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였나, 아니면 소셜 미디어에서 우연히 알게된 신간이다. ’죽음’과 관련된 주제는 항상 나의 관심을 끌었고, 더불어 내가 치료받고 있는 서울대병원 종양내과 교수님이 쓴 책이라 더더욱 궁금했다. 책을 사놓고는 바로 읽지 못했다. 여러가지 일이 있어서 차일피일 밀었는데,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때마침 5차 항암에 들어가고, 긴 항암 주사를 맞으면서 병실에서 다 읽었다.
독후감을 쓰려 김범석 교수님을 조금 더 알아보니, 놀랍게도 내가 자주 들리던 블로그의 주인장이였다. 그의 블로그에서 여러 글들에 공감했었던 나이기에 그의 책이 이질감없이 재미있게 읽혔다. 물론 그는 유퀴즈에도 나왔고, 그의 영상은 유튜브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저자가 개인적으로 의사가 된 이야기, 의사로서 성장하는 과정, 암을 수십년간 연구하고 치료하면서 쌓아온 지식과 경험, 많은 돌아가신 암환자 분들을 통해 죽음을 바라보는 관점, 역사와 과학 등 여러 박학다식한 분야가 잘 버무려져 있는 노력이 많이 담긴 책이다. 항암치료 방법이 어떻게 진화했는지 충실히 다뤘고, 그의 개인적인 경험들이 전체적으로 어려운 의학 이야기 사이사이에 자연스럽게 담겨있어 글이 설득력 있었다.
‘죽음은 직선이 아니다’라는 제목에 대해 곰곰이 생각을 해 보았다. 저자는 어떤 의미로 이 제목을 썼을까? 저자는 1장 제목 역시 ‘죽음은 직선이 아니다‘라고 정하고, 상전이(phase transition) 현상을 빗대어 죽음을 설명한다. 즉, 물이 99도에서 100도가 되면 수증기로 변하듯이, 죽음도 수 많은 전조현상을 보이다가 임계지점에 도달했을때 급격히 다가온다는 것이다. 이에, 죽음은 하나의 상태에서 완전히 다른 상태로 급격히 넘어가는 비연속적인 순간이기에 직선이 아니라고 했을까?
그가 인용하는 또 다른 죽음에 대한 개념이 있는데 어쩌면 이 개념이 책 제목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죽음이란 ‘나와 주변의 경계가 없어지는 것‘, 다시 말해, 셀프(self)와 넌셀프(non-self)의 경계가 없어지는 것이고, 죽음은 ‘개체‘의 소멸을 넘어 ‘경계‘의 소멸이 되는 것이라고 한다. 경계의 소멸을 물리적으로 보면, 죽은 후에는 육체(self)가 세균(non-self)의해 썩으면서 더 이상 개별적인 존재가 아니라 자연에 섞이게 된다. 경계의 소멸을 정신적으로 보면, 망자가 남긴 기억, 영향력, 혹은 문화적 흔적이 다른 사람들에게 남아 흩어지면서 셀프(self)와 넌셀프(non-self)가 혼합될 수 있다.
참고로, non-self라는 영어단어는 처음 들어봤다. 면역학적 관점에서 self는 내 몸의 세포나 조직, 즉 면역체계가 공격하지 않는 것이고, non-self는 외부에서 들어온 병원균, 바이러스, 이식된 장기처럼 면역체계가 공격 대상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죽음이 발생하였을때 신체의 면역체계가 무너지면서 셀프와 넌셀프의 경계의 소멸은 명확하다. 하지만, 정신적인 경계의 소멸은 흥미롭게 생각해 볼만 했다. 내가 죽은 뒤, 나의 영향력 또는 흔적들(self)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non-self)에게 흩어져 혼합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면, 내가 죽은 뒤 아이들이 아빠의 흔적들로 새로운 영향력을 받아 보다 훌륭하게 사는 것 같은 기대 말이다. 좀 더 욕심을 내자면, 나의 문화적 흔적들이 먼 타인들에게도 영향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죽음이란 무엇인가‘에서 인간을 바라보는데 있어서 물리주의가 맞다고 (즉, 육체가 죽으면 영혼도 육체도 모두 없다) 주장하는데, 그래도 영혼은 어딘가 있지 않을까에 대한 막연함을 이 self / non-self 개념으로 잘 설명해 준다고 생각이 든다. 즉, 사람이 죽으면 영혼은 없으나 그 사람의 영향력은 경계가 허물어져서 다른 사람들과 혼합된다.
그가 이야기하는 마지막 흥미로운 점을 적어보자면, 세포가 분열할때 DNA 복제 과정에서 돌연변이가 생기고, 이 돌연변이들이 개체의 생존과 번식에 유리하게 되고, 자연선택되서 다음 세대로 전달되었다. 이게 종의 기원이다. 암세포도 결국 세포분열시 발생하는 돌연변이들이고 생존하기 위해 끊임없이 진화하는 시스템이지만, 하나의 개체 안에서, 즉, 내 몸 안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이다. 큰 그림의 종의 진화 관점에서 보면 암세포도 인간의 생존과 번식에 유리하게 진화하는 과정에 일조를 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동안 수 많은 정상 개체들이 돌연변이들과 경쟁하고 자연선택되지 못해 죽어갔던 종의 기원처럼…
끝으로, 책을 읽으면서 (항암약에 취해 해롱해롱했지만) 나의 블로그랑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학적인 지식이 많이 담겨있지만, 철학과 인문학적 생각들도 많이 담겨 있었다. 덕분에 나의 짧은 의학적 지식에 오류도 많이 발견할 수 있었고, 몇가지 의학적 지식을 업데이트 하면서 독후감을 마친다. 그가 쓴 다른 에세이도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 도 읽어봐야 겠다.
로그 킬 이론 (log kill theory) : 항암제를 반복 투여하면 지수함수적으로 죽는다는 이론. 더불어 복합요법(combination)을 통해 지수함수의 힘을 여러 배로 늘릴 수 있다.
1cm의 종양에는 약 10억개의 암세포가 존재.
사람의 몸 안에는 세포와 세균 수가 거의 1:1 비율로 있고, 각각 30조개, 38조개 정도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