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젠 이오네스코의 '외로운 남자' 71페이지
도서관에서 책을 빌렸다.
외젠 이오네스코의 소설 '외로운 남자'였다.
두껍지 않은 이 책의 딱딱한 표지는 가장자리가 하얗게 너덜거렸고, 불쾌하지 않을 정도로만 낡아있었다. 그리고, 귀퉁이가 접혀있는 페이지가 많이도 있었다.
한동안 잠잠했던 기침이 도져서 온몸이 들썩이고 머리가 뎅뎅 울렸는데, 그놈에 기침이 마음도 뒤흔드는 것이었다. 혼자 사는 집에서 밤새 하는 기침이 내 마음까지 좀 먹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조금만 더 참고 힘내자라며 무리하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모처럼 정규직으로 전환된 일자리가 있었고, 매달 통장에서 빠져나가는 돈이 늘고 있었다. 정신없이 회사에 적응해 갈수록 어쩐지 내 마음은 허전했다. 집 안에서는 쿨럭쿨럭 웅크리고 있으면서, 집 밖에서는 약해 보이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도서관에 '외로운 남자'를 빌리러 간 날은, 근무 중에 눈물이 터졌던 날이었다. 그냥 툭. 더 버틸 수 없었다. 눈물이 한 번 터지자 당황스러울 정도로 오래 흘러 한참을 화장실에 숨어있었다.
이 책을 앞서 빌린 사람은 어떤 마음으로 이 책을 고르고 그 페이지들의 모서리를 접었을까. 그 사람도 나처럼 바보같이 회사 화장실에서 몇십 분을 숨었던 적이 있었을까. 이렇게 약해빠진 나는 어쩌면 좋을까.
그런데 대답처럼, 71페이지 아래에 둥근 얼룩이 있다.
안 그래도 뭉클했던 이 대목에 콕 박힌 둥근 얼룩을 보고 있자니 고마움이 마음에 번졌다. 나는 그 얼룩이 자꾸자꾸 보고 싶다. 정말 오랜만에 약해 빠져서 자유로운 순간이었다. 오히려 마음에 허전함 없이 꽉 차오르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