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리스트와 맥시멀리스트의 공생

길심씨네서(17일째)

by 전난희

"으이그, 내가 못 살어 딱 뽑아부렀구만. 뭘 심어 놀 수가 없당께."새벽 어스름 녘 논에 나갔다가 월출산 자락 위에 떠오른 아침 해와 함께 나란히 들어온 길심씨가 마당가에 앉아서 혼잣말로 넋두리를 하고 있다. 성수씨가 마당 빗자루질을 하면서 시멘트가 깨진 틈 사이로 나온 하루살이꽃을 뽑아버린 것이다. 나는 어머니의 넋두리를 들으면서도 입을 다물었다. 그 전말을 알지는 못했지만 말릴 새도 없이 그 현장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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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내에서 얻어다 심은 것인데 꽃 한 번 피우고는 죽어버려 속상했단다. 그런데 어느 날 보니 씨가 날아가 마당의 깨진 시멘트 틈 사이에 피었더란다. 반가워 뽑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다는데 기어코 그 하루살이꽃은 생을 마감했다. 뽑혀서 버려진 꽃을 찾아다 다시 심자 했더니 요즘 같은 날씨에 살겠냐며 포기한다.


길심씨는 뭐든지 버리지 못하고 성수씨는 툭하면 뭐든지 버린다. 화분도 꽃도 있어야 할 자리가 아니면 버리고 뽑아버린다. 그래서 길심씨는 집안에 뭐가 안 보이면 덮어놓고 성수씨 탓을 한다. 성수씨도 마찬가지다. 집안이 지저분하면 버릴 줄 모른다고 길심씨에게 타박을 한다. 성격이 서로 비슷한 게 좋은 것일까? 서로 다른 게 좋은 것일까? 성수씨 같으면 집안에 남아나는 게 없을 것이고, 길심씨 같으면 아마도 집안이 쓰레기장이 될지도 모른다.


길심씨는 물건 살 때 담아주는 비닐봉지 하나도 버리지 않고 여기저기 쑤셔 박아 놓는다. 심지어 젖은 비닐봉지는 씻어서 말려 사용한다. 하지만 성수씨는 용케도 찾아서는 버려버린다. 새 비닐팩이 쌓여 있지만 언제나 쑤셔 박아 놓은 봉지를 찾아 쓰려는 길심씨를 아버지는 이해하지 못한다.


몇 달 전 동생이 길심씨네 와서 머물다 간 적이 있다. 동생은 집을 들어 엎어 길심씨가 오랫동안 쌓아 놓고 안 쓰는 물건들을 아버지랑 죽이 맞아서 버리고 정리했다. 헌집, 새집의 집안이 훤해졌다. 하지만 길심씨는 요즘도 무언가 찾다가 없으면 구시렁 구시렁거린다. 아무리 정리가 안 된 듯 보여도 나름의 질서가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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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이면 7월의 마지막 날이다. 성수씨는 벌써 달력 한 장을 뜯었다. 어제는 길심씨가 달력을 내려 넣고 그동안 뒤로 넘기지 않고 찢어내버린 것을 보고는 구시렁거렸다.

"뭣할라고 찢어내버리까잉. 뒤로 뒤께 노면 뭐라도 한 번씩 찾아볼것인디."달력 한 장도 한 사람은 떼어내고 한 사람은 넘겨 놓자 한다. 달라도 너무 다르다. 성수씨가 달력을 떼어내버리는 현장을 목격하고 내가 길심씨에게 일러바쳤더니

"내비둬라. 내가 어쩌것냐?"

어제의 구시렁거림은 어디 갔나? 실상은 혼자서만 구시렁거릴 뿐 앞에서는 아무 말 하지 않는 두 분, 딸이 있어 하소연하는 것일 뿐. 앞과 뒤가 다르게 공생하는 법을 알고 있다. 나이가 드시니 때론 아이처럼 성수씨와 길심씨의 사는 법이 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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