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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일호 Apr 27. 2018

자유롭게

글쓰고 싶은 당신에게

글쓰기는 자유다.

반복된 일상에 찌들려 살아가고 있는가.

어디 멀리 훌훌 떠나고 싶은가.

마음은 그러고 싶지만 현실은 그게 아니다.

그런 당신에게 자유를 주겠다. 

글을 써라.


몸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지만 정신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할 수 있도록 바꿔야 한다. 몸이 묶여 있는데 정신마저 묶여 있다면 그것은 살아 있는 것이 아니다. 글을 쓰는 동안에 당신은 무한한 자유를 누려야 한다.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누가 당신 옆에서 글 쓰는 것을 지켜보고 있는 것도 아니다. 쓰고 나서 제출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어떤 내용을 쓰더라도 아무도 알 수 없다. 누구를 칭찬해도 좋고 당신을 괴롭힌 사람에게 증오의 화살을 날려도 좋다. 당신이 가 본 곳을 회상해 보아도 좋고 가고 싶은 곳을 상상해 보아도 좋다. 이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를 왜 그냥 흘려보내는가. 그런데 의외로 자유의 문턱도 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왜 그런지 아는가. 글이 가진 고유의 성질에 발목이 잡히는 것이다. 말에는 없지만 글에는 있는 것이 무엇일까. 맞춤법, 구두점, 띄어쓰기, 두괄식, 미괄식, 문단, 단락 등등. 이 중에 하나라도 염두에 둔다면 글을 시작한 당신은 열 줄을 넘지 못 할 것이다. 때로는 한 줄도 끝내지 못하고 멈추어 버릴 수도 있다. 당신은 이제 막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뿐이다. 즉, 전업작가나 계속 글을 써 온 사람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도 두려워하는 것을 당신이 무시하기가 쉽지 않다. 조금만 발상을 바꿔보자. 전문가 일수록 작은 것이라도 틀리면 안 된다. 그래서 더욱 더 신경을 쓰고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런데 이제 병아리 걸음을 하는 당신은 틀려도 된다. 왜냐하면 초보자 이므로. 그것이 초보자가 가지는 특권이며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위에서 말 한 글의 성질이 가진 모든 것을 다 무시해야 한다. 단 하나만 염두에 두면 된다. 틀리든 말든, 죽이 되든지 밥이 되든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끝낸다는 것이다. 어차피 누구에게 보여 줄 것도 아니고 검사를 받을 것도 아닌데 틀리면 어떤가. 글은 당신의 마음을 드러내기 위한 도구이지 목적이 아니다. 우리 어머니는 노트에 뭔가 적기를 좋아하신다. 빛바랜 노트를 보면 트로트 가사도 적혀 있고 가스렌지 수리 한 날도 적혀 있다. 그런데 맞춤법이 많이도 틀려있다. 받침은 몇 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틀리는 것은 계속 틀린다. 게다가 내용이 문학적인 것도 아니고 마음을 담은 것도 아니다. 그런데 참 좋다. 나는 어머니가 노트에 굵은 사인펜으로 적어 놓은 것을 몇 장 찢어서 보관하고 있다. 그 누구에게는 폐지에 지나지 않을 것인데 나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어머니의 흔적이다. 글이란 것이 그렇다. 맞고 틀리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잘 쓰고 못 쓰고는 그 다음 문제이다. 글은 내게 의미가 있어야 하고 내가 행복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글들은 누가 봐도 그 느낌을 전달 받을 수 있다. 맞춤법이나 문장의 구성은 다수가 읽기 위한 약속이다. 혼자서 읽는 글에는 별 의미가 없다. 그러니 글이 주는 자유를 최대한 느껴 보라. 언젠가 시간이 지나면 그 글들이 모여지고 책 한 권 이상의 분량이 될 것이다. 그 때 다시 한 번 처음과 비교해 보아라. 처음 썼던 글들이 형식적인 면에서는 엄청난 발전을 해 있을 것이다. 다만 처음에 가졌던 그 순수함과 솔직함이 그대로 남아 있을지는 확신 할 수 없다. 그 때가 되면 처음의 열정이 그리워 질 것이다. 

글쓰기도 인생의 과정과 별반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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