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孤兒猫(고아묘)

부모에게 버림받아 몸 붙일 곳이 없는 고양이

by 기이해

노들섬 버스 정류장에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산다. 추운 겨울 바람막이 하나 없는 허허벌판, 아직 개장 전의 노들 숲 입구에 혼자 쓸쓸히 다니는 그 새끼 고양이가 너무 안쓰러웠다.


바람도 찬데 새끼 고양이가 너무 춥고 배가 고파보여서 가방에 들어있던 바나나를 까서 조금 떼어 주었다. 새끼 고양이는 처음에 내게 경계심이 있었지만 굶주림이 경계심을 이기지는 못했다. 새끼 고양이가 편안히 먹을 수 있도록 난 조금 멀리서 새끼 고양이가 바나나를 잘 먹는지 지켜봐주었다. 데리고 올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고양이를 들일 수 있는 처지는 아니라서 마음이 쓰였다. 추위에 벌벌 떨면서 배고파하는 새끼 고양이를 보니 지난 여름 TV에서 어떤 동물 프로그램을 본 것이 기억이 났다.


다리가 부러져 엄마에게 버려지고 홀로 남은 새끼 고양이 '까망이'라는 아이의 이야기였다. 어미 고양이에게는 네 마리의 새끼가 있었다. 이 고양이 가족은 사람의 시선을 피해 가파른 절벽 위에 살고 있었다.


상황이 위험하다고 판단한 구조팀은 이 고양이 가족을 안전한 곳으로 유도하기로 했다. 하지만 눈치가 빠른 어미 고양이는 사람들로부터 새끼들을 보호하기 위해 주위를 살피더니 높은 담벼락으로 뛰어올랐고 새끼들도 재빨리 어미를 따랐다. 한 마리를 제외한 새끼들은 모두 엄마 곁으로 갔지만 다리를 절고 있던 단 한 마리 고양이 까망이는 한쪽 구석에 웅크린 채로 남겨져있었다. 얼마 후 남겨진 새끼를 데리러 가기 위해 어미 고양이가 나타났다. 하지만 다리를 다친 까망이는 끝내 엄마와 함께 가지 못했다.


어미 고양이는 자신이 낳은 새끼 고양이가 더 이상 생존 능력이 없음을 확인하면 새끼를 버린다. 매정할 수 있겠지만 이것이 자연의 순리이며 동물들에겐 생존의 법칙이다.


이러한 자연의 순리를 누가 욕할 수 있을까? 뒷다리가 골절이 되어 자신의 가족들과 멀어진 까망이도 안타깝지만 생존의 법칙에 따라 아픈 한 마리를 뒤로하고 나머지 세 마리의 새끼 고양이를 돌봐야 하는 어미도 안타까웠다. 하지만 내 기준에 더 안타까운 쪽은 역시나 까망이였다. 어쨌든 나머지 새끼 고양이들은 서로를 보호해 줄 수 있는 가족이 있지만 까망이는 아무도 없었으니까.


결론적으로는 어미를 포함한 고양이 가족은 떠났고 구조팀은 까망이를 잘 구출해 냈다. 까망이는 구조가 되자마자 곧 긴급 수술에 들어갔고 근황을 보니 현재는 보행에 문제가 없을 정도로 아주 잘 회복했다.


*고아묘(孤兒猫)가 된 까망이는 현재 의료진이 돌보고 있다. 하지만 임시로 까망이를 맡고 있는 의료진이 언제까지 까망이를 돌봐줄 수 있을까? 시간이 더 가기전에 까망이에게도 임시 보호소가 아닌 더이상 떠나지 않아도 되는 포근한 집이 생긴다면 좋겠다.


이미지출처: TV 동물** 932회 까망이

* 고아묘(孤兒猫): 유기묘라고 하기엔 가족이 있었고 고아 라고 하기엔 사람이 아니므로 고아묘(孤兒猫)라고 함. 작가가 만든 단어임.






누구나 부모가 될 수 있지만 훌륭하고 존경받는 부모를 가지는 것은 누구나 받을 수 있는 특권은 아니다. 엄마가 없는 사람들, 부모가 있지만 살면서 부모의 따뜻함을 받지 못하고 살아온 사람들, 그 외 어떠한 형태로든 사랑받지 못하고 살아온 사람들 역시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가 있다. 하지만 그들이 가진 피할 수 없는 고통은 인간이 가져야 할 가장 기본 적인 것을 다른 사람들과 동등하게 누릴 수 없다는 것이다.


따뜻하려 애쓰지 않아도 추위를 피할 수 있고 식사 때가 되어도 배고프지 않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매년마다 겨울은 보란듯 추위를 몰고 찾아오고 매일 하루 세 번 배고픔은 어김없이 찾아온다. 그런 안타까운 삶을 살고 있는 사람에게 누군가의 진득한 보살핌이, 따뜻한 손길이 모여 하나의 생명을 보듬고 살펴서 그래도 이 세상은 살만 하다고 - 나라도 너를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싶은 날이다.


이 추운 겨울 부디 당신이 따스하길 굶주림에 지쳐 쓰러지지 않기를...그리고 당신이 그런 환경을 이미 가졌다면 주변을 둘러 살펴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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