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심씨네서(12일째)
"길심씨! 길심씨가 이길까? 풀이 이길까?"
"내가 이기제."
"그래? 어떻게 이겨?"
"지금은 풀을 매야 되지만 곡식이 더 크먼 풀이 곡식 밑으로 들어가분께 못 크제."
"그랑께 내가 풀을 이기제."
며칠째 아침저녁으로 풀을 매다매다 끝이 없을 것 같아 밭고랑에 앉아 내가 길심씨에게 물어 본 이야기다. 평생 풀을 이겼으니 일가를 이루고 자식들 뒷바라지하고 노후도 잘 보내고 있을 것이다.
"엄마! 이 밭을 언제 다 매지?"
"눈이 게으르지 금방 다 맨다아."
콧노래까지 부르며 호미로 흙을 긁어댄다. 또다시
"엄마, 이렇게 폭염인디 들깨 모종을 하면 살겄어? 조금 더 크면 비 온 뒤에 하자니까. 봐봐~ 고생해서 모종을 옮겼는디 죽었잖아."
선무당이 소리치자 익은 무당이
"그랑께. 그래도 할 수 없제. 지 운명이 죽을 운명이니 죽었겄제. 살 놈은 살고 죽을 놈은 죽고."
어떻게든 본인 좋은 쪽으로 생각하고
지난 일에 연연해 하지 않으며 절대로 풀이 죽지 않는 길심씨다.
내가 이런 부분만큼이라도 길심씨를 닮았으면 좋으련만... 나는 조그만 바람에도 흔들리고 안 좋은 쪽으로만 생각한다.
"엄마! 나 글 쓰고 책 써서 책 많이 팔리면 엄마한테 돈 많이 줄게. 그러니까 기도 좀 많이 해봐."
"흐응, 그랑께. 그란디 내가 기도한다고 되겄어. 니가 그럴 운명이면 그렇게 되겄제."
"그래도 딸 위해서 기도 좀 해~."
"알았어 흐응."
그럴 운명? 나는 어떤 운명일까?
농사는 끊임없는 풀과의 전쟁이다. 길심씨는 들깨 밥에서, 성수씨는 논둑에서 끊임없이 풀을 매고, 베면서도 전쟁이라 여기지 않는다.
"엄마, 풀 매는 게 재밌어?"
"재밌능께 하제. 재미없으면 하겄어.
니가 풀 매준께 밭이 개안하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일에도 끝은 있게 마련이지만 끝나고 나면 또 시작이다.
염천에 성수씨는 논둑의 풀을 다 베었다. 이제 벼이삭이 나올 때쯤 한 번만 더 베면 올해는 끝이라고 한다.
"아버지! 오늘은 논둑 안 비어도 되네."
"그라제. 그란디 끝이 있간디? 또 집 뒤의 풀을 비어야제."
아이고, 끝도 없는 이놈의 풀과의 전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