결국은 쓰면 되는 일 아닌가 생각을 바꾸고 여유를 가지기로 했다. 당장이 아니더라도 어쨌든 완성을 시키면 되는 일.


당장 손에 잡히지 않으면 그렇게 시간을 보내보기로 했다. 글을 쓰지 않는 동안에는 책도 읽고 드라마도 보고 새로운 것들을 채워넣었다. 좋은 작품을 찾아보니 글을 쓰고 싶은 욕심이 다시 차오르기도 했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했다. 계속해서 써지는 날이 있는가 하면 잠시 떠나 있고 싶을 때도 있는 거야. 하며 나름의 자기 합리화 중이다. 


강박증이 다시 도진 일도 있었다. 나는 특별한 날, 단 한번뿐인, 그런 키워드가 있으면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이 심하다. 올해는 그렇게 미쳐있던 순간이 없었어서 내가 잘 조절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특별한 일정이 없었을 뿐이지 아직 강박이 사라진 게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다. 언니의 결혼식이 다가오면서부터였다.


사실 언니가 결혼하겠다고 알린 건 작년이었기 때문에 그동안 충분히 적응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결혼식이 당장 이번주 일로 다가오니 내 강박증은 온갖 군데에서 도졌다. 맨 처음 꽂혔던 건 축사였다. 직장 동료 결혼식에서 축사하는 모습을 보고 감동을 받았던 내가 언니에게 필요하면 말하라고 이야기했다. 언니는 당장에 그 제안을 수락했고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축사를 준비하게 됐다.


결혼식 3달도 전에 이미 축사 초안을 작성해뒀지만 날짜가 다가오니 왠지 부족해보였다.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축사를 준비해야 될 거 같다는 압박감에 시달리며 매일밤마다 글을 수정했다. 사실 어떤 글이든 잘 보이려는 척하는 글은 진심을 담은 글을 이길 수 없다. 그럴듯해 보이는 글을 꾸며내봐도 마음을 녹여냈던 초안을 이길 수가 없었다. 


그 정도로 충분한데도 계속 뜯어고치면서 불안해만 하고 있다가 나를 알아차렸다. 내가 또 엄한 거에 집착하고 있구나. 사실은 완벽하다는 축사라는 건 결국 언니에게 진심이 전달되면 그만인데 나는 내 욕심 때문에 존재하지도 않을 완벽을 찾아서 목을 조르고 있었다. 이제 그만 숨통을 놓아주고 즐기기로 했다. 단 한번뿐인 언니의 결혼식에서 언니를 축하할 수 있는 이 기회를 즐기자고.


하지만 그 다짐을 하기가 무섭게 불안은 극단으로 치달았다. 결혼식을 앞두고 눈썹 왁싱샵을 방문했다. 사실은 샵에서 메이크업을 할 예정이었으니 굳이 신부 동생이 왁싱을 할 필요까진 없었다. 그런데도 왠지 메이크업을 하더라도 눈썹 왁싱까지 완벽하게 되어있어야 할 것만 같았다. 혹시나 이상해지면 어떡하지 그런 불안함도 있었지만 오히려 준비를 안한 쪽이 더 불안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약일이 됐는데도 왠지 불안함이 가시질 않았다. 지금 와서 취소하면 예약금을 환불받지도 못하니 그대로 찾아갔다. 샵에 들어가서 이번주에 결혼식이 있는데 오늘 왁싱해도 괜찮은지부터 물었고 원장님은 상관없다고 말했다. 저번에 방문했었을 때는 원하는 디자인을 상세하게 물었지만 이번엔 그렇지 않았다. 기록이 남아있는 것 같았고 나는 굳이 설명하지 않고 그대로 시술을 받았다. 


왁싱이 끝났을 때 거울을 받아 들고 뭔가 잘못됐다고 느꼈다. 정리한 수준이 아니라 눈썹 아치 부분까지 모두 뜯어내서 완전히 인상이 달라져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엔 정확히 어디가 잘못됐는지 알아차리지 못했고 괜찮겠지 하고선 샵을 나와버렸다. 갑자기 찾아온 다음 손님 때문에 급하게 나가야 한다는 혼자만의 압박감이 있기도 했다.


그리고 집에 와서 찬찬히 들여다보는데 지금 이 사태는 완벽한 결혼식을 앞두고 벌어진 초대형 사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들에게 사진을 보내고 반응을 들어도, 언니와 엄마에게 물어봐도 역시 왁싱을 하지 않는 편이 더 나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내 강박증은 이때부터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완전히 눈썹에 꽂혀버린 것이다.


메이크업으로 수정을 한다고 해도 원래 있던 눈썹을 망쳐버린 게 너무 속상했다. 원하는 대로 해주지 않은 샵에 대한 원망도 있었지만 가장 큰 건 나를 향한 원망이었다. 왜 굳이 안해도 될 왁싱을 해서 이 사단을 만든 건지, 이번에야말로 중요한 때였는데 왜 제대로 원하는 걸 설명하지 않은 건지, 마음에 들지 않으면서도 샵에서 한마디도 못하고 나온 건지 그 모든 내가 너무 답답하고 화가 났다. 사실은 샵에 대한 짜증보다도 나에 대한 짜증이 더 크다는 걸 깨달았다. 


분노와 원망으로 매몰된 밤을 보내는 동안 천천히 호흡을 정리했다. 내가 왜 불편함을 느끼는지 피하지 않고 들여다봤다. 언니의 완벽한 결혼이라는 키워드로 가장하긴 했지만 그 내면은 스스로 완벽해지고픈 욕심 때문이었다. 불만을 표출했을 때 상대와 불편함을 빚을 상황을 피하려고 도망쳐버린 내가 싫어서 그렇게 화를 불태운 거였다.


그 마음을 알아차리자 벌렁거렸던 심장도 조금은 진정되기 시작했다. 우선 말을 정리해 메시지를 보냈다. 감정적으로 불만을 표출하기보다는 정확히 어떤 점에서 불만을 느끼는지, 수정받을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정확한 요구를 담았다. 다행히 원장님도 잘못된 점을 알아차리고 사과해주셨고 다음번에 무료로 시술받는 정도로 마무리하게 됐다. 내가 걱정한 것처럼 원장님과 언성을 높이거나 얼굴을 붉히는 일은 없었다. 


나는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은 되도록 만나지 않는 편이다. 불편해질 상황이 싫어 미리 피해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그게 나에게도 적용된다면 좀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불편함이 생기는 상황은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는 거고 내가 모든 상황을 통제할 수는 없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건 오직 내 마음뿐이다. 


난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매일 몇천 자나 되는 글을 꼬박꼬박 써낼 수 있는 사람이 아니고 언니처럼 본인의 결혼식인데도 여유롭게 마음을 비우는 사람도 아니다. 게으르기도 하고 조급하기도 한 내 모습들이 분명 피하고 싶은 부분이긴 하지만 그걸 부정한다고 바로 떼낼 수도 없는 일이다. 성실하지 않아도 끈기가 있는 사람이고 조급한 만큼 신중하기도 하다. 


총체적으로 본다면 나도 꽤 괜찮은 사람이다. 싫어하는 면에 꽂혀서 그걸 부정하느라 애쓰는 대신 전체적인 모습을 보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가 생겼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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