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심씨네서(8일째)
어제 저녁에 이어 아침에도 오리탕이다. 맛이 더 깊어졌다. 성수씨는 길심씨 오리탕이면 여타의 다른 반찬이 필요 없다. 수저를 들어 바로 밥 한 공기를 국그릇에 엎어말아 버린다. 말이 탕이지 국물이 훙덩한 오리국이다. 길심씨의 요리는 성수씨에게 맞게 특화되어 있다.
영암 오일장에서 배가 갈라져 누워 있는 오리를 보며
"오리, 요놈으로 잘라주쑈. 요기 다리는 그대로 크게 잘라주고라잉. 기름은 좀 띠어주고 돔뱅이(모래주머니)도 넣어주쑈잉 "
길심씨의 주문에 따라 동그란 나무 그루터기 도마에서 사정없이 오리가 토막이 난다. 검은 봉지에 담아 건네 받는데 무게가 묵신하다. 성수씨는 벌써 싱글벙글
"오리고기가 맛있어. 소고기보다 맛있당께"
집에 오자마자 토란대를 따뜻한 물에 담가 불리고는 토막난 오리고기를 수돗가에서 깨끗이 씻는다. 길심씨는
"핏국을 잘 빼야 한다잉. 그라고 기름을 다 띠어내야 한당께. 얼른 물 좀 끼래 오니라."
끓여온 물을 부으니 길심씨는 껍질에 붙은 기름덩이를 떼어낸다.
"엄마, 껍질도 다 띠어내야제."
"아녀, 기름만 띠어내면 되는 것이여. 껍질 다 띠어내면 뭐 먹을 것이 있다냐?"
그동안 몇 번 오리백숙을 하면서 나는 껍질을 거의 다 떼어냈다. 껍질과 기름을 구분하지 못했다. 껍질 아래 붙은 것이 기름이었다. 이제야 길심씨에게 제대로 배웠다. 물론 껍질을 다 벗겨내고 요리하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나는 길심씨의 요리 아바타가 되어 지시대로 토란대를 여러 번 헹구어 짜놓고 깨끗이 손질된 오리고기를 큰 냄비의 끓는 물에 넣어 후루룩 다시 한번 헹구어 내고는 본격적인 양념이 시작된다.
길심씨는 마당가 텃밭을 한 바퀴 휘 돌아 깻잎, 미나리, 대파, 고추 등을 한 바구니 따온다. 오리탕에는 된장이 주인공이란다. 길심씨의 맛있는 된장과 국 간장으로 간을 맞추고 고춧가루와 마늘, 양파 등 갖은 야채를 넣어 자글자글 끓이면 된다. 마지막에 들깨가루도 무심하게 툭툭 넣으니 맛이 난다. 길심씨의 특별한 레시피는 60년 동안 하늘로 날아오른 수백마리의 오리가 증명한다.
내 어릴 적부터 길심씨는 집 뒤의 영산강 수로에서 노니는 오리를 잡아다 직접 털을 뽑아 배를 가르고 손질해서 요리를 했다. 성수씨가 젊어 한때 건강에 문제가 있었을 때 그를 위한 보양식이었다. 그렇게 하여 성수씨의 건강을 지켰고 최애 음식이 된 것이다. 불포화 지방산이 풍부한 오리고기는 보양식으로 그만이라는데 나이가 들어서도 특별히 좋아하는 음식이 있어 정말 다행이다. 다음 영암 오일장에는 아마도 당연히 이견 없이 장어를 사러 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