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심씨네서(9일째)
호오~ 호오옥~, 호오~ 호오옥~
꼬끼요오~
삐삐삐 삐루아~
째잭째잭째잭 째재잭~
시골의 아침 알람은 새들의 합창 소리다. 굳이 알람이 필요하지도 않지만 맞춰 놓지도 않은 알람이 어서 일어나라고 더 거세어지고 있다. 폭염이라고 온 나라가 들끓지만 시골의 아침은 얇은 이불을 끌어당기게 한다.
시골에 사니 자연스레 아침형 인간이 되어간다. 나이가 들어가는 것이기도 하다. 서울에서 가끔 괴롭히던 불면증은 사라지고, 깊게 자니 자는 시간은 오히려 줄었다. 새들의 합창소리에 눈을 떠 하늘가에 걸린 소나무를 감상한다. 잠을 깨우던 그 많은 합창단원들은 어디에서 노래 솜씨를 뽐내는지 도통 보이지 않는다. 성수씨, 길심씨는 이미 논으로 밭으로 나갔다. 새집을 나와 마당을 건너 헌집으로 들어가 아침을 준비한다.
성수씨가 먼저 들어와 씻고 길심씨를 기다린다. 길심씨는 집으로 오는 길에 학교 가기 싫은 아이처럼 해찰을 하며 온다. 핸드카트를 밀고 오며 농로에서 쉬었다가 남의 논도 기웃기웃 들여다보고 꽃도 본다. 자주 다니는 길이어도 새로운 길에 들어선 듯 두리번거린다. 집 사립에 들어서면서부터는 눈에 보이는 풀도 뽑고 작은 돌도 치운다. 그러다 보니 집에서 아침식사를 위해 기다리는 아버지와 나는 폭발할 듯 화가 난다. 길심씨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아이 같다.
아버지는 논둑을 베는데 얼마나 힘들었는지에 대해 길심씨가 밥상 앞에 앉으면 어리광을 부리듯 비로소 이야기한다.
"엄메, 무자게 더워서 땀으로 목욕을 해부렀네."
"그랑께 힘들었겄소잉. 고생했소."
성수씨는 아이처럼 길심씨에게 인정받고 싶어 한다. 두 분을 보니 아이가 되어가고 있다.
낯선 곳에서는 의기소침해지고 집에서는 한없이 당당하다. 점심때는 두 분이 자주 가는 순댓국집에 갔다. 아버지는 낯설어하고 식사할 때도 아이처럼 자꾸 흘리고 입에 묻혀가며 드신다. 전에는 그러지 않았는데 말이다. 문득 나이를 거꾸로 먹어 아이가 되어 가고 있는 것 같다.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가 잠깐 스친다. 이럴 땐 마음이 짠하다.
밤에 잠들기 전엔 나는 길심씨의 궁둥이도 토닥거려 준다.
"아이고, 우리 길심씨 오늘도 고생했네. 이제 얼른 주무셔."
하면 은근히 아이처럼 좋아한다. 길심씨는 지난밤엔 자다 깨서는 잠이 오지 않아 거실 창가에 앉아 하나, 둘, 셋, 넷... 별을 세고 또 세었단다. 별을 세었다는 길심씨가 낭만적으로 멋지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왠지 혼자 앉아 밤 하늘을 올려다봤을 모습을 그려보니 그 또한 가슴이 찡하다. 이제 나도 나이가 들어가니 부모님에 관한 한은 이래도 저래도 마음이 괜스레 코끝이 찡해지곤 한다.
어린 시절처럼 두 분과 함께 한지 2주가 되었다. 일에 대한 욕심과 집념만 빼면 걸음걸이도 아장아장, 드시는 것도 점점 아이 입맛으로 변해간다. 어쩌면 자연으로 다시 돌아가는 길에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덜컥하기도 하지만 자연스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이가 깊이 들어 다시 아이가 되어 가는 것은 왔던 곳으로 돌아가는 길이니 후회스럽지 않게 준비하고 맞이해야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