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 - 김범석

by 기암

내친김에 김범석 작가의 다음 책을 내리 읽었다. 이 책은 단편 모음집이라서 각 편마다 편하게 끊어서 읽을 수 있었고, 하루 동안 틈틈이 다 읽어 버렸다. 각 편 마다 작가가 느꼈던 감정과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들이 다양해서 지루하지 않고 편히 읽었다.


대부분의 단편들은 환자에 초점을 맞춰서 죽음을 대하는 환자나 가족의 자세에 대해 생각해 볼 거리를 던져주었지만, 몇몇 단편들은 의사의 입장에 맞춰서 의사들의 고민거리를 여러가지로 소개해 주었다. 바쁘게 진행되는 어마어마한 외래진료 양이나, 죽음을 지연할지 말지에 대한 윤리적 결정 등, 특정 단편은 ‘의사도 사람이다. 이해해달라‘라는 호소의 메시지를 전달하러 쓴 느낌도 든다. 의사들의 입장이 잘 대변되는 이야기(때로는 의사로서 불편한 치부를 드러낸 이야기)는 접하기 흔치 않은데, 그런 솔직함이 적어도 나의 공감을 얻었다. 특히 ‘눈을 마주치지 않는 사람들‘ 편은 나의 지난 경험(에피소드 2 참조)를 떠올리게 했다.


특별히 눈시울이 붉어졌던 장은 ’아이의 신발’ 편이다. 백혈병에 걸린 아이가 임종을 기다리는 어느날 아침. 간호사가 아이의 혈압을 재러 병실에 들어섰을 때 보호자인 엄마는 아이를 품에 안고 있었고, 간호사는 보자마자 아이가 이미 호흡이 멎은 것을 직감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아이 엄마는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죽은 아이를 오랫동안 끌어안고 있었고, 아이의 사망 사실을 알리면 의료진이 아이의 시신을 데려갈까 봐 누구에게도 알리지않고 아이를 꼭 끌어안은 채로 밤을 세웠다는 이야기.


눈시울이 붉어지면서 지난 8개월간의 긴 치료가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갑자기 다가온 암. 그간의 긴 여정 등등. 이어서 부모의 내리사랑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투병을 위해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는 나. 투병 때문에 가족과 떨어져 살고 있는 나. 나와 부모님과의 관계, 그리고 부모인 나와 나의 아이들과의 관계. 부모님은 아직까지는 건강하셔서 나의 투병을 잘 도와주시고, 내리 사랑을 잘 받고 있다. 아이들도 나와 아내의 울타리 안에서 잘 성장하고 있다. 이 관계에서 누군가 호흡이 멎는다고 생각해보면, 그게 아이일 경우와 그게 부모일 경우, 남겨진 사람들은 어느 쪽이 더 힘들까?


다시 본 목적으로 돌아와서, 의사가 보는 환자들과 주변 상황, 의사가 보는 의사의 항변, 누가 맞고 누가 틀리다를 떠나서, 인간으로 살아가는 삶의 향기가 잘 배어나는 이야기들이였다. 마치면서, 그의 글들 중 가슴에 와닿는 문장들을 발췌하며 마무리한다.

지연된 죽음과 늘어난 삶의 시간들을 지켜보며 좀처럼 한 가지 의문을 지울 수 없다. 이렇게 삶의 시간은 더 주어지는데 이 늘어난 시간을 우리는 어떻게 쓰고 있을까?

암에 걸리는 것은 허허벌판을 지나다 예고 없이 쏟아 붓는 지독한 폭우를 만나는 것과 비슷하다. 우산도 없고 피할 곳도 없다. 할 수 있는 것은 고스란히 쏟아지는 비를 맞는 것 뿐이다. 그러나 가만히 서 있는다고 달라지는 것 없다.

자기 자신에 대해 질문하며 사는건 의외로 쉽지 않다. 사회에 발 들이고 나면 먹고사는 일에 힘쓰느라, 눈앞의 현실에 치여서 스스로에 대해 물을 여력이 없다. 물어서 답을 안다고 한들 훌훌 털고 내 멋대로 살수도 없는 일이다.

기대여명을 알게 된다는 것은 마음 아픈 일이지만 조금 다르게 생객해보면 특별한 보너스일지도 모른다. 보통은 자기가 얼마나 더 살지 모른는 채로 살다가 죽기 때문이다.

다만 결과에 대한 긍정성을 말하는 게 아니다. 과정과 태도에 대한 긍정이다.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내가 잘해낼 수 있다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그 자체가 긍정이어야 한다. 이점을 오해하면 결과에 대한 기대가 과도하게 커져 크게 실망하는 경우가 많다.

진정한 긍정은 결과물이 아니라 한방울 한방울 떨어지며 천천히 스며드는 과정임을 깨닫는다. 하루하루 살아나가는 태도 안에 있는 것임을 생각한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는 죽음을 기억하고 살라는 말이다.

죽어가는 사람에게 무슨 성장 따위를 운운하느냐고 속 편한 소리한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죽을 때가 되면 사람이 변한다는 말은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무한히 지속될 것 같았던 생이 유한하고 소중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 삶을 바라보는 관점과 가치관은 분명히 변한다.

결국 이기심과 이타심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내가 편하기 위해서 남을 배려하지 않는 이기심이 아니라 스스로를 돌볼 수 있고 스스로 평온함을 찾을 수 있는 이기심이 필요하다.

나의 흔적들을, 나의 관계들을, 나의 많은 것들을 오늘 집을 나서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마음으로 살펴야 한다.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여기고 지금의 내 흔적이 내 마지막 모습이라고 생각하면 덜 어지르게 되고 더 치우게 된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