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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안다리 Oct 22. 2022

개 공포증

트라우마로 개를 두려워하는 아들, 괜찮아! 함께 살아가는 거야

 초등학생인 아이들이 부쩍 동물을 키워보고 싶어 한다. 특히 딸은 고양이를 너무 좋아해서 어디서 새끼 고양이라도 만나면 그렇게 귀여워서 어쩔 줄 몰라한다. 그래서 귀여운 고양이를 만나고 돌아오는 날은 고양이를 키우고 싶다고 졸라 대고 난리다. 얼마 전에 아는 분이 자기 집 마당에 길고양이가 낳은 새끼 고양이들이 5마리가 생겼다고 몇 마리 키우겠냐고 사진까지 보여주면서 제안해 왔는데 그 사진을 봐 버린 딸은 또 키우자고 난리를 한다.  하지만 내 몸뚱이 하나 건사하기도 힘들게 느껴지는 나로서는 집에 동물을 들이는 것에 엄두가 나지 않는다. 먹이를 챙겨주고, 새로운 동물에 맞추어 집안의 구조나 물건들을 바꾸어야 하고 , 특히 배변이 잘 안 되면 그 뒤처리를 계속해야 한다. 끊임없이 날리는 털은 또 어떠한가. 자주 청소기를 돌려서 털을 치워줘야 할 텐데 귀차니즘이 심한 우리 식구들은 어쩌다 한 번씩 청소기를 돌리는 사람들이니 당연히 쉽지 않을 것이 뻔하다. 초등학교 3학년 딸은 자신이 다 하겠다 책임지겠다고 말하지만 그 아이가 그렇게 하지  못하고 내가 많은 부분을 감당해야 할 것이 뻔하기에 동물 키우기는 여지를 두지 않고 빠르게 거절한다. 

평소에 아이들과 애청하는 프로인 TV 동물농장에 무책임한 주인들로 인해서 버려지고 상처받은 반려 동물들의 소식을 자주 봐온 터라 아이도 욕심으로만 시작할 수 없는 일인 것에 대해서 인정하고 금방 포기해 주어서 다행이다. 

 

그러나 한 번은 진지하게 개를 키울 생각을 해 보았다. 어느 집에 입양 가능한 강아지가 있지는 않은지 알아도 보았는데 그 이유는 바로 초등학교 6학년 아들의 개 공포증 때문이었다. 개를 발견하면 아주 멀리 있거나 줄에 묶여 있다 하더라도 몸이 굳고 공포에 바들바들 떨면서 아무것도 못하는 아들의 모습을 보니 이건 아니다 싶었다. 나도 개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고 가끔 무섭게 짖어 대는 개를 만나면 당연히 공포심을 느끼고 가까이하고 싶지 않긴 하지만 그것도 그 개와 멀어지거나 어떤 개가 집안에 갇힌 채로 짓는 것이거나 줄에 묶여 있다면 또 다른 이야기다. 그런데 아들은 그 어떤 조건도 상관없이 그저 개가 나타나면 그렇게 무서워 덜덜 떨어 댄다. 심지어 아주 작은 치와와 조차도. 그래서 대체 왜 저 아이가 저렇게 까지 개를 무서워하는가를 생각해 보니 이야기는 아들이 두 살 정도 되었던 아주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그때 아파트 단지 놀이터에 데리고 갔었는데 주민 한 명이 작은 강아지를 데리고 왔다. 아주 작고 귀여운 강아지였는데 하얀 털이 복슬복슬 사랑스러워 보였다. 전혀 공포심을 조성할 만한 요소를 가지고 있지는 않았기 때문에 두 살짜리 우리 아들은 호기심반 두려움 반으로 강아지에게 접근하면서 그 사랑스러움을 이기지 못해 다가가서  만져도 보고 뒷걸음쳐 거리를 두기도 해 보면서 즐거워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뒷걸음치다가 넘어진 아들이 미쳐 다시 몸을 일으키지 못했는데 그 강아지가 아들에게 달려왔다. 아이는 적당한 거리를 두면서 안정감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그 강아지가 자기에게 마구 달려오지만 미쳐 일어나 피하지 못하자 그 순간이 너무 큰 두려움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막 울면서 공포에 떨어하는데 얼른 달려가 아이를 안아 달래 주었다. 그것은 개에 대한 아이의 첫 기억이 되어 버렸는데 두 살이라서 잘 기억도 안나는 그때 일이지만 개에 대한 공포가 그 사건으로 인해서 아이의 마음에 자리를 잡아 버렸나 보다. 덩치가 6배로 커진 지금도 개를 보면 개의 크기와 상관없이 그렇게 무서워하고 덜덜 떠는 것을 보니 한심 하다 가도 저러다가 저 아이가 평생 개 공포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저렇게 살면 어쩌나 싶어 걱정이 되었다. 모성애는 귀차니즘 보다도 더 강한 것인지 아이의 공포심을 없애 주기 위해서 진지하게 남편과 작은 강아지를 입양해서 키워보는 것을 고민했다. 적당한 강아지가 있으면 아이를 위해서 집 마당에서 키워 보리라. 아들도 아주 작은 강아지부터 키워 간다면 해 보겠다고 동의해 주었다.  개를 키워보겠다는 프로젝트는 적당한 강아지를 만나지 못해서 흐지부지 넘어가고 대신 물고기 몇 마리를 키우게 되었지만 아들의 트라우마 치료를 위한 노력은 계속되어야 할 것 같다. 

처음엔 저 아이가 저러다가 정신병으로 발전되는 게 아닐까 걱정도 했지만 사실 어른인 나도 아직 몇 가지에 있어서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고 어른이 되어서도 근처에도 안 가려하는 일들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트라우마가 있는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겠지. 누구나 무의식 속에 생긴 공포와 트라우마가 있지만 있는 듯 없는 듯 그냥 함께 살아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 아들의 개 공포증도 아이의 삶의 일부분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그것과 동행하며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지도해주는 엄마가 되도록 노력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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