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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글비 가족의 생일 전통

브런치작가©기이해

by 기이해


미안, 생일을 놓쳤네요. 생일이 즐거웠길 바래요. 내일 우리집에 디저트 먹으러 놀러 올 수 있어요?

혹시 내일이 안되면 다음주에 같이 식사할까요?


토요일 늦은 오후 문자가 온건 크리스티나였다. 일 때문에 남편을 따라 서울에 살게 된 미국에서 온 크리스티나 매글비는 다섯명의 아이를 둔 엄마이자 나랑 동갑인 친구다.


고향이 서울임에도 나에겐 도무지 고향 같지 않은 서울, 가족이 있지만 갖은 차별로 인해 가족이 없는 것과 다름없는 나에게 크리스티나는 그나마 내가 회색빛 서울에 있어도 소소한 행복을 느낄 수 있고 매사에 감사함을 잃지 않도록 도움을 주는 친구다.


주말동안 서울 하늘을 뒤덮은 미세먼지와 황사 때문에 어디를 가는것이 조금 귀찮아져서 갈까 말까를 망설이다가 누군가 날 생각해주는 마음을 무시할 수 없어 약속날 아침에서야 늦은 답장을 보냈다.



그럼요~ ^^ 초대해 줘서 정말 고마워요.

몇시에 가면 되죠?


6시 30분 까지 올 수 있어요?


당근이죠!


"띵동!

크리스티나! 나예요!

미안, 조금 일찍 도착했네요."


"잘 왔어요! 기다렸어요! ^^

Hey guys! Howoon is here."


10살인 큰 딸 펠리시디, 8살 둘째 딸 에바, 6살 셋째 맥케이, 4살 넷째 키쿠, 5달 된 막내 에미, 그리고 이집 귀염둥이 애완견 애니까지 모두 거실에서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이 집 아이들이 손으로 만지고 노는 놀이를 좋아하는 걸 알고 있던 나는 집에서 나오기 전 다행이 빈손으로 오지 않아도 되는 아이디어를 찾아냈다. 얼마전에 캐릭터 구상을 하기위해 사 두었던 클레이통 여러개를 집에서 가져온 덕분에 아이들과 함께 조물 조물 재미있는 클레이 놀이를 할 수 있었다. 태어난지 이제 막 다섯달이 지난 에미도 다행히 울지 않고 내 품에 찰싹 달라 붙어 안겨 있어주었고 그렇게 아이들과 손으로 장난치며 노는동안 매글비 부부는 식탁과 부엌이 철저히 분리된 장소에서 당근 호두 케이크를 준비하고 있었다.


생일이 지난지 한참 지났음에도 잊지 않고 생일 케이크를 준비해 준 크리스티나와 컬티스에게 너무 감사했다. 환하던 거실의 형광등이 꺼지고 촛불과 함께 내 앞에 매글비 부부가 만들어 준 홈메이드 생일케이크가 왔다.




생일 축하 합니다

생일 축하 합니다

사랑하는 oo의~

생일 축하 합니다!


와~~!! 모두들 고마워요 ^^

이제 불을 끌께요!

호-!!




"자, 케이크를 먹기 전에 우리 가족은 생일날 전통이 있어! 그렇지 키쿠?" 크리스티나가 말했다.

"맞아요!"


가족의 생일 전통



"응? Family birthday tradition?!"


크리스티나: "Yeah, 우리 가족의 생일 전통. 우리 가족은 생일 케이크를 먹기 전에 모두 모여서 생일인 사람이 좋은 이유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케이크를 먹어. 예를들면 I like Howoon because.... 라고 시작하는거지.

자 그럼 아빠부터!"


컬티스: 나는 oo이 좋아 왜냐하면 우리는 같은 지역에서 봉사활동을 했기 때문이야!


크리스티나: 나도 oo이 좋아 왜냐하면 oo은 만날 때 항상 편안하고 친절해.


펠리시디: 엄마 그 다음 내가 말해도 되나요?


엄마 크리스티나는 눈빛으로 그 다음으로 펠리시디가 말해도 된다는 허락을 해 주었다.


펠리시디: 나는 oo이 좋아 왜냐면 오늘 와서 우리랑 재미있게 놀아줬거든!


에바: 나도 oo이 좋아! 왜냐하면 우리가 좋아하는 클레이를 가져왔어. 재미있었어! ^^


키쿠: 엄마....난 뭐라고 하지? 에바언니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이미 해 버렸는데...


맥케이: .....


수줍음이 많은 맥케이는 커다한 두 눈으로 oo을 깜빡 깜빡 쳐다보며 엄마가 만들어준 룻비어플롯(rootbeer float)을 홀짝 홀짝 수저로 떠먹고 있었다.


*Root beer flot: 생강과 함께 다른 식물의 뿌리로 만들어진 미국 음료와 아이스크림을 넣어 만든 디저트


에바: 내가 키쿠와 맥케이 대신 말해도 되요?


크리스티나: 당연하지!


에바: 나는 oo이 좋아 왜냐하면 우리랑 같이 케이크를 먹을 수 있기 때문이야!


(모두) 하하하하 ㅋㅋㅋㅋㅋ


이미 훌적 지나버린 생일이었지만 친구의 가족들 모두 다 같이 매글비 가족의 생일 전통으로 나의 생일을 축하 해 주었다.


"자, 그렇다면 이번에는 내 차례 같은데요! 나도 여러분들이 좋아요. 왜냐하면 생각하지도 못했던 생일케이크과 생일파티를 해 주어서 너무 고맙고 감사합니다."


아이들이 거실로 흩어지고 나는 매글비 부부에게 다시 한번 감사함을 전했다.


"크리스티나, 사실은 생일날 저녁에 일을 마치고 집에 혼자 있었어요. 이젠 별로 신경 쓰지 않지만 가족은 내 생일을 잊었고 아무도 전화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실은 조금 쓸쓸한 생일을 보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매글비 가족의 생일 전통도 함께 할 수 있어서 많이 행복했어요. 내가 혹시 나중에 가정을 가지게 된다면 매글비 가족의 생일 전통을 따르고 싶어요."


"우리도 일요일 저녁을 oo과 함께 할 수 있어서 좋아요. oo이 항상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생일을 더 빨리 알 수 있었으면 좋았을껄..."


"지금도 충분히 좋아요! 혼자서 보내는 생일은 쓸쓸했지만 따뜻한 곳에서 또 한번 생일을 축하받았으니까 이걸로도 충분해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 어두워진 밤이 되어 얼마나 황사나 미세먼지가 있었는지 알 수 없는 이 밤.

먼 발치에서 남산타워가 보이는 것을 보아 어느정도 미세먼지가 날아가 버린 듯, 혹여 아직 밤 바람에 미세먼지가 흩날리고 있었더라도 어느것과도 바꿀 수 없었던 따스했던 밤.

미세 먼지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었던

한 가족의 생일 전통을 배울 수 있었던 따사롭던 봄의 어느날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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