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편> 중소기업 월급쟁이, 강남아파트 투자로 조기은퇴하다
2012년 8월 15일, 오전에 내리던 비가 그치자 강남구 일원동으로 향했다. 고여 있던 빗물에 미끄러진 초록색 엑센트가 앞차 그랜져TG를 들이받을 뻔했다. 브레이크 핑계를 대며 이제 차 좀 바꿔볼까 해서 아내한테 물으니 3년 전과 같은 대답이었다.
“내년에 바꿔줄게.”
나도 안다. 내년에는 또 내년이라고 할 거라는 것을. 그래, 지금은 차보다는 강남 아파트를 하나 사는 게 우선이었다.
큰 나무들이 우거진 수서까치마을 아파트 앞 한적한 도로에 초록색 차를 숨겼다. 그리고 3호선 일원역 입구까지 걸어갔다. 1분 30초. 책에서만 보던 초역세권이다. 강남 아파트는 지하철도 가깝구나. 다시 걸어오면서 시간을 쟀다. 1분 42초. 대단하다.
일원역 부지에는 높은 펜스가 둘러져 있었다. 계획대로 공사가 진행 중인 것 같았다. 강남구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차분하고 고요한 분위기가 인상적이었다. 손에 닿을 정도의 거리에 대모산이 있었다.
집에서 홍제역까지는 빠른 걸음으로 15분이었다. 마을버스가 있는데 급할 때는 더 안 오는 것 같다. 그럼 길 건너편에서 파란색 일반버스를 탄다. 두 정거장 가서 내린 다음에 신호등을 건너서 문화촌 아파트 앞까지 간다. 그리고 홍은동 쪽에서 오는 12번이나 개미마을에서 오는 07번 마을버스를 타면 홍제역까지 조금 더 빠르게 갈 수 있다.
그런데 강남은 아니었다. 아파트 바로 앞에 지하철이 있다. 여기에 살면 울퉁불퉁 골목길을 뛰어 내려가지 않아도, 애를 태우며 마을버스 잡으려고 위험하게 무단횡단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미리 약속한 부동산과 집을 봤다. 1004동 15평 고층은 2억 8,000만원이었다. 전세는 1억 5,000만원 정도였다. 투자금으로 1억 3,000만원이 필요했다. 또 다른 물건인 1002동 17평 남향은 3억 2,000만원이었다. 올수리 된 고층 21평 4억 2,000만원 물건도 봤다. 인테리어 업체 블로그에서 봤던 그 집이었다.
하지만 아직 돈이 없었다. 내후년에 홍은동과 행신동에서 전세금이 들어올 때까지 더 기다려야 했다. 당장 사고 싶었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게다가 당시에는 아파트 가격이 떨어지는 것이 눈에 보이고 있었다. 조금 더 기다려 볼 만했다. 내가 사기 전까지는 조금만 더 떨어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