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를 받기 전,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딱히 할 일도 없었지만 굳이 나갈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사실 댈튼 가족에게 한 달 전 추수감사절에도 초대를 받았었다. 그때는 강연 하루 전이었고 이것저것 할 일이 너무 많아 정말 고맙지만 갈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 초대는 거절을 할 수 없었다.
댈튼 가족의 집에 도착하여 문을 열자마자 진한 계피향이 집안에 솔솔 풍겼고 잔잔한 크리스마스 음악이 흘렀다. 댈튼 가족은 쌍둥이 아들 둘과 귀여운 막내 여자아이 그리고 내 친구와 남편 이렇게 다섯 가족이 산다.
5살짜리 꼬마 아가씨가 내 품에 안기며 "hello"를 여러 번 외쳤다. 쌍둥이 아이들이 나를 반겨줬고 친구의 남편이 잘 왔다며 코트를 걸어 놓을 수 있는 곳으로 나를 안내했다. 초대받아 준비한 선물을 부엌에 가져다준 뒤 거실로 나왔다.
곳곳에 준비된 크리스마스 장식들, 벽난로와 소파 옆에 진열된 커다란 크리스마스 트리, 소파 테이블 앞에 장식처럼 놓인 핸드벨, 그리고 잔잔하게 흐르고 있던 크리스마스 분위기의 음악이 이 곳에 오지 않았다면 알지 못했을 크리스마스의 분위기를 흠뻑 느낄 수 있게 해 주었다.
오후 5:30분에 저녁 식사를 시작한다고 해서 그때에 맞춰서 도착했는데 크리스마스 음식은 아무래도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라서 아직 음식 준비가 한창이었다. 손을 씻고 부엌으로 향했고 음식 준비를 위해 도울 것이 있는지 물었다.
친구는 삶은 감자의 반을 잘라 속을 파내고 으깬 뒤 양념을 했다. 그리고 다시 감자 껍질에 속을 넣고 체다 치즈를 얹은 후에 준비된 감자들을 오븐 속으로 넣었다. 나는 친구의 남편을 도와 오븐에 이미 데워진 커다란 햄에 꿀과 설탕 등을 녹여 햄 위에 적실 글레이징을 만들었다.
식사가 거의 준비되자 아이들이 모두 식탁으로 모여 앉았고 준비된 음식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친구 할머니의 레시피로 만들어진 감자 요리와 콘 브레드, 글레이즈를 덮은 햄 요리, 콩과 버터, 꿀, 사과주스 등이 차례대로 식탁에 올라왔다.
쌍둥이 중 한 명이 감사 기도를 하고 식사가 시작되었다. 그동안 서로가 어떻게 지냈는지 근황을 물으며 식사를 했다. 아이들이 깔깔 거리며 장난을 치고 오고 가는 질문 속에 식사를 마쳤다.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함께 모인 이 가족이 너무 아름다워서 그리고 이 곳에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이 감사했다. 다행히 주변에 앉아있던 사람들에게 나의 벌게진 눈시울을 들키지 않았다.
식사를 마친 아이들은 거실에 마련된 핸드벨로 '고스트 바스터'를 연주할 것에 흥분되어 있는 상태였다. 거실 소파 앞에 있던 핸드벨이 크리스마스 장식인 줄 알았는데 그걸 연주한다고 했다.
핸드벨? 이걸 연주하는 것이 너희 집의 크리스마스 전통이야?라고 물었더니 매년 크리스마스에 핸드벨 연주를 해 왔다고 한다. 친구가 D라는 글이 적힌 주황색 핸드벨 하나를 내 손에 쥐어 주었고 가족들 모두 한 개 혹은 두 개의 벨을 들고 온라인 악보를 보고 핸드벨을 울릴 준비를 한다.
이미지 출처: musication - We Wish You a Merry Christmas
핸드벨 연주를 마친 뒤 후식을 먹는 시간이 왔다. 친구는 딸기와 휘핑크림을 준비했고 친구 남편은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가지고 왔다. 아이들이 각자 한 번씩 초를 불기를 원해서 어떤 재미난 의식처럼 한 명씩 차례대로 촛불을 불어 끈 후에야 후식을 먹을 수 있었다. 부모들은 이런 상황을 귀찮아하면서도 아이들을 혼내지 않고 끝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준다.
모두 정확히 여섯 조각으로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나눴다. 케이크 위에는 얇은 초콜릿 장식이 올라가 있었는데 눈사람, 크리스마스 트리, 루돌프, 그리고 마지막으로 love라고 적힌 레터링이었다. 각 아이스크림의 조각 위에는 이 초콜릿 장식들이 하나씩 올라갔고 아이들은 누가 눈사람 모양을 가질 것인지, 크리스마스트리 모양의 초콜릿을 가질 것인지 말했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나도 초콜릿 장식 한 개가 담긴 아이스크림 케이크 한 조각을 받게 되었다. "love"가 적힌 초콜릿 장식이었다. 초콜릿의 달콤함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가족의 달콤함 때문이었는지 모든 것이 달달했다.
아이들이 부모의 사랑을 먹고 자라는 것처럼 나도 친구 가족이 크리스마스에 내게 준 예쁜 사랑을 꼭꼭 씹어먹었다. 이 가족의 "사랑"을 내 마음속에 잘 소화를 시켜서 내 몸의 세포에 잘 기억을 해 두었다가 오늘이 가기 전에 나도 누군가에게 이 빛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