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날에 비가 오는 건 오늘의 운세를 다썼기 때문

쓸모없는 초능력 일기 16.

by 김라면


비가 내렸다. 예쁘게 한들한들 흔들리며 떨어지는 게 아니라 아주 억수같이 퍼부었다. 우산에 맞부딪히는 빗줄기는 폭포와 같은 소리를 냈다. 하늘은 저녁무렵처럼 캄캄했고, 걸어다니는 사람도 많지 않아 이어폰을 빼면 온몸가득 빗소리가 울리는 기분이었다.

정한은 질척이는 바짓단을 슬쩍 걷어올리며 다시 걸음을 내딛었다. 구두는 엉망이 된 지 오래였으나,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엊저녁. 그들의 아지트에 누워 종이를 뒤적이는 차에 동훈이 말을 건넸다.


그러고보니, 김정한, 내일 면접이랬나.


그 한마디에 방 안에 있던 여럿이 장난기 가득하게 몰려왔다. 이런 시커먼 눈빛들을 봤나. 대뜸 정한의 손에 들려있던 스크립트를 낚아채더니 흠흠-하고 목소리를 가다듬는다.


자네, 이 회사에 왜 지원했나.

그렇게 묻는 면접관이 어딨어? 내가 할 테니까 잘 봐. 1분 동안 자기소개 해주세요.

요즘은 압박면접이 대세라니까. 더 위엄있게 해봐.


정한은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느라 종이를 내놓으라고 말할 여력도 없이 바닥에 늘어졌고, 그런 그를 아는지 모르는지 친구들은 저들끼리 스크립트를 집어들고 앵알거리더니 어느새 만담을 펼치고 있었다.


우리가 이래봐야 쟤가 면접 망하는 데는 늘 이유가 있잖아.

그치. 뭐, 그탓이라고 말하는 게 편하긴 하지만 꼭 그것때문일까?

이런 나쁜 녀석같으니. 쟤, 가루 되겠다.


그랬다. 정한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드는 건 내일 있을 면접과 그를 압박할 질문들이 아니었다. 그 이전에 닥칠….


“내일 비 오겠네. 우산 챙겨야겠다.”


상황이 문제였지.



쓸없능. 모든 사람이 쓸모없는 초능력 하나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회. 정한은 누구보다 자신의 능력이 미웠다. 그래. 쓸모없다못해, 미웠다.


그의 능력은 중요한 날에 비가 쏟아지는 능력. 그탓에 꼭 일을 처리하기 전부터 몸과 마음이 지쳐버리는 것이 일상이었다. 왜 하필이면 이런 능력을 가지게 된 건지.


한숨을 푹 내쉬고 있는데, 침대에서 휴대폰게임을 하고 있던 서빈이 심상하게 말을 던졌다.


오히려 좋을 지도 모르지.


그 심상한 말이 만담소리를 덮었다.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 말라는 핀잔이 침대 위로 날아들었다.


“왜, 그렇잖아. 어떻게 보면 안좋은 운은 하늘이 다 써준다는 거잖아? 비 좀 맞고 남는 것이 행운이라면, 중요한 일정은 행운만 가득한 채로 임할 수 있다는 소리지.”



그 뒤의 상황은 잘 모르겠다. 서빈 녀석이 또 징그러운 소리 한다며 온갖 물건을 던져대는 난리통에서 종이를 낚아챘던가. 다시 바닥에 드러누워 중얼중얼 대답을 외었던가.


어찌되었건 오늘. 정한은 찰방이는 빗속을 걸었다. 정장 바지의 반절이 젖었어도, 나쁜 운은 하늘이 다 써주리라 믿으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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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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