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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dcat혜진 Mar 11. 2016

당신에게도 소중한 '그 곳'이 있나요?

모든 소중한 '그 곳'의 사장님들에게 드리는 당부

20160228





…기억을 다시 써간다는 건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기억 어딘가에 늘 자리 잡고 있던 건물들이 사라지고, 지인들 중 누군가가 갑자기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되는 나날. 사람들은 각자의 기억을 공유할 때마다 그 사람 혹은 그 가게가 지금도 남아 있는지를 서로 확인하곤 했다. 그러다가 단 한 명이라도, 어떤 장소가 더는 존재하지 않는 곳이 되었다는 말을 하면 함께 기억을 공유하던 모든 사람들이 갑자기 침묵에 잠기기 마련이었다. 각자 자기 머릿속에 들어 있는 일상의 공간에서 그곳에 관한 기억을 지우느라 생기는 공백이었다.

…사라진 것들은 서서히 존재감이 무뎌져가기 마련이었다. 어떤 장소를 떠올릴 때마다 그곳이 아직 남아 있는지 남아 있지 않은지 확신할 수 없는 난감함. 그렇게 세상이 점점 희미해져갔다. 존재 여부가 확인 될 때까지 그냥 흐릿한 기억으로 남겨두는 일이 많아졌다.

-배명훈 장편소설 「맛집 폭격」중




누군가를 생각할 때, 우리는 무엇을 가장 많이 떠올리는가.


그 사람과 함께 했던 대화, 그 사람과 나누어 먹었던 음식, 그 사람과 함께 갔던 장소.


어떤 기억들은 그 ‘사람’ 자체보다 대화, 행동, 그리고 음식이나 장소 등으로 기억되기도 한다. ‘아, 걔가 그렇게 말했어.’, ‘그 때 뭘 했는데, 굉장히 좋았어.’ ‘같이 뭘 먹었는데, 너무 맛있었지.’ ‘거기는 처음 간 곳이었는데, 그때가 마지막이었어.’


나의 경우 장소와 음식, 그리고 대화와 행동 순서로 기억되는 것 같다.


전쟁으로 자신의 기억 속에 있던 맛 집이 하나씩 사라져가는 내용의 이 소설을 읽으며, 나는 굉장히 우울했다. 사실은 제목만 봐도 ‘무시무시했다’는 말이 정확하다.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맛 집의 음식과 함께 인생에서 중요한 누군가에 대한 기억들도 사라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은 상상만 해도 암울한 사건이 아닌가. 게다가 실제로 오랜만에 찾아갔던 맛 집이 문을 닫고, 또 다른 가게는 주인이 바뀌어 메뉴가 달라진 것을 연타로 경험했던 나에게는 정말 초절정의 막막함이 아닐 수 없었다.


대체적으로 집에서 손님을 만나는 시대가 아닌 요즘에는 어느 장소, 어느 시간, 그리고 어느 음식이 누군가와 공유하고 공감하는 가장 중요한 매개체가 되고는 한다. 특히나 나처럼 딱히 다른 고민은 하지 않지만 ‘뭘 먹을지’에 대한 고민은 매우 깊게 하는 사람들에게는 그 것은 참으로 중요한 일이지 말이다.


보통 집에 혼자 있을 때는 그런 고민을 하지 않지만, 누군가를 만나서 식사를 하거나 차를 마실 경우, 나는 몇 가지 가장 안전한 장소를 생각해 놓고는 한다. 그런데 그 안전한 장소라 여기고 맛있는 음식이라고 여겼던 것들이 사라진 것을 순식간에 경험했을 때, 특히 직접 찾아가서 눈으로 본 경우의 충격은 단지 몇 분간의 침묵으로 끝나지 않는 것이 확실하다.


아! 여기 문 닫았어! 이제 나는 어디로 가지!


단순히 많은 음식점 중에 한 곳, 많은 카페 중에 한 곳이 아니다. 내 기억이 하루하루 적립식 카드처럼 쌓이던 그 어느 날, 나에게 말도 없이 사라져 적립 되어있던 기억마저 단절되고 더 이상은 쓸 수 없는 기분이 든다. 맛있는 음식을 기다리고, 그 것을 먹으며 이야기를 하고, 따뜻한 온기의 차를 나누며, 때로는 알코올음료에 이런 저런 감정을 섞어버리는 그 일들이 내 기억에는 있는데, 더는 새로 쓸 수 없는 것이 되어버린다. 쓸모없어진 적립카드처럼 내 기억은 그 때 함께 했던 그 누군가가 아니면 이제는 아무도 모르는 허상이 되어 버리는 기분이란…. 막막함, 허탈함 따위의 말로는 설명이 안 된다.


그래봤자 새로운 곳을 또 찾아서 내 입맛을 맞추고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기억들을 쌓으면 될 일이라고 여기면 그 뿐이겠지만, 그 과정을 매번 주기적으로 반복한다고 생각해보라. 세상이 이별과 만남의 연속이라지만, 그 연속적 쳇바퀴는 사람만으로도 이미 충분하다.


‘그 곳’이 특별한 이유는 사람 때문이지만, 또 그 사람과의 만남이 즐거운 이유는 ‘그 곳’ 때문이기도 한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있을 것이다. 좋은 건 나누고 싶은 마음에 드는 사람이 생기면 어김없이 데려가는 ‘그 곳’. 여기는 ‘내 것’은 아니지만, ‘내 곳’이라고 여기는. 그 어딘가가 한 곳 쯤은 있을 거라는 말이다. 음식이든, 차든, 커피든, 술이든. 무언가를 나누고, 기억을 쌓으며 이야기를 이어갈 어딘가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런 공간이 어느 날 나에게 이별의 예고도 없이 사라진다면, 그 충격은 생각보다 꽤나 크다.


그러니 ‘맛집폭격’ 같은 무시무시한 제목의 소설을 읽으며, 제발 나에게는 앞으로 그런 일이 많이 생기지 않길 바라였다. 기억도, 공간도, 사람도 잃지 않으며 알뜰살뜰하게 적립식 카드를 채우듯이 꼬박꼬박 모아서 내 마음이 누추하여 갈 곳이 없을 때, 어느 날 한 번 제대로 꺼내어 볼 수 있도록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리 모두의 ‘맛집관리’가 필수겠다.


맛있는 음식점, 카페, 술집 사장님들이 이 글을 보신다면 당부 드린다.


그러니, 혹여 언젠가 피치 못하게 이별을 하시더라도 부디 예고 없는 이별은 하지 마시라. 어딘가의 ‘그 곳’과 누군가의 ‘시간’이 만들어낸 수백 수천가지의 기억을 그렇게 매정하게 침묵으로 묻어버리시면 아니 될 일이다.





새로운 간판을 바라보는데, 여전히 내 기억은 예전의 '그 곳'에 있어서 한 동안 침묵(침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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