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심쎄네서(11일째)
성수씨가 사라졌다. 새집에서 마당을 건너 헌집으로 가보니 늘 그 자리, 아버지의 자리가 비었다.
"아버지! 아버지!"대답이 없다. '설마 이 시간에 논에...'하는 생각이 미치자 얼른 마당을 나가 고샅길로 내달렸다. 길심씨네는 마을 초입에 있다. 고샅길을 빠져나가 큰길에서 몇십 미터만 가면 들녘이다. 멀리 우리의 문전옥답을 바라보니 아버지가 보인다.
아뿔싸! 오후 5시도 안된 시각, 해 질 녘에 뿌린다던 거름을 아직 해가 중천인데 아버지는 기어이 벌써 뿌리고 있다. 나는 집으로 돌아와 냉장고에서 물 한 병을 챙겨들고 논으로 달렸다. 폭염에 84세의 농부가 어깨에 거름통을 매고 흔들림 없이 거름을 뿌린다. 아버지는 성질이 급하다. 눈앞에 일을 두고는 참지를 못한다. 일솜씨도 깔끔하고 정신없이 하는 스타일이라 젊었을 적부터 같은 시간에 남보다 두 배는 더한다.
요즘 성수씨의 걸음걸이는 어린아이처럼 건둥건둥 걷는다. 딸인 내가 보기에 때론 발이 꼬일 것 같아 불안하기도 하다. 그런 노인이 당당하게 무거운 비료 거름통을 크로스로 어깨에 메고 옆구리에 걸친 채 같은 동작으로 거름을 뿌리며 벼 이랑 사이를 걷는다. 성수씨의 얼굴은 땀범벅이고 위 셔츠는 젖어 몸에 달라붙었다.
거름통이 비었나 보다. 아버지는 내가 서 있는 맞은편 논둑으로 올라간다. 나는 얼른 논둑을 달려 아버지에게로 갔다.
"뭣하러 왔냐? 가그라."
"아버지! 지금 일하면 어떡해? 큰일 날라고. 저녁때 한다고 했잖아."
"괜찮해."
아버지의 얼굴에서는 땀이 비 오듯 쏟아지고 콧물까지 범벅이다. 물병의 뚜껑을 열어 내밀었더니 콧물을 힝! 풀어 내고는 벌컥벌컥 마신다. 사는 게 무엇일까? 성수씨가 늘 말하던
"내일 죽을망정 허덕이는 게 인생이제."
가 떠오르는 순간이다.
지난 10여 년간 논농사를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고는 안 짓다가 작년부터 논배미 두 군데를 농협에 맡겨 짓기 시작했다. 우리 논가에 농협 깃발이 꽂혀 있다. 그럼에도 온전히 다 맡기지 못하고 비료를 뿌린 것이다. 모내기, 농약, 벼 베기 등은 농협에서 기계로 모두 다 해준단다. 두 노인네가 경제적으로 충분하고 통장에 돈이 쌓여 있건만 농사 직불금, 농어민 수당, 경관 자금을 포기하기엔 아까워 논농사를 짓는다. 이 모든 게 길심씨가 논농사가 밭농사보다 훨씬 수월하다고 성수씨를 꼬드긴 탓이다.
길심씨의 굽은 허리 때문에 큰일을 하는 데에는 성수씨가 죽어난다. 대신에 고물고물 할 수 있는 일, 작은 일은 길심씨가 아침저녁으로 쉼 없이 한다. 이번 참에 내년에는 한 군데만 짓기로 다짐을 받았다. 농협에 맡겨 지으니 논둑에 풀만 베고, 물꼬만 보면 된다고 하며 눈길을 피하는 길심씨의 대답이 시원치는 않다. 그래도 이마저도 두 분이 할만하니 할 거라고 생각하기로 한다. 다행한 일이고 감사한 일이다. 나는 카트에 빈 비료 포대를 올리고 거름통을 매고 집으로 돌아온다. 농로를 따라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버지의 걸음걸이는 건둥건둥, 비척비척하다. 먼저 가라며 나를 향해 계속 손짓을 한다.
저녁을 먹으며
"아버지! 논에서는 왜 그렇게 비척거리지도 않고 걸음을 잘 걸어?"
"정신을 팍 차렸제. 내가 젊었으면 그까짓 몇 마지기는 문제도 아닌디 인젠 늙어부렀네."
한다. 성수씨의 농사 투혼이 계속되기를 바라야 하는지? 진정 내려놓길 바라야 하는지? 모르겠는 하루다. 일이 성수씨의 삶을 붙잡아 주고, 사는 의미가 되기도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