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적 스물다섯이야?
병원이라는 한 장소에서 마을 주민처럼 긴 시간을 보내다 보니 인연을 맺어 긴 시간을 알아가는 이들 또한 점점 늘어가게 된다.
다들 친구, 언니, 오빠, 동생의 형태가 되어서 관계를 이어나가는 존재들. 시간이 흐르는만큼 사람도 늘다 보니 본의 아니게 흑역사를 공유하기도 하고 여러 기억과 추억을 공유하기도 한다. 함께 나이를 먹고 성장해 나가는 모습들을 봐오다 보면 아무래도 여러 이야기들이 쌓이게 된다.
작년 겨울.
생일을 맞이한 날이었는데, 집에 있다가 점심 즈음부터 묘하게 몸 상태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그날은 좀 쉬어야겠다고 생각해 휴식을 취했다.
그런데도 매 시각이 지날 때때마다 점점 속이 안 좋아지면서 구토가 시작되고 복통과 혈변까지 생기기 시작하면서 몇 시간 사이에 상태가 급격히 악화되면서 위기감을 느꼈다.
이전에도 몇 번의 위기가 올 때마다 머릿속에 울리던 경종이 이번에는 유독 요란스럽게 울렸다.
생일을 축하하려고 전화했던 지인이 '하필이면 생일날 아프냐'라고 걱정하는 전화를 간신히 마치고 끊자마자 벼락같은 복통이 참아와 바닥을 구르기 시작했다.
온통 식은땀을 흘리 대며 견디기 힘든 통증에 근무중일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연결이 되지 않았고,
결국 처음으로 직접 119에 전화를 했는데, 상태를 묻는 말에 답을 해야 하는데 온몸이 덜덜 떨려와 도무지 생각과 말이 이어져 나오지 않았다.
겨우겨우 힘을 다해 입을 움직여 간신히 전화를 마칠 수 있었다.
얼마만큼의 시간이 흘렀는지,
단 1초도 1시간 같이 길게 느껴졌다.
빨리 시간이 가기만을 바라며
이를 악물고 버텨내 드디어 출동한 구급대원들이 도착했고, 활력징후를 재고 기본적인 부분을 체크 후 몸에 연결된 수액을 챙겨 움직일 수 있을 때 싸두었던 캐리어까지 챙겨 이송을 해주셨다.
빙글빙글 온통 어지러운 세상.
내뱉는 숨이 귓가에 아른거렸다.
다니던 병원으로는 위치상 지역을 넘어갈 수가 없어서 구급대원 분이 근처 병원에 연락 후 이송을 진행해 주셨고,
정신이 없는 와중에 신원 확인을 위해 여기 저기서 거듭 묻는 말에 도무지 대답할 여력이 없어 차라리 정신을 잃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웃프게도 아플 때마다 정신을 잃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은 복일까 화일까.
초진 진료 환자라 진통제를 투여하기 전 여러 가지 확인 과정이 필요해 검사를 진행했다. 지속되는 통증에 일분일초가 너무 괴롭고 길었다.
그 사이 연락받은 엄마가 서둘러 달려 오셨지만, 누군가가 옆에 있다고 그 고통이 덜어지지는 않았던 터라 계속 이어지는 고통은 온전한 나의 몫일 수밖에 없었다.
응급실에서 입원을 하는 게 좋겠다고 판단을 내리고 일반 병실로 옮겨와 간격마다 통증 조절을 위해
진통제를 투여해 주셨고, 복통을 줄이고 감압을 위해 콧줄이 걸렸다.
그럼에도 생각보다 큰 호전이 없어 밤새 통증으로 인해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다음 날이 되어 기존 치료받던 병원에 연락이 닿아
상태에 대한 상황을 설명하고,
입원 중인 담당의에게 옮겨 가겠다는 의사를 전달 후 허락을 받아 퇴원을 진행하였다.
일 때문에 같이 갈 수 없던 엄마가 택시에 몸을 싣는 나를 보며 심난해하며 돌아서는 모습을 차 안에서 바라봤다.
병원으로 이동하는 동안 구토하면 어쩌지? 걱정과 시시각각 잊지 말라는 듯 존재감을 알리는 통증을 꾹꾹 눌러 참으며 간신히 도착한 병원.
어디로 가야 할지 절차 합의가 안되어 배를 잡고 짐과 이리저리 헤맸다. 슬슬 한계에 이를 즈음
보안 업체 분들이 내 상태를 보시고
휠체어로 태워 목적지로 이송해 주셨다.
어찌저찌 어렵사리 입원이 진행 되어 간신히 병동으로 올 수 있었다.
마침 응급실 근무 중이었던 친한 언니가 내가 온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가 뒤늦게 알고 나를 찾았지만
만나지 못해 연락이 왔다.
'어린이병동으로 다니는 성인 환자가 온다고 했었는데 스물다섯 정도라고 해서 네가 아닌 줄 알았어!'
한숨도 잠들지 못해 정신없던 와중에도 그 이야기에 처음으로 웃음이 나왔다.
'그러게요. 언제 적 스물다섯이람?'
그 이후에 휘몰아쳤던 고통의 시간과 응급 수술 등
여러 가지 일들이 많았지만, 결국 모든 것은 지나가게 되어
두 달 후 퇴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로부터 몇 달이 흐르는 동안 일상과 시간에 묻혀 그 일들도 어느새 잊히고 있었다.
그러다 며칠 전, 미팅이 있어 출근 준비를 하다가 메모할 공책이 필요해서 챙겨가려 첫 장을 펼쳤다. 처음 먹는 약을 기록하곤 했던 습관이 있어서 예전에 처방된 약의 라벨을 모아 붙여두던 페이지가 나왔다.
그 라벨에는 환자 번호, 이름, 나이, 처방일 같은 내용이 있어서 당시 만 24세 때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그걸 보자 떠오른 한 마디에 웃음이 터졌다.
"진짜 언제 적 스물다섯이야!"
그 에피소드를 알던 친한 언니에게 이 이야기를 전하자 다시 그때가 떠올라 우리는 웃음을 터뜨렸다.
극악무도하던 통증이 닥쳐 영원하거나 이 순간이 마지막 삶 같았던 그때도 지나가고, 이렇게 작은 일들이 모여 다시 웃을 수 있게 해 준다.
이런 별거 아닌 사소한 것들.
하나 둘씩
또 어떤 이야기들이 쌓여갈까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