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키안다리 Oct 28. 2022

악몽

가끔 악몽을 꾸다가 갑자기 깨곤 한다. 이렇게 악몽을 꾸다가 잠에서 깨고 나면 한동안 마음이 불안하고 놀라 스스로 진정을 시키다가 다시 잠들거나 시간이 몇 시 이든지 간에 아예 일어나 버린다. 

여러 형태의 악몽이 있지만 나에게 있어서 최대 두려움과 불안감을 주는 악몽은 

바로 아이를 잃어버리는 꿈이다. 


생각해보니 첫아이를 낳은 2010년부터 몇 번이나 아이를 잃어버리는 꿈을 꾼다. 둘 째까지 낳고 나서는 한 명만 잃어버리거나 둘 다 잃어버리거나 하는데 아이를 잃어버렸다는 것을 인지했을 때와 찾아 헤매며 돌아다니는 그 시간의 스트레스가 꿈을 꾸면서도 고스란히 느껴지는 듯하다. 

그때의 막막함과 두려움은 꿈일지라도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참담하다. 


실지로 나는 아이를 잃어버려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이제는 아이들이 초등학교 고학년으로 자라서 자기 이름, 집 주소, 엄마 아빠의 전화번호 등등을 다 외우기 때문에 잃어버릴 염려를 할 필요도 별로 없는데 아직까지도 아이를 잃어버리는 악몽을 꾸면서 불안과 스트레스를 느끼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또다시 아이를 잃어버려서 불안에 떠는 악몽을 꾸고 난 이후에 깨어나 천천히 생각해 보았다. 

나는 왜 아직도 이런 꿈을 꾸는가? 나는 무엇이 두려운 것인가? 


어렸을 때의 사건이 생각났다. 나는 어렸을 때 미아가 된 적이 있다. 한 반나절 정도였나 보다.  그때 나이가 정확히는 생각이 나지 않지만 아마도 4살 아니면 5살 정도였다. 서울 근교에서 장사를 하시는 부모님은 나를 시골 할머니 집에 남겨 두고 언니만 데리고 가셨다. 할머니, 할아버지와 지내는 시골 동네가 

자세히 생각은 안 나지만 아주 깡촌은 아니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농사일로 바쁘셨는데  나는 활동적인 성격이라서 혼자서 놀이터에 가서 친구들과 놀기를 좋아했다. 그런데 어느 날 못 보던 친구가 놀이터에 있었다. 같이 어울려 놀다가 자기 집에 놀러 가자고 해서 그 친구의 집에 가게 되었다. 시간이 좀 늦어져서 집에 가겠다고 나왔는데 비가 조금씩 내리는 흐릿한  날씨로 변해있었고 처음 가보는 친구의 집에서 우리 집으로 가는 길을 찾지 못해 조금씩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러고 나서 어떻게 경찰서까지 가게 되었는지 사실 기억이 잘 안 난다. 나를 경찰서에 데려다준 것은 어떤 아주머니였던 것 같다. 꼬마 아이가 길에서 헤매고 있는 걸 발견하고는 경찰서에 데려다주셨을 거라 예측한다. 그런데 그때 나는 어렸고 집 주소, 할머니 이름, 동네 이름 같은 것을 기억하지 못했다. 내 이름은 알고 있었는지 조차도 잘 모르겠다. 그러나 하늘의 도우심으로 그 아주머니가 데려다 주신 경찰서에는 우리 집에 세 들어 살던 경찰 아저씨가 있었다. 그 아저씨가 할머니에게 전화를 해서 할머니가 나를 데리러 왔다.

 

경찰서에 한참 우울하게 앉아 있다가 곧 할머니가 온다는 소식에 경찰 아저씨와 경찰서 앞에 나와서 할머니를 기다렸다. 언덕배기에 있던 경찰서 앞에서 저 멀리에서 할머니가 우산을 쓰고 걸어오시는 게 보였다. 그 우산이 조금씩 가까워지고 놀라 달려오신 할머니의 당황한 얼굴이 조금씩 가까이 보였다.  그렇게 나는 다시 집으로 무사히 돌아왔고 그 이후에는 길을 잃어버린 적은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꽤 어릴 때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정황을 어느 정도 기억하는 것을 보면 

아마도 내 무의식 가운데 굉장히 큰 충격으로 자리 잡지 않았을까?


한 세미나를 참석하면서 살면서 가장 무서운 때가 언제였나를 적어보라고 했다. 


가장 무서웠던 때? 언제지? 


하고 기억을 더듬어 봤는데 아 그때구나! 하면서 길을 잃어버려서 미아가 되었던 그날이 떠올랐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친구 집을 나와서 경찰서에 오기 까지.. 우리 집에 세 들어 살던 그 아저씨를 만나 안도의 한숨을 쉬기까지 그 시간의 기억이 거의 남아 있지는 않지만 가장 두려웠을 시간임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아들이 숫자를 셀 수 있게 된 나이가 되었을 때부터 내 전화번호를 암기시켰다. 그것은 둘째인 딸도 마찬가지이다. 미아 방지 목걸이를 사주었고 경찰서에 지문 등록도 시켜 두었다. 

이 모든 것이 내 안에 쌓여 있는 그날의  두려움 때문인가 보다. 


악몽을 꾸다가 깬 날, 내 안에 미아가 되었던 지난날의 기억과 두려움이 

아직도 큰 것을 보고서 나에게 천천히 말해 주었다. 


괜찮아. 돌아왔잖아. 이제는 안전해. 우리 아이들도 결코 잃어버리지 않을 거야. 


지난날의 나에게 도닥여 준다. 

괜찮아.. 안전해.. 

작가의 이전글 떡볶이로 대접하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