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중입니다

이 아픔도 지나가리라

by 녕이담

2월 설명절을 앞두고 중심정맥관 케모포트 삽입 부위 피부에 문제가 생겼다.

반복된 바늘 삽입으로 약해진 피부는 변형이 일어났고 연해진 피부는 결국 작은 구멍이 났다.


이 일을 어쩌지...

침출물이 묻어나는 피부를 매일 소독하고 의료진께 보일 사진을 남기면서 조마조마한 마음을 애써 묻어두었다.

다른 부위로 새로 심어야겠다 싶어서 수술 날을 잡았지만 생각보다 먼 날짜로 그 사이 노출된 부위의 감염 걱정에

심지어 하필이면 중요한 일들을 코앞에 앞두고 있던 터라 바로 입원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래도 어찌저찌 2월 일정을 잘 마무리 지었다.

3월 연휴가 끝나고 첫날, 외래 진료 후 주진료과에 말씀드리고 입원 결정 되었다. 수술하면 적어도 1,2주 동안은 힘을 쓰면 안돼서 미리 수액을 받았다. 13박스- 대략 115킬로 정도 되는 분량을 집으로 보내고 입원 병동으로 향했다.


늘 그렇듯 익숙하게 수술 전 검사들을 시행하고 저녁이 되자 다행히 수술이 다음날로 잡히게 되었다. 나와 같이 정맥영양으로 생명을 이어가는 이에게 있어 그 부위의 문제는 사실상 응급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수술과에서도 감사하게 시간을 내어주신 것이다.


다음 날,

저녁 시간이 되어서야 수술이 가능할 거라 아침을 가볍게 먹고 금식과 함께 기나긴 기다림의 시간이 시작됐다.

이 지루한 시간을 어찌해야 할지 걱정과는 달리 외래 진료가 있다며 연락해주신 우리 환우, 보호자분들 덕에 잠시 웃고 떠드느라 시간을 재지 않을 수 있었다.


타과 진료도 잠시 보고 수술 동의서를 쓰며 이젠 긴장감도 없이 익숙해진 행위에 피식 웃어버렸다.


일찍 해도 6시는 넘겠지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앞 수술이 길어져 9시가 되어서야 수술장으로 내려갔다.

같은 층에 수술장, 검사실, 중환자실이 있어 낮에는 오가는 이들로 왁자지껄한 이곳도 그 시간에는 고요함만으로 가득 차 있었다.


대기하면서 티브이에서 나오는 어린이 프로그램을 멍청히 응시하다 무념무상의 상태로 있었다. 잠시 후 수술장 간호사님이 환자 확인을 하시고 담당 교수님과 잠시 수술 부위 확인을 하고 난 후 날 실은 침대는 수술장으로 이동했다.

흘깃 본 시계의 분침은 4를 가리켜 어느새 오후 9시 20분을 지나고 있었다.


소독약 냄새가 나는, 누군가는 평생 드라마로만 접할 수술방 방문은 몇 번째인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익숙하게 욕창방지가 깔린 푹신한 수술 침대로 옮겨가 눕자 팔에 혈압 커프, 손가락에 산소포화도, 가슴팍은 심전도에 머리까지 덕지덕지 온갖 선이 붙는다.


늦은 시간에도 빠르게 질서 정연히 준비해 주시는 선생님들을 보다 마취약 투여한 지 3초나 5초쯤 지나자 의식의 신호가 스르르 차단되었다.


띠- 눈을 뜨기 전 매번 익숙한 기계소리가 의식을 반겨주곤 한다. 살아있음을 알리는 소리.

팔이 조여 오고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아, 회복실이구나'

산소마스크가 씌워져서 나는 고무 냄새와 마취 가스의 냄새가 숨결에 뒤섞임을 느끼며 눈꺼풀을 애써 밀어 올렸다.


눈앞이 흐려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새 한 시간이 지난 걸 알 수 있었다. 이전에는 추위를 많이 타서 깨고 힘들어했는데 이번에는 워머를 틀어주셔서 춥지 않은 채로 덥혀진 몸으로 서서히 시야가 돌아왔다.


옆에서 상태를 봐주고 계시던 회복실 간호사님이 병동 이송 준비를 해주시고 다른 환자가 들어오자 그쪽으로 가시는 걸 보며 이 시간에도 다들 고생이 많으시구나 생각했다.


어린이병원 특유의 아이들이 빽빽 목이 쉬는 소리를 들으며 조금 전 고요함도 좋지만 보다 인간적인 생기를 느낄 수 있었다.


병동에 올라와 바로 TPN(정맥영양제재)을 하기 위해 바늘을 꽂으려니 상처 부위에서 피가 스멀스멀 나오고 있었다. 벌써 20여 녀간 해온 행위는 시간이 갈수록 신체가 무덤덤한 나의 마음과 달리 버텨냄을 버거워하는 것으로 보인다.

소독솜으로 꾹꾹 지혈하고, 이물질 삽입으로 잔뜩 성나 통증으로 아파왔지만 정 못 참을 정도는 아니라 주먹을 꼬옥 쥐고 무사히 바늘을 꽂았다.

간호사 선생님께서 주렁주렁 4개의 수액을 얇은 줄에 연결해 주시며 드디어 끝났다.


길고 길었던 하루는 자정을 앞두고 꽉 채워 마무리되었다.

수술장 들어가기 전 원래 구멍 나있던 왼쪽 살은 케모포트 제거 후 꿰매어졌고, 오른쪽은 새로운 절개선이 목과 가슴팍에 다시 생겨났다.


옷으로 가려지면 누구도 모를 아픔은 또 시간이 가면 좋아지리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안다. 그마저도 익숙해지는 이 삶을 그저 무사히 연명해 나가기를 바라며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