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물꽃 Feb 02. 2024

트라우마_46

기억을 열지 못한 이유

회사를 그만두고 영화를 만들어보기로 했다. 그동안은 단편영화를 만드는 강의를 수강하려 해도 모아둔 돈이 없거나 시간이 없거나 둘 중 하나였는데 이번엔 의도치 않게 모두 준비가 돼있었다. 늘 하고 싶던 일이고 회사를 다니면서도 기획제작팀이 맞지 않는 거 같아 고민했으니 더 좋은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좋아하는 일을 내 돈으로 해보려는 데도 나는 죄책감을 가졌다. 이래도 되나 하는 질문이 매일 나를 짓눌렀다.


사실은 회사를 다니면서도 주말 동안은 단편영화를 만들었다. 적은 예산이었고 영화를 처음 만들어보는 사람들이 모여 작업하다보니 만드는 과정이 시끄러웠다. 결국 내가 아이디어를 낸 이야기를 가지고도 전혀 원하지 않는 대본에 마음에 들지 않는 영상을 받았다. 후회가 많이 남았고 온전히 내가 책임지는 작업을 해보고 싶어 도전하려는 마음도 있었다. 이렇게까지 만들어보고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건 내 잘못이라고 인정하길 바랬다. 더 해볼 건지 그만둘 건지 그 갈림길에 서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내 상황이 나빠지니 아빠의 사업이 잘 풀렸다. 덕분에 아주 오랫동안 우울해보이던 아빠의 표정이 좋아졌다. 가족들과 대화도 더 자주 하려 하고 무엇보다 자신감이 넘쳐보였다. 내가 말라가더라도 아빠가 좋아지면 그걸로 됐다고도 생각했다. 엄마는 내가 회사에 들어가고 종종 이제 더 바랄 게 없다고 말했다. 언니도 나도 직장생활을 한다는 전제가 붙은 행복이었다. 엄마의 행복을 지키기 위해 회사에서 꾸역꾸역 버텼는데 결국은 그 행복을 깨버린 거 같아 미안했다. 나는 자꾸 내 행복도 챙기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을 만족시키려고 눈치 보며 애를 썼다.  


흔들리는 순간에 도움이 된 건 아빠의 말이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영화를 만들어볼 거라는 말에 아빠는 하고 싶은 걸 해보는 거니 잘됐다고 말했다. 아빠 사업이 좋아지고 있으니 도움이 필요하면 말하라고도 했다. 아마도 나는 자존심 때문에 혹은 죄책감 때문에 아빠에게 손을 벌리진 못하겠지만 그 말이 아주 많이 고마웠다. “좋아하는 걸 모르는 게 슬픈 거야.” 아빠가 해줬던 이 말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도 된다는 허락 같았다. 행복해지는 게 겁날 때마다 이 말을 떠올리고 가슴에 새겼다. 


이 무렵 오랜만에 함께한 가족 식사에서 아빠는 과거 일들을 이야기해줬다. 사업이 힘들었을 때에 대형 트럭을 운전하다가 사고가 날 뻔했던 이야기는 언니도 나도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그동안 쌓아뒀던 감정을 하나씩 풀어내는 것처럼 아빠는 언니와 나에 대한 미안함과 사랑을 말해줬다. 아빠에게는 언니와 내가 1순위라는 말을 했을 때 난 생각할 새도 없이 눈물이 고였다. 아빠에게 늘 짐이라고 생각해 존재만으로도 죄책감을 느끼던 내가 사실은 사랑이었다니. 다행이었다. 오랫동안 대화가 없던 우리 집이 다시 온기를 띄고 있었다. 


불안함이 찾아든 건 어떤 기억을 떠올렸기 때문이었다. 


단편영화를 찍었던 건 대학에서 연출을 전공했던 것만큼이나 큰 전환점이 됐다. 정말로 내 이야기를 쓰게 됐기 때문이다. 내 경험을 헤집어가며 이야깃거리를 찾았다. 그리고 그 기억이 떠올랐다. 아주 어릴 때, 아마도 내가 한 11살쯤 되었을 때 집안에서 큰 소리가 났다. 엄마와 아빠가 안방에 들어가 문을 잠갔고 큰아빠와 큰엄마가 집에 찾아와 안방에 들어갔던 기억이다. 어떻게 이걸 잊고 살았지? 할 정도로 자연스럽게 떠오르면서도 잊고 있었다는 사실에 놀랐다. 


아마도 그 일이 트라우마와 연관되어 있을 거라고 은연중에 느꼈다. 하지만 별 거 아니길 바라기도 했다. 단편영화 시나리오를 구상하며 그 일로 이야기를 써보기도 했지만 완성하고서 가족들에게 보여줄 자신이 없었다. 이 기억을 꺼내면 파장이 일어날 거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결국은 이야기를 바꿔 장녀 이야기를 하게 됐는데 언니를 인터뷰하던 날 아무렇지 않게 이 일에 대해서 물었다. 만약 언니가 말해준다면 정말로 별 거 아니었음을 알게 될 거 같았다. 그리고 안도할 수 있을 거 같았다.


기대와는 달리 언니는 내게 말해줄 수 없다며 그 일을 알려주지 않았다. 이미 20년도 지난 일이었는데 입을 열지 못했다. 그 이유를 “네가 구김살 없이 자라기를 바래서.”라고 말했다.


내가 11살이었다면 언니는 고작 14살이었다. 나만큼이나 어렸던 그 아이가 3살 차이 나는 동생에게 지키려던 그 마음이 너무 아팠다. 어린 나이에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게 미안하기도 했다. 엄마도 아빠도 갖지 못한 책임감이었다. 언니가 나를 지켜준 시간만큼 나는 이 기억을 열지 않기로 결심했다. 절대로 누군가에게 털어놓지 않을 거라 다짐했다. 그러면 이대로 우리 가족의 화목을 잘 지킬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진실을 마주하지 않으면 결국은 탈이 난다. 앞으로 벌어진 모든 일은 그 진실을 직면하는 과정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자기소개서_0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