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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물꽃 Feb 05. 2024

후각_03

끝이 없는 재활 훈련

대학병원에 다녀온 후기를 말하자면 결론은 방법이 없다는 이야기였다. 병원에 간 건 지난달이었지만 이제야 글을 쓰는 것도 이 사실을 완전히 받아들이는 게 어려웠기 때문이다. 사실은 대학병원에 가보면 뭔가 다른 방법을 찾을 수도 있을 거란 기대에 더 긍정적인 마음을 가져보려 했다. 하지만 약을 써도 별로 효과가 없었고 결국은 혼자서 후각 재활훈련을 하는 것 밖에 방법이 없다고 하자 다시 불안함이 찾아왔다.


발가락이 부러졌을 때도 한동안 우울했던 건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발가락 뼈가 부러진 부분이 관절과 맞닿아 있다 보니 앞으로는 자주 아프게 될지 모른다고 했다. 하필이면 다른 스태프의 잘못으로 벌어진 일이니 자주 화가 나기도 했다. 왜 그 사람 때문에 내가 피해를 받아야 하는 걸까. 아플 때마다 그 사람을 원망할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뼈가 거의 다 붙어갈 무렵에도 엄지발가락은 전처럼 구부려지지 않았다. 다치지 않은 쪽과 비교해보면 확연한 차이가 있었고 나는 그 차이를 볼 때마다 전에 있던 무언가를 잃어버린 거 같아 마음이 크게 상했다. 가장 익숙했던 내 몸에서 일어난 변화는 변수를 극도로 싫어하는 내게 큰 재앙 같았다. 다시는 원래대로 돌아갈 수 없겠다는 생각 때문에 발가락을 더 구부리지 못했고 이대로 굳게 될 까봐 불안했다. 


재활훈련을 열심히 했던 건 의사 선생님의 말 때문이었다. 어떻게 하면 전처럼 구부릴 수 있냐는 말에 그때도 선생님은 매일 같이 발가락을 조금씩 구부려보며 훈련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부러졌던 기억과 부러진 발로 움직였던 고통을 기억하다보니 내 손으로 발을 구부리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고통을 마주하는 게 무서웠다. 하지만 선생님은 “뼈는 거의 다 붙었으니 구부리는 걸로 절대 부러지지 않아요.” 하고 말했다. 나는 그 말에 힘을 얻었다.


생각해보면 가장 단순한 방법으로 다시 훈련에 임했다. 아팠던 기억 때문에 구부리면서도 겁을 먹을 때가 있었지만 선생님의 말을 떠올렸다. 다시 부러지지 않는다. 그 말이 내게 안전장치라도 된 건지 확연히 달라진 마음가짐으로 재환훈련을 해낼 수 있었다. 이미 손가락이 부러져봤던 친구도 재활훈련을 해봤지만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았다며 불안하게 하기도 했지만 나는 어느 정도에서 멈추고 싶지 않았다. 내 손으로 할 수 있다면 내가 해내야만 했다.


무서움을 뛰어넘어 좀 더 힘을 주고 발가락을 구부렸다. 발가락으로 수건을 집는다든지 하는 행동도 전에는 문제 없는 일이었지만 이젠 어려운 일이 돼버렸다. 그래도 매일같이 연습했다. 아직 끝도 보지 않은 상황에 이대로 결론을 짓고 싶지 않았다. 이제는 부러졌다고 말하지 않으면 눈치채지 못할 만큼 완전하게 돌아왔고 그건 분명 불안함을 마주하며 내가 얻고 싶은 회복에만 힘썼기 때문일 것이다.


후각훈련이 더 어려운 건 눈에 보이는 성과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손으로 직접 누르고 움직이며 눈에 보이는 변화를 확인할 수 있었던 발가락과 달리 후각 훈련은 이미지를 그리는 거 같은 행위에 가깝다. 4개의 향으로 구성된 키트를 코에 대고 냄새를 떠올리는 것으로 후각세포를 자극하는 것인데 향을 맡을 수 있는 날도 있지만 맡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당장으로선 냄새가 나지 않아도 그 향을 기억하며 머리로 떠올리며 재활 훈련을 하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럴 때면 마음속에 불안함이 가득 차오른다. 


아마도 재활훈련이라는 건 몸에 일어난 변화를 회복하는 것만큼이나 그로 인해 야기된 불안함을 함께 다스려가는 과정이 아닐까 생각한다. 다시 원래대로 돌아올 수 있을지, 돌아온다면 어느 정도까지 회복할 수 있을지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언제까지 해보고 끝이다 하는 기간도 정해져 있지 않다 보니 결국은 내가 그 불안함을 계속 뚫고 가며 훈련을 해나가야만 한다.


병원에서는 일단 최대 1년이 걸릴 수도 있다고 말했고 후각을 잃은 게 12월이었으니 연말이 되어봐야만 회복 정도를 확인할 수가 있을 거 같다. 긍정적인 마인드를 계속 유지하고 싶었으나 사실은 쉽지 않다. 후각 키트로 훈련하는 순간에도, 음식을 먹거나 어떤 장소에 갔을 때 냄새를 맡지 못하는 걸 자각하는 게 두려워 아직은 그 상황을 피하기도 한다. 그건 아마도 영원히 이대로 머무를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불안함도 두려움도 모두 내가 느끼는 감정이 맞긴 하지만 그래도 그 모든 감정을 뚫고 나가봐야겠다. 부러진 발가락도, 끝이 안 보이던 공황장애도 기대하지 못한 정도로 모두 회복시켰던 나니까 지금 믿을 곳은 오직 나뿐이다. 절대 부러지지 않는다던 의사 선생님의 말에 힘을 내봤듯이 이번엔 1년이면 대부분 회복할 수 있다던 의사 선생님의 말을 믿어봐야겠다. 재활 훈련을 끝냈을 땐 불안함도 더 잘 다스릴 수 있는 상태가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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