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by 시기화


소멸이라도 된 듯 사라진 만화책을 찾느냐고 예상치 못하게 퇴근이 늦어졌다. 퇴근시간 십오 분 전 빨간 핸드백을 걸고 들어온 삼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그녀는 한동안 헌책방을 둘러보더니 10권으로 완결된 만화책을 가져와서는 이것 4권이 빠져있어요.라고 말했다.

나는 그것을 받아 들고 한 번 더 확인했더니 그녀의 말대로 한 권의 만화책이 빠져 있었다. 나는 '그러네요. 찾아볼게요.' 하고는 책장을 훑어보았다. 찾고 있는데 그녀가 등 뒤에서 '없는 것 아니에요? 저도 찾아봤지만 보이지 않았어요.'하고 말했다. 나는 위쪽부터 아래쪽까지 유심히 행방불명된 책을 초조한 마음을 갖고 훑었지만 전혀 보이지 않았다.

"어딘가에 있을 텐데" 내가 말했다.

"중간이 빠져있다면 살 수 없어요." 하고 그녀가 빨간 핸드백에 휴대폰을 넣으며 말했다.

나는 그녀에게 한 번 더 찾아보겠다고 한 뒤에 혹여나 하는 마음에 카운터 옆에 있는 나무 의자를 가져와 책장 위에 쌓여있는 것들을 올라가서 확인해 봤지만 역시나 보이지 않았다. 있는 것이라곤 먼지뿐이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찾을 수 없다고 사라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녀는 단념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옷을 갈무리했다. 그녀가 떠나려고 할 때 찾지 않았던 내일 정리하려고 쌓아둔 책 더미가 신경 쓰여서 기다려 달라고 말하고 허리를 숙여 확인해 보니 찾는 게 맨 아래에 깔려 있었다. 하필 밑바닥에 있어서 짜증이 났지만 침착하게 위에 있는 책 더미를 옆으로 옮겨놓고 아래에 있는 책을 꺼내 그녀에게 말했다.

"드디어 찾았네요." 그녀는 찾은 책을 받아 들고는 한번 훑더니 구매하겠다고 말했다.

결제를 하고 봉투에 담는데 빠져있던 책을 꺼내느냐고 대충 올려둔 책 더미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방에서 들리던 소리와 비슷했다. 결론은 그것들을 정리하느냐고 퇴근시간보다 늦어진 것이다.

나는 곧바로 <플랜 B> 카페로 들어가 두리번거리며 팝콘과 루비를 찾았다. 그들은 2층 그때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내가 온 것을 모르고 있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어딘가 동떨어져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한동안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냥 그러고 싶었다. 숨죽이고 주변을 살피고 있는 나뭇가지 위 다람쥐처럼 그들의 뒷모습을. 웃음소리를. 손짓을. 지켜보았다.

나는 천천히 다가가 그들에게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마지막에 일이 좀 있어서 늦었네 오랜만이야."

루비가 생긋 웃으며 말했다."마침, 언제 오나 얘기했었어. 우리 여행 갈 거야. 어디로 가야 할지 정하는 중인데 재혁이는 어릴 적 갔던 바다에 가고 싶대"

"바다? 가고 싶으면 가면 되지. 파도도 보고 예쁜 조개껍데기도 찾고" 내가 말했다.

"그리고 생선도 먹고 바닷바람도 맞고"팝콘이 말했다.

루비가 접시에 놓인 케이크를 앞쪽으로 밀며 말했다.

"먹어봐 꽤 맛있어."

나는 포크를 집어 케이크 모서리 부분을 꽂아 나비 날개처럼 얇게 떠먹었다. 크림에서 레몬맛이 났다.

"레몬크림 케이크? 맞나?"

그러자 루비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루비야 너도 바다에 가고 싶은 거야?"내가 케이크를 먹으며 물었다.

"응. 파란색 좋아하거든. 가서 오징어 회도 잔뜩 먹을 거야"루비가 말했다.

"그럼 정해졌네. 몇 박 며칠 다녀오는 거야?"

"그것도 고민하다가 일박 이일로 정했어. 하루를 특별하게 만들고 싶어서 물론 그날 좋으면 연장할 수도 있지만" 팝콘이 말했다.

"잘 다녀와. 너희는 정말 잘 어울려 부러울 만큼"

"너는 무슨 색 좋아해?" 커피를 마시며 루비가 물었다.

"나는 연두색이 좋아. 팝콘은?"

"회색."

"여행 다녀오면 네가 해주는 국물요리 먹고 싶을 것 같아." 루비가 생긋 웃으며 말했다.

"다녀와. 잊지 못할 만큼 맛있는 버섯전골 해줄게 대파도 듬뿍 넣고 고기도 듬뿍 넣고 셋이서 먹자고 대신 너희도 기념품 사 와야 해." 팝콘이 내가 하는 말을 듣더니 생긋 웃었다.

"좋아, 약속한 거야."루비가 말했다. "내가 증인"팝콘이 포크를 흔들며 말했다.

"그래 약속했어. 일하고 왔더니 몸이 이곳저곳 쑤셔 마지막에 한 건 했거든. 내일 일찍 일어나 봐야 해. 그래서 먼저 가볼게. 오랜만에 셋이 만나서 좋았어. 여행 잘 다녀와. 아차 그리고" 나는 가방에서 헌책 두 권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여행 갈 때 책이 빠질 순 없지. 안 그래? 소설은 읽는 데 오래 걸릴 것 같아서 간단한 짧은 글이 있는 에세이야. 가면서 싫증 나면 읽어봐. 먼저 일어날게 잠깐 들른 거야. 너희들 얼굴이라도 볼 겸."

"우리도 나가려고 했어. 루비가 건물 안이 답답하다고 걷고 싶다고 했거든 그러니까 같이 나가자" 팝콘이 나를 보며 말했다.

우리 셋은 의자를 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거. 오늘 길거리에서 재혁이가 사준 거야." 루비는 검은 토트백에서 사과 그림이 박힌 양말을 보여주며 말했다.

"예쁘네"

"여행 갈 때 신을 거야. 포도 그림이 그려진 건 재혁이 꺼" 하며 가방 속에서 살짝 비추더니 내가 선물한 헌책을 넣어 닫았다.

"내건 없는 거야?"하고 물었지만 그들은 답하지 않았다.

문을 나서자 예전에도 보았던 특별할 것 없는 풍경이 보였다. 네온사인 간판. 전단지를 나눠주고 있는 아르바이트생. 길 가운데에 자리를 잡고 떡볶이를 파는 상인. 대여섯 명 짝을 이루며 걸어오는 학생들. 나는 루비와 팝콘에게 인사를 하고 그들과 반대 방향으로 걸어 나갔다. 누군가 흡연을 하면서 걸어가는지 공기 속에서 담배 냄새가 배어 나왔다. 가는 길에 인형 뽑기 가게가 눈에 띄어서 들어가 지폐를 동전으로 교환하고 한두 판 정도 했는데 인형은 뽑지는 못했다. 그럼 그렇지. 뽑힐 리가 없지.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인형 뽑기 기계 안 중간 자리는 운석이라도 맞은 듯 파여있었다. 나만 뽑지 못하는 건가? 생각하며 파인공간을 멍하니 보다가 이내 발걸음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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