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벌써 한나절

길심씨네서(6일째)

by 전난희

새벽에 눈을 떠보니 여지없이 길심씨는 사라지고 없다. 매일 5시도 안된 시간이면 논으로 밭으로 간다. 오늘은 4시에 눈이 떠져 헌집으로 가서 아버지와 화투로 한 판을 떴단다. 두 분의 화투판 시시비비를 가르는 큰소리가 마당을 건너 새집으로 와 꿈결인 듯 들렸던 것 같기도 하다.


길심씨네는 한 마당 두 지붕 집을 거느리고 산다. 수십 년 된 기와집이 낡아 몇 년 전 아래 헛간채를 허물고 같은 마당에 새집을 들였다. 그래서 두 분은 별거 아닌 별거를 하며 산다. 가끔은 합방도 한다. 새 집을 비워두면 안 된다며 왔다리 갔다리 하며 밥은 헌집에서, 쉬는 것은 새집에서, 잠은 따로따로 잔다. 두 딸이 새집을 지어 별거를 하게 만든 것이다.


5시에 논으로 밭으로 나간 길심씨, 성수씨는 8시경 집으로 들어온다. 시계를, 핸드폰을 가지고 나간 것도 아닌데 얼추 같은 시간에 맞춰 들어와 수돗가에서 씻는다. 먼저 들어온 성수씨는 나를 불러 등에 물을 부어 달라며 엎드린다. 실로 오랜만에 등목을 시켜드린다. 등은 좁아졌고 어깨의 피부도 늘어져 쭈글쭈글하다. 내가 언제 또 등목을 시켜드릴지 몰라 물 한 바가지에 사랑을 듬뿍 담아 끼얹는다. 그리고 수돗가를 가로지르는 빨랫줄에 수건을 대령하여 드린다.


느지막이 일어난 나는 텃밭에서 고추, 가지를 따고 처마 밑 시렁에 매달린 마늘도 한 뿌리 쭉 뽑아다 바로 까서 양념으로 사용한다. 마당가 텃밭이 냉장고다. 서울의 집에서라면 냉장고에 들어 있던 것들이 텃밭에 처마 밑에, 창고에 다 들어있다. 나는 마당을 한 바퀴 휘 돌아 부엌으로 가서 아침을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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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나기 전 어떤 요리를 할지 머리를 굴린다. 되도록이면 넘쳐나는 야채로 색다른 요리를 하고 길심씨의 냉동고를 털어 단백질 보충할 생선을 굽는다. 수돗가에서 길심씨가 씻는 것을 보고 나는 상을 차린다. 길심씨는 상차림을 보고는

"조오타. 얼씨구. 딸한테 밥을 얻어먹으니 다 맛있다."

한다. 팔십 평생 까탈스럽기 그지없는 성수씨 식사를 챙기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다. 나도 나이 먹으니 여자로서 길심씨의 수고가 헤아려진다. 그래서 길심씨의 팔순 여행 후 눌러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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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분은 새벽부터 꼬박 3시간을 일했으니 한나절 일을 한 셈이다. 맛있게 드시는 모습을 보니 서울에서 전전긍긍했던 모든 일들이 사라지고 알게 모르게 받은 상처에 새 살이 솔솔 돋는다. 효도보다는 내게 더 치유와 힐링의 시간이 되고 있다. 아, 어쩌나 이제 서울에 가기가 싫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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