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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백수 김한량 May 11. 2024

나는 아마 평생 가난할 것이다

프롤로그

나에게는 고질병이 있다. 그중 하나가 요즘 다시 발병했다. 소비병이다. 현대 사회에서 감정소비가 병이라고 불릴 수 있나 싶겠지만은 내가 나의 소비를 병이라고 부르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이 현상은 주기적으로 나타나며 이때마다 나의 재정상태를 넘어서 소비를 하기 때문이다. 이 병이 처음 도진 것은 2018년 즈음이었다. 당시 나는 나의 이런 패턴이 병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집에 쌓여가는 택배박스, 당시 내 재정 상태로 감당할 수 없던 카드 빚이 그렇게 심각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당시 나는 우울증을 심하게 앓았던 때였다. 우울증 약을 먹고 있다는 것은 지출에 좋은 핑계가 되어주었다.


이것만 있으면 내 기분이 훨씬 좋아질 것 같아.


 결국 가족들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상태까지 갔고 이때의 기억은 아직까지도 나에게 악몽과 같다. 그런데 그 병이 요즘 다시 돋고 있다. 이성적으로는 안다. 내가 이 물건 없이도 잘 살아왔고 잘 살아갈 것이라는 것을. 이런 이성적인 판단이 무색하게 손은 이미 구매버튼을 누르고 있다. 예전보다 나아진 점이 있다면 소비 후 빚이 늘어나면 열심히 일해서 빚을 갚아가는 참회의 시즌을 갖는다. 소비병 시즌과 참회의 시즌을 반복하며 나는 항상 가난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는 소비병은 오랜 기간 동안 나의 비밀 아닌 비밀이었다. 부끄럽기 때문에 나의 심리상담사 외에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어느 날 침대에 누워 같은 패턴을 반복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현타가 왔다.


야, 너 이제 내일모레에 마흔이야.

 

마흔이 넘어서도 이런 상태로 사는 내 모습을 상상하니 끔찍했다. 단지 '그러지 말아야지' 따위의 마음먹기는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나는 구매버튼을 누르는 이전과 이후에 일어나는 인지과정을 스스로 분석해 보기로 했다. 앞으로 이 책에 담길 내용에는 나의 전사와 누구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은 나의 오랜 수치들도 자연스럽게 드러날 것이다. 만약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나를 아는 사람이라면 이다음에 나를 만나도 모른 채 해주길 바란다.  우리만의 비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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