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모네 집을 찾아서

길심씨네서(20일째 끝나고~)

by 전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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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잘못 들었다. 가다 보니 집도 없고 마을도 보이지 않는다. 운전석에 앉은 나를 포함한 성수씨와 길심씨도 창밖을 계속 두리번거린다. 예전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논도, 밭도, 길도 달라졌지만 저수지만이 이곳이 맞으니 어서 오라고, 잘 왔다고 고요하게 말하고 있었다. 이대로 직진하면 성수씨가 제안한 일정이 어그러질 수밖에 없다. 다행히도 금세 보인 찻길 오른쪽 빈터에 차를 세우고 기억을 더듬었다. 차를 돌려야 할 것 같았다. 차가 뜸한 시골길에서 다급한 마음에 불법 유턴을 했다.


월출산이 가장 아름답게 보인다는 영암 덕진 차밭에 도착해서도 차에서 내리지 않던 아버지가 여길 가보고 싶다고 했을 때 '오호라!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언제고 기회가 오는구나.' 싶었다. 언젠가 나도 가보고 싶었던 곳이니까. 앨범 속 어린 시절의 빛바랜 흑백사진처럼 내 기억 속에도 그렇게 희미하게 남아 있는 곳이다. 가끔은 꿈인 듯, 기억인 듯 그곳에서 놀던 일이 생각난다. 반갑게 맞아주고 그 시간을 감내해 준 그분들이 나이가 들면서 더 감사하게 다가왔다.


길심씨는 뭐 하러 가냐고, 가봐야 소용없다고 그냥 바로 집으로 가자고 하더니 근처에 와서는 가장 열심히 기억을 더듬어 길을 찾았다. 차를 돌려 몇 채의 집이 보이는 마을길로 접어들었다. 내가 초등학교 때인지 그 전인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곳에서 놀았던 따스한 추억이 있던 곳이다. 많은 세월이 흘렀으니 길을 잘못 들 만도 하다. 몇 채의 집이 눈에 들어오고 마을이 보인다. 아버지는

"여그가 맞구만..."

감회에 젖은 듯 갈라진 목소리가 촉촉해진다.

"누나가 여그 살았제. 몇 번 와봤는디 이렇게 달라져부렀으까?"


마을 안으로 들어가자 정자가 보인다. 남자 어르신 두어 분이 앉아 계신다. 정자를 지나쳐 위로 올라가니 아버지가 왼쪽으로 가라고 한다. 나는 운전대를 왼쪽으로 돌렸다. 내 기억 속에는 집의 구조와 언니, 동생들과 놀았던 기억만 있을 뿐, 마을 안 골목길의 기억은 거의 없다. 성수씨도 차창 밖으로 연신 두리번거릴 뿐 집을 찾지 못하고 다시 돌아 나와 정자로 갔다. 아버지가 내려 정자에 앉아 계신 분들에게 무어라 여쭙고 성수씨가 다시 차에 탔다. 왼쪽 골목으로 돌려서 차를 세웠다.


시골살이 중 딸이 떠날 날이 며칠 남지 않았을 때 성수씨가 외식을 하자고 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길심씨가

"그럼 당신이 쏘쇼잉?"

하니 성수씨는 호기롭게

"그람, 내가 가자고 했응께 내가 내야제."

했다. 점심시간에 맞춰 내가 출발 시간을 정했다. 정확한 시간을 정해 놓지 않으면 계속 재촉하는 성수씨를 시골살이 하며 알았기 때문이다


소파에 앉아 재촉은 못하고 나를 눈으로만 쫓고 있는 아버지에게

"아버지! 가세!"

했더니 얼른 일어나 마당으로 나가더니 고샅길에 세워 둔 차에 올랐다. 어머니는 허둥지둥 윗옷을 여미지도 못하고 차에 탔다. 여행 가듯 강진에 있는 매운탕집을 향해 출발했다. 몇 번 간 적이 있는 곳이다. 영암 읍내를 지나 고작해야 20~30분 거리를 가면서도 두 분은 어린아이처럼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논밭을 보며 다른 나라 구경하듯 도란도란 이야기한다. 나는 최대한 속도를 늦추었다.

"우리 깨보다 더 잘 되얐구만."

"여기도 고구마를 많이 심었네잉."

"나락은 우리 것이 더 잘 되얐구만. 흐흥."

"아이고, 여기도 우사가 있구만."

"아야, 아야 이 길이 맞냐? 으응 맞구만."


아버지 덕분에 점심으로 맛있는 메기매운탕을 먹고 차에 올랐다. 길심씨의 팔순 여행 후, 여행에 맛이 들린 성수씨에게

"아버지! 어디 가고 싶은가?"

했더니 청룡동으로 돌아서 가자고 한다. 이곳 식당을 오가는 길목에서 들어가 있는 마을이다. 두어 번 식당을 오가며 그때마다 그곳을 들러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수 십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피를 나눴는데 왜 그러지 않았겠나. 집에서 그리 멀지도 않은데 그동안 마음속에만 담아놓고 갈 이유를 찾지 못한 것이다. 누님은 진즉에 가셨지만 누나가 살았던 집이라도 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 언저리만 지나도 누님 생각이 났을 것이다. 어디 가고 싶은지 묻지 않았다면 마음에 묻어버리고 지나쳤을지도 모를 일이다.


성수씨와 나만 차에서 내려 골목으로 들어갔다. 첫 번째 집이 아닌가 살폈다. 성수씨도 나도 고개만 갸우뚱거렸다. 더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니 대문이 굳게 잠긴 한 집이 있다. 긴가민가 하는 순간 오래된 무언가를 발견했다. 바로 고모부의 함자가 적힌 문패였다. 대문을 활짝 열고 오래전의 그 기억 속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자꾸 문을 흔드니 아버지가 말린다. 발뒤꿈치를 들고 목을 한껏 빼고 집안을 기웃거렸다. 잘 보이지 않았다. 대문 옆으로 가보니 살짝 허물어진 담장 위로 우거진 담쟁이덩굴이 보초를 서고 있다. 폭염에 보초들이 시들한 사이 아버지랑 나는 기억을 떠올리며 집안을 빠르게 이리저리 훑어보았다.


어렴풋한 내 기억에도 집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주인 잃은 문패를 그대로 달고 있는 집은 비어 있다. 마루 왼쪽의 끝방문 문고리를 당겨 열고 들어가면 골방이 나올 것이다. 그 골방에서 왁자지껄 재미나게 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다. 내 웃음소리도 들어 있다. 마루에는 양파가 널어져 있다. 영암 읍내에 가까이 사는 언니가 밭농사를 지며 집을 건사할 것이다. 고모가 살아계셨다면 더 두꺼운 끈으로 연결되었을 테지만 끈은 점점 가늘어졌다.


코로나로 어느 곳도 가기 힘든 세상이 되었다. 이번 추석 명절에도 비대면으로 숫자를 세어가며 시골 부모님을 만나러 가야 할지도 모른다. 아주 오래전에 병으로 돌아가신 고모와 그 후에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신 고모부는 10남매를 두었다. 벌써 수십 년이 흘렀다. 10남매를 두고도 조카들이 놀러 오는 걸 마다하지 않았다. 지금은 어떤가? 코로나 시국이 아니라도 친척 집 왕래가 어려운 시대다. 몸이 오고 가야 마음도 오고 간다. 어릴 적 고모 집에서 놀았던 기억으로 잦은 왕래는 없지만 고모네의 언니, 오빠, 동생들은 내게는 특별하다.


지금은 구십 즈음이 되었을 고모와 고모부는 내 기억 속에는 아직도 젊은 날의 모습 그대로다. 아버지는 담장에 서서 어떤 모습의 누나를 기억했을까? 비어 있는 집을 뒤로하고 땅만 바라보고 나오는 아버지의 얼굴에는 알 수 없는 쓸쓸함이 베어 있었다. 아버지에게 누님과의 기억속 잠깐의 만남을 이루어드린 것이 이번 시골살이의 가장 큰 보람으로 남겨도 좋을 것 같다. 여러모로 행복한 시골살이였다. 여름에는 푸른 들판을 실컷 봤으니 가을에는 황금들판을 실컷 보고 와야지. 길심씨네서 시골살이(가을)가 벌써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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