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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통 Mar 30. 2016

치킨 쿠스쿠스

이태원 요리 교실

 자주 가는 모로코 음식점이 있다. 모로코 사람이 하는 모로코 음식점.

그곳에 가면 들어서자마자 반가워해주는 왁자지껄한 목소리들이 있고, 주방에서 일하다 말고 나와서 볼에 키스를 해주는 친구 '사나'가 있다. 사실 내가 그곳에 자주 가는 이유는 그런 따뜻함 때문이다. 그리고, 쿠스쿠스! 쿠스쿠스는 좁쌀모양의 파스타인데, 주로 닭이나 양, 소고기와 야채를 익힌 요리를 곁들여 먹는 모로코 음식다. 내 친구 사나가 만드는 쿠스쿠스는 그야말로 최고다.

 쿠스쿠스를 접시까지 핥을 듯 먹어치우는 날 보며 흐뭇해하던 사나가 어느 날,

"언니, 쿠스쿠스 가르쳐줘요?" 한다.

나는 고개를 힘차게 끄덕이며 당장 그녀를 집으로 초대했다.

 

 약속한 날짜가 되고, 우리는 이태원의 한 외국 식료품점에서 만났다. 그녀와 가게 밖에서 만나기는 그때가 처음이었다. 양손 가득 봉지를 들고 나타난 그녀는 평소보다 더 환한 얼굴이다. 뭘 그렇게 무겁게 가져왔냐고 하니까 우리 집에 쿠스쿠스 만들어주러 간다고 했더니 그녀의 언니가 가게 냉장고에서 쿠스쿠스 재료를 챙겨서 보냈단다. 벌써부터 마음이 뭉클해진다. 봉지를 열어보니 무, 당근, 양배추, 양파, 주키니 호박이 들어있다. 우리는 닭 한 마리와, 쿠스쿠스 한상자, 비프스톡 하나를 사고 집 가까운 야채가게에서 고수 한 단을 사서는 집으로 왔다.


 사나는 우리 집 부엌에 들어서자마자 앞치마를 두르고 손을 씻은 다음, 나의 일일 쿠스쿠스 선생님으로 변신한다. 본격적으로 소매를 걷어붙이고 재료를 손질하는 법부터 알려준다. 먼저 닭을 흐르는 물에 깨끗이 씻은 후 레몬즙을 넣은 물에 담가놓는다. 역시 씻은 야채를 큼직하게 썰어 준비한다. 특히 당근은 가운데 심을 빼서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른다.

야채가 손질되면 팬에 양파와 단단한 야채를 볶은 후, 레몬즙을 넣은 물에 담가 두었던 닭을 넣고 재료가 잠길 적도의 물을 넣어 끓인다. 이때에 사나는 배시시 웃으며 노란색 가루가 담긴 작은 비닐봉지를 꺼낸다.

"언니, 이거 알아요?"

자랑스럽게 선보이는 그 노란 물체는, 쿠스쿠스에 넣을 갖가지 양념을 섞은 것이었다. 모로코에 가면 시장에 색색가지 양념들을 산처럼 쌓아놓고 파는 가게가 많이 있는데, 가게마다 주인의 비법이 담겨있는 믹스쳐를 판다고 했다. 얼마 전 마라케시 그녀의 단골 가게에서 공수해왔다고. 사나는 신이 나서 그녀의 동네 이야기를 한참 들려준다.  다정한 사나는 그 귀한 양념을 또 나에게 거저 준다.   


 노란 양념가루와 비프스톡을 넣고, 싱싱한 고수도 썰어 넣는다. 고수는 생으로 먹을 때와 이렇게 푹 익힐 때, 그리고 함께 먹는 음식에 따라 모두 다른 맛을 내는 매력만점의 식재료다. 그리고 끓이기. 닭과 야채가 익는 동안 우리는 방에서 민트 티를 마시기로 한다.



 나도 사나를 위해서 준비한 것이 있었다. 모로코 스타일의 찻잔과 쟁반, 그릇을 민트 티와 함께 나름 야심 차게 준비한 것이다. 그녀가 가게에서 나를 위해 끓여주는 차만큼 맛있진 않지만, 레시피를 뒤져서 비슷한 맛을 내보았다. 설탕을 듬뿍 넣고 생민트를 충분히 넣은 모로코 스타일의 차. 사나는 내가 준비한 차를 마시며 아이처럼 기뻐했다.

 사나는 한국말이 서툴고 나는 모로코 말을 하지 못해 우리는 다양한 언어로 대화를 한다. 한국말로 했다가, 그녀에게 몇 마디 배운 모로코 말로 했다가, 영어로 했다가, 불어로 했다가. 우리가 하는 언어는 모두 미숙하지만 대화는 가능하다. 마음은 언어로만 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닭과 단단한 야채가 푹 익으면 부드러운 야채를 넣고 좀 더 끓인다.

그동안 쿠스쿠스를 준비한다. 좁쌀처럼 작은 쿠스쿠스를 뜨거운 물에 몇 분 담가놓으면, 촉촉하게 수분을 빨아들이며 익는다. 익은 쿠스쿠스에 올리브 유를 넣어서 손으로 부슬부슬 풀어준다.




준비한 그릇을 꺼내고, 거기에 쿠스쿠스를 깔고, 익은 야채와 닭을 올린다. 노랗게 우러난 소스도 쿠스쿠스에 쪼르륵 골고루 뿌린다.





많은 야채와 고기, 갖은 향신료가 잔뜩 들어간 쿠스쿠스. 그녀에겐 흔한 집 밥이고 나에게는 매우 이국적인 그 음식을, 모로코와 한국의 여자 둘이, 이태원이란 곳에서 마주 앉아 먹었다. 닭은 야들야들하고, 야채들은 말캉하게 잘 익었다. 모든 재료가 너무나 한데 잘 어우러졌다. 무척 많은 양이었는데 여자 둘이서 가뿐하게 해치웠다.


 이국의 요리를 배우는 일은 언제든지 그 나라로 떠날 수 있는 비행기 티켓을 얻은 것처럼 신나는 일이다. 내가 몰랐던 세상을 경험하는 일이다. 그래서 내가 풍부해지고, 겸손해지는 일이다. 그리움이 또 하나 생겨나는 일이다.  


내가 너무 좋아하고 고마워하자, 사나는 나더러 다음에 김치찌개 만드는 법을 알려달라고 했다.

"참치 김치찌개 너무 맛있어 언니. 만드는 거 알려주면 좋아요."

하면서.

"그래, 사나야, 넥스트 타임, 김치찌개 만드는 법 알려줄게."

다음 요리교실은 참치김치찌개다.


흠. 그다음 시간은 고등어 김치찜 쿠스쿠스는 또 어떨까. 한모 협작 퓨전으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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