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조개 풋호박 초무침

길심씨네서(13일째)

by 전난희

길심씨랑 영암 오일장에 다녀왔다. 성수씨의 성화에 못 이겨서다. 아침 밥상에서 성수씨는

"어야, 오늘이 영암장 아닌가. 가서 간재미 좀 사오소. 그거 당신이 해주면 맛있대."

"몰라! 오늘 일요일이라 장사가 안 나와!"

길심씨가 귀찮아 죽겠다는 듯 큰소리를 치니

"장인디 안 나온당가? 나오제. 딸이랑 다녀오소"

한다.

"간재미 요리하기가 얼매나 힘든디 당신이 가서 사오든가 칼을 갈아주든가.."

"내가 칼은 갈아주제. 흐흥."


그동안 딸이 해준 음식이 아버지 식성에는 별로 안 맞았나 보다. 원래 소식하시는 분이라 입맛이 까다롭다. 식성이라는 것이 길들여지면 어쩔 수 없는 거 아닌가. 딸이 해 주는 것이니 타박은 못하고 이제 길심씨 음식이 드시고 싶은 것이다. 예전부터 간재미 회무침을 좋아하기도 했지만 딸은 괜히 제 발이 저린다.


길심씨는 당연히 간재미를 살 것이지만 괜스레 강짜를 부려본 것이다. 영암 오일장에 도착했다. 주차를 하고 장으로 들어가 보니 어머니는 늘 가는 단골집에서 맛(맛조개)을 사고 있다. 같은 '전가'라고 그 아짐 해물전을 늘 애용한단다. 신길심씨는 '신가'이면서 전성수씨랑 살며 '전가'로 성을 바꾼 것 같다.

"우리랑 같은 '전가'니까 그 아짐 물건을 팔아줘야제."하는 것이다. 우리 어머니 세대 여자들의 위치를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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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꽃게를 사고는 어떻게 게장을 담가야 맛있는지 알면서도 확인하며 물어본다. 늘 배움에는 호기심이 많은 길심씨다. 다시 어머니의 단골 어물전으로 간다. 나무박스에 담긴 간재미가 보인다. 영화 <자산어보>에서 가오리를 손질하던 창대(변요한 분)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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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도착하자마자 길심씨는 텃밭에서 둥그런 풋호박을 따고 나는 맛조개(이하 맛)를 씻어 삶는다. 영산강 하굿둑을 막아 간척지가 생기면서 갯벌이 사라져 맛이 귀한 몸이 됐다. 영암 인근의 강진이나 해남에서나 조금 잡힌다고 길심씨는 말한다. 내가 어렸을 적엔 맛이 많이 나서 한 솥단지 삶아 아무런 요리도 필요 없이 그냥 껍질을 까서 먹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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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메인 셰프는 길심씨다. 어머니는 풀 호박을 굵게 채 썰어 맛 삶은 물에 살짝 데쳐서 냄비째 찬물에 담가 한소끔 식힌다. 호박이 살캉살캉 맛있게 식는 동안 양파, 고추, 대파, 깻잎을 썰어 양념거리를 준비한다. 나는 삶은 맛의 껍질을 까고 맛살의 테두리에 붙은 까만 실같은, 길심씨의 표현에 의하면 맛의 뼈를 떼어낸다. 어려서부터 봐온 맛조개 살이지만 새삼 토끼의 두 귀처럼 생겨 귀엽다.

길심씨 왈,


"서울 사람들은 토끼처럼 귀가 쫑긋하여 토끼고기라고 한다등만."

한다. 글쎄? 나도 서울에 살지만 믿거나 말거나 진짜 그런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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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심씨가 식힌 풋호박 데친 냄비에 맛과 썰어놓은 야채를 넣고 고춧가루, 조선간장, 식초, 매실효소 등을 넣어 수저로 뒤적뒤적 저어가며 무쳐주니 맛조개 풋호박 초무침 완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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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 먹어봐라."

하며 냄비를 내민다. 먹어보나 마나 맛있다. 예전에 먹던 것에 비하면 국물이 자작하다.

길심씨의 음식도 세월에 따라 진화한다. 나이가 들면 이가 좋지 않아 국물이 있는 것을 선호한다. 젓가락질도 힘들어 숟가락이 젓가락도 된다. 젊었을 적엔 그러지 않았던 분들이 그렇다. 내 시어머님도 마찬가지이다.

"엄마, 어디 가서 식사하실 땐 이러면 안 돼."

하며 아이 교육시키듯 한다.


성수씨는 맛조개 초무침을 듬뿍 넣고 참기름도 넣어 쓱쓱 비벼 밥 한 그릇을 금세 비운다. 역시 성수씨에게는 길심씨 음식이 최고다. 내일은 간재미 회무침이다. 길심씨의 손맛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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