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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리 Aire Aug 27. 2020

강남아파트는 더 이상 오르기 힘들다

<제19편> 중소기업 월급쟁이, 강남아파트 투자로 조기은퇴하다

미국에서 금융 위기가 발생했고 국내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는 것을 체감하지 못했다. 아파트 시세 상승 속도가 조금 더딘 것 같다고 느끼는 정도였다. 전세 시세는 계속 오르고 있었기에 보증금 인상분으로 투자할 세 번째 아파트를 찾느라 분주했다.


상암동에 서울라이트라는 초고층 건물이 조만간 착공한다는 기사들이 눈에 들어왔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133층의 랜드마크 건물의 조감도에서는 빛이 났다.


“나 어렸을 때에는 거기가 난지도였거든. 중학교 때 학원 봉고차가 그쪽이랑 시영 아파트랑 애들 태우러 돌아다니고 그랬어. 근데 이제 엄청 좋아지려나 보다.”

“랜드마크 건물이 생기니깐 그쪽에 사두면 좋을 거 같아. 근데, 오빠. 상암동은 벌써 7억도 넘는데 어떡하지? 오래된 작은 아파트도 4억이 넘어가고."

"근데 방송국이나 대기업 직원들이 모두 억대 연봉의 고소득자는 아닐 거 아냐. 인턴도 있을 거고, 신입도 있을 거고, 그쪽에서 식당, 카페, 미용실, 옷가게, 편의점 같이 자영업 하는 사람들도 출퇴근을 할 텐데. 이 사람들이 모두 7억, 8억 하는 아파트에 살 수는 없잖아."


상암동으로 모여드는 사람들 중에는 분명히 2억 이하 아파트를 찾는 수요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여기 행신동이라는 동네 좀 봐봐. 일산 가기 전에 고양시 덕양구라는 곳에 있는 아파트야. 상암하고는 딱 5킬로 떨어졌거든. 차로 15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야. 경의선 타면 3정거장이고. 버스도 상암까지 한 번에 가고. 아까 점심시간에 그 동네 부동산하고 통화해봤는데, 1억 5,000만원 정도에 매물이 있데. 전세는 8,000에서 8,500만원이고."


상암 주변으로는 대부분 주택가만 있었다. 상암까지 출퇴근이 편리한 대규모 아파트 단지들이 있는 곳은 행신동이었다. 게다가 방 2개의 19평 매매 가격은 1억 중반이었다.




저녁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행신동 부동산에서 전화가 왔다. 세입자가 집에 들어와서 이제 집을 볼 수 있으니 어서 오라는 것이었다. 행신동은 지도로만 봤지 아직 안 가본 동네였다. 사장님이 지하철역으로 데리러 온다고 하니 경험 삼아 구경하면 좋을 것 같았다.


“밥 빨리 먹고 행신동 잠깐 가서 아파트 한번 보고 올까?”

“보고만 오는 거야? 아니면 계약하러 가는 거야?”

“안 가본 동네니깐 동네 구경 하고 오자.”


화정역 4번 출구에서 부동산 사장님 차를 타고 소만마을 아파트 단지로 갔다. 매매가 1억 5,500만원에 입주 가능한 로얄층 물건을 봤다. 새로 전세 놓으면 8,500만원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담보 대출은 전세금 고려해서 3,000만원까지는 문제없다고 했다. 다음 달이면 홍은동 아파트 전세금 3,000만원도 들어온다. 마이너스 통장을 쓰면 잔금 7,000만원을 준비할 수 있겠다는 계산이었다.


사장님은 마침 집주인이 근처에 있다며 인사나 한번 하라고 했다. 10분도 안 지나서 집주인 가족이 왔다. 반갑게 인사를 하고 나니 자연스럽게 매매 가격 얘기가 오고 갔다. 잠깐 신분증을 달라고 하더니, 어느새 사장님은 매매 계약서를 들이밀었다. 집주인까지 만난 김에 도장까지 찍고 가라는 것이었다.


“지금 저희가 도장도 없는데……”

“요즘은 그냥 서명으로도 많이들 하세요.”

“아, 그게, 갑자기 나와서 지금 계약금도 없거든요.”

“가계약금으로 100만원만 보내셔도 돼요. 신용카드 없으세요? 저기 편의점에 ATM 기계도 있는데.”


‘어, 이게 아닌데, 일이 자꾸 커지네.’


화장실 문 아래쪽이 썩은 것과 싱크대 몰딩이 떨어져 나간 것을 핑계로 500만원을 깎으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아파트가 마음에 드는 티를 너무 많이 낸 것이 실패의 원인이었다. 심각한 표정으로 시간을 끌고 있으니 문짝 교체 비용으로 100만원이 내려갔다.  


‘문짝은 내가 퍼티 사다가 메꾸면 1~2만원이면 될 거야.’


그렇게 정신없이 계약을 마무리하고 집에 왔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아파트를 사고 이렇게 찜찜한 기분은 처음이다. 첫 아파트를 사고 집에 왔을 때는 살짝 눈물까지 났는데, 이번에는 이상했다. 홀린 듯이 떠밀려서 계약한 것 같아서 기분이 복잡했다. 젊은 나이에 서울 아파트 2채나 가지고 있다면서 우쭐하게 만든 부동산 사장님의 기술에 말린 것 같아서 짜증이 났다. 아내도 마음이 복잡했던 모양이다.


“안 산다고 했잖아. 구경만 하고 오자고 했잖아.”

“그래도 상암동 개발 근처고, 로얄 물건이잖아.”

“밥 먹다가 가서 이렇게 갑자기 아파트를 사면 어떻게 해. 대출이 2억 3,000만원인데, 이걸 언제 다 갚아?”


어쩔 수 없었다. 가계약금 100만원을 버릴 수 없었기에 그냥 진행했다.




행신동 투자의 결정적인 요인이었던 상암동 DMC 랜드마크 개발은 결국 표류하고 말았다. 단군 이래 최대 도심 개발사업이라고 불렸던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도 무산되었다. 반면에 당시 초고층 빌딩 프로젝트 중에서는 유일하게 잠실 제2롯데월드 공사만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역시 강남은 뭐든 잘 되는구나.’


부동산 투자 초기에 3개의 아파트를 매수할 때까지만 해도 이렇게 생각했었다.


'강남은 이미 10억이 넘잖아. 이미 오를 대로 다 올랐는데 그런 아파트가 11억이 되겠어? 오히려 이렇게 2억, 3억짜리 아파트가 3억, 4억이 되는 게 더 빠르지 않을까?'


이미 10억이나 하는 강남의 고가 아파트가 11억으로 오르기는 힘들다고 생각했었다. 마치 ‘집값 총량의 법칙’이라도 있는 듯이 강남 아파트는 이미 오를 대로 다 올라서 더 이상 오를 여력이 없다고 봤다. 그래서 강남을 피해 저가 매물에 대한 투자를 이어갔지만 욕심만큼 수익은 크지 않았다.


이것만으로는 젊은 부자가 되어 조기은퇴를 하기에는 부족했다. 이때부터 강남아파트를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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