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도 그리 부지런한 성격은 못 되는 나. 물론 기한이 다가오면 조급증이 찾아오곤 하니 느긋한 성격이라곤 못하겠지만. 오늘은 그런 성격에 제법 어울리는 여행 중이다. 용인에서 동해까지의 긴 기차 여행.
지하철로 청량리까지, 청량리에서 민둥산, 사북, 영월, 제천 등을 거쳐 동해까지. 요즘 보기 힘든 완행열차마냥 여기저기 섰다 달리기를 반복하는 무궁화 열차에 몸을 싣고 달려가는 중인데 아침 9시 55분에 출발해서 오후 2시 41분에 목적지에 도착하니 어지간히 긴 여행이긴 하다.
조금이라도 빠른 시간 안에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 기꺼이 비싼 비용을 치르는 요즘 같은 시대에도 가끔 이런 완행 같은 열차에서 맞이하고 싶은 하루. 고속버스나 ktx도 있는 마당에 이 기차를 택한 건 창밖으로 쉼 없이 바뀌는 풍경에 좀 더 오래 시선을 놓아두고 싶기 때문인데.
어쩌면 이렇게 오가는 열차 노선 자체가 여행이랄 수 있을 터다. 아니 애초에 그렇게 생각했기에 조금은 느리고 돌아가는 이 열차를 선택했다는 게 더 맞는 표현일 게다. 이 열차를 잡은 것도 당일이 될지 1박을 할지도 정하지 않고 동해로 달려가는 무모함을 택한 것도 나니까.
쉼 없이 바쁘게 쳇바퀴 도는 삶에서 목적지까지 빨리 도착하고자 더 분주해지는 사람들 틈에서 더딘 발을 뻗고 허튼 숨 한 번 내뱉어 보겠다고 향하는 겨울 끝 동해. 특별한 목적 없이 휙 던지는 하루. 그걸 여행이라고 거창하게 말하긴 좀 그렇지만, 오늘도 별생각 없이 바다나 보고 와야겠다. 거기까지 천천히 돌아가는 철길 근처에 펼쳐진 일상을 슬쩍 바라보면서... 나만의 더딘 페이스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