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고 싶은 당신에게
글쓰기는 자유다.
반복된 일상에 찌들려 살아가고 있는가.
어디 멀리 훌훌 떠나고 싶은가.
마음은 그러고 싶지만 현실은 그게 아니다.
그런 당신에게 자유를 주겠다.
글을 써라.
몸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지만 정신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할 수 있도록 바꿔야 한다. 몸이 묶여 있는데 정신마저 묶여 있다면 그것은 살아 있는 것이 아니다. 글을 쓰는 동안에 당신은 무한한 자유를 누려야 한다.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누가 당신 옆에서 글 쓰는 것을 지켜보고 있는 것도 아니다. 쓰고 나서 제출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어떤 내용을 쓰더라도 아무도 알 수 없다. 누구를 칭찬해도 좋고 당신을 괴롭힌 사람에게 증오의 화살을 날려도 좋다. 당신이 가 본 곳을 회상해 보아도 좋고 가고 싶은 곳을 상상해 보아도 좋다. 이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를 왜 그냥 흘려보내는가. 그런데 의외로 자유의 문턱도 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왜 그런지 아는가. 글이 가진 고유의 성질에 발목이 잡히는 것이다. 말에는 없지만 글에는 있는 것이 무엇일까. 맞춤법, 구두점, 띄어쓰기, 두괄식, 미괄식, 문단, 단락 등등. 이 중에 하나라도 염두에 둔다면 글을 시작한 당신은 열 줄을 넘지 못 할 것이다. 때로는 한 줄도 끝내지 못하고 멈추어 버릴 수도 있다. 당신은 이제 막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뿐이다. 즉, 전업작가나 계속 글을 써 온 사람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도 두려워하는 것을 당신이 무시하기가 쉽지 않다. 조금만 발상을 바꿔보자. 전문가 일수록 작은 것이라도 틀리면 안 된다. 그래서 더욱 더 신경을 쓰고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런데 이제 병아리 걸음을 하는 당신은 틀려도 된다. 왜냐하면 초보자 이므로. 그것이 초보자가 가지는 특권이며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위에서 말 한 글의 성질이 가진 모든 것을 다 무시해야 한다. 단 하나만 염두에 두면 된다. 틀리든 말든, 죽이 되든지 밥이 되든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끝낸다는 것이다. 어차피 누구에게 보여 줄 것도 아니고 검사를 받을 것도 아닌데 틀리면 어떤가. 글은 당신의 마음을 드러내기 위한 도구이지 목적이 아니다. 우리 어머니는 노트에 뭔가 적기를 좋아하신다. 빛바랜 노트를 보면 트로트 가사도 적혀 있고 가스렌지 수리 한 날도 적혀 있다. 그런데 맞춤법이 많이도 틀려있다. 받침은 몇 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틀리는 것은 계속 틀린다. 게다가 내용이 문학적인 것도 아니고 마음을 담은 것도 아니다. 그런데 참 좋다. 나는 어머니가 노트에 굵은 사인펜으로 적어 놓은 것을 몇 장 찢어서 보관하고 있다. 그 누구에게는 폐지에 지나지 않을 것인데 나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어머니의 흔적이다. 글이란 것이 그렇다. 맞고 틀리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잘 쓰고 못 쓰고는 그 다음 문제이다. 글은 내게 의미가 있어야 하고 내가 행복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글들은 누가 봐도 그 느낌을 전달 받을 수 있다. 맞춤법이나 문장의 구성은 다수가 읽기 위한 약속이다. 혼자서 읽는 글에는 별 의미가 없다. 그러니 글이 주는 자유를 최대한 느껴 보라. 언젠가 시간이 지나면 그 글들이 모여지고 책 한 권 이상의 분량이 될 것이다. 그 때 다시 한 번 처음과 비교해 보아라. 처음 썼던 글들이 형식적인 면에서는 엄청난 발전을 해 있을 것이다. 다만 처음에 가졌던 그 순수함과 솔직함이 그대로 남아 있을지는 확신 할 수 없다. 그 때가 되면 처음의 열정이 그리워 질 것이다.
글쓰기도 인생의 과정과 별반 다르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