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연한 '그리움'이 아니라... 그저 '보고싶다' 라는 진심.
20160128
…보고 싶어. 동그랗게 웅크린 내 몸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말해주고 싶어. 이렇게 한 참이나 지나버린 시간을 돌릴 수는 없으니까. 지금이라도 말해주고 싶은데, 어쩌면 좋을까. 어떻게 말해야 할지 나는 잘 모르겠어. 그리고 왜 갑자기 이런 기분이 들어버린 건지도 나는 잘 모르겠어. …정말 아무것도 모르겠어. 왜 이렇게 된 건지….
- kidcat 「그리고….」중
어떤 계절이, 어떤 달이…, ‘나의 추억’을 부르는 순간이 있다.
그건 나의 의사와는 전혀 상관이 없이 진행이 된다. 원할 때 보다 원하지 않을 때가 많지만, 내 의사와 상관없이 뇌의 한 구석에서 그 ‘추억’이라고 가장한 기억들이 비집고 나와서 내 시야에 들어오는 온갖 장면들 위에 덧 입혀지고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그리고 결국은 헛헛한 마음만 남기고 다시 그 비좁은 어느 한 구석으로 가 버린다.
1월과 2월 그리고 벚꽃이 피는 풋풋한 계절이면 그러하다.
지금은 만날 수 없는, 그렇지만 내 기억에 가장 오래 남아 있는 사람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계절이라서 그런 거라는 것쯤은 알고 있다. 그래서 애써 담담하게 그 순간을 흘려보내려고 여러 번을 노력한다. 그러다가 결국은 비집고 나온 기억이, 그 추억이 못내 그리워지면 현실의 나를 돌아보고 매몰차게 그 순간을 깨 버린다.
‘현실의 나’는 ‘현실의 그’를 볼 수도 없고, 이제야 본다고 한들 ‘그 때의 나’와 ‘그 때의 그’는 아니라서 지금의 계절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분명하게 말해주고 싶은 순간들이 있다.
지금 이 순간에 누군가는 당신을 ‘보고 싶어.’하는 그 사실을 말해주고 싶다. 그 사람이 나라서 실망할지, 아무런 감정도 들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일방적인 이 말을 전달하고 싶은 간절함은 매 번 반복되고 있다.
어떻게 전달해야 할지, 어떻게 말해야 할지도 모르면서 말이다. 왜 갑자기 그런 기분이 드는 건지도 정확하게 모른 채 누군가를 보고 싶어 하는 건, 그리고 그 감정을 그냥 간직하고 싶어 하는 건, 내 마음의 조각이 아직 완전히 부서지지 않아서일지도 모른다. 산산이 부서져서 조각조각 되어버린 사람들은 아예 떠오르지 않는다.
버스를 타고 갈 때, 진눈깨비가 날리는 길을 조심스럽게 걸으며, 해가 지고 난 뒤에 간판들 사이의 불빛이 어른거리는 순간. 유난스럽게 매 번 반복되는 이 순간이…, 나는 또 견뎌야 하는 막연한‘그리움’이 아닌 ‘보고 싶어’하는 마음 그 자체라서 어찌할 바를 몰라 울먹이며 그 자리에서 서 있었다.
결국은 지나갈 것이다. 계절은 변하고, 또 달은 넘어 가겠지.
‘그리움’은 사라지는데, ‘그 때의 우리’는 내 머리 속에서 다시 돌아오겠지.
나는 그렇게 당신에게 전하고 싶은…, ‘보고 싶어’라는 말을 겨우 견디며 살겠지.
'그립다'보다 '보고 싶다'라는 말이 더 아프게 느껴지는건 왜 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