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by 시기화

오후 한 시 십분. 한가한 시간에 나른해진 눈꺼풀이 내려앉을 때 헌책방에 팝콘이 들어왔다.

"일 잘하고 있는지 확인차 들렸어."

나는 하품을 하며 말했다."누가 보면 네가 사장인 줄 알겠어, 무슨 일이야? 할 말이라도 있어?"

"이것 네가 맡아줘. 여행 다녀올 동안만. 집에 놔두면 꼭 잃어버릴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나는 팝콘이 건넨 종이 가방을 열어 보았다. 회색 나이키 후드티와 유리병에 든 소라 껍데기가 들어있었다. 어릴 적에 보았던 그 소라 껍데기였다.

"좋아. 근데 후드티는 왜? 유리병은 그렇다 치지만."

"혹여나 깨지는 걸 방지하기 위한 완충제 역할이랄까" 팝콘이 이마를 긁으며 말했다.

"여행은 내일인가?"

"내일 오전 열 시 기차 타고 가. 요 앞에서 편한 운동복 한 벌 사려고 가서 입게"

"루비는?"

"백화점에서 두시에 보기로 했어. 근처에 온 김에 맡길 겸 들렸지. 간다 연락해."

팝콘이 떠나고 나서 나는 종이가방을 열어 유리병을 꺼냈다. 유리병 안에는 소라 껍데기와 몇 겹으로 접힌 종이가 들어 있었다. 아마도 동생에게 써놓은 부치지 못한 편지일 것이다. 나는 그것을 조심스럽게 흔들어 보았다. 종이에 막혀서 소라 껍데기는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팝콘의 종이가방을 발밑에 놔두었다. 그러고 나서 분위기 전환을 위해 라디오를 틀어 주파수를 뒤적거리며 팝송이 흘러나오는 채널을 맞춰 놓고 새로 들어온 헌책들을 정리했다. 점심은 뭘 먹어야 할지 계속 고민하면서. 점심시간은 한시 반부터 두시 반까지. 그렇지만 뭘 먹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생각나는 게 있다면 자두 세알. 세알만 사기엔 여간 껄끄러운 게 아니겠지? 우선 근처에 과일가게를 본 기억이 없고 밖으로 나가서 정해진 시간 안에 찾을 수 없을지도 모르지. 모르는 장소를 위해 소비하는 에너지는 질색이야. 찾는다고 해도 자두 세 알만 팔지 않을 수 있고. 나는 딱 세 알만 먹고 싶은 것이다.

방금 막 씻은 자두 세 알. 나는 얼마간 입맛을 다시다 이내 단념하고 점심시간이 지나도 가게 안을 걸어 다니며 책장을 훑었다. 그러다가 눈에 띄는 책이 있어서 검지로 책의 윗면을 눌러 몸 쪽으로 빼내어 손에 들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 교과서에 나와서 내용은 대충 알고 있는 책이었다. 나는 그것을 카운터로 가져와 읽었다. 다 읽어도 십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렇지만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나는 말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이고 말았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마음을 누구보다도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감정을 추스르고 헌책을 마저 정리했다. 점심을 거르고 일하는 중에는 배가 고프지 않았지만 퇴근을 하고 나서 밀려드는 공복감에 근처 편의점으로 들어가 간단하게 해결했다. 그곳을 나올 때 집에 케첩과 마요네즈가 떨어진 게 생각이 나서 다시 들어가 그것들을 찾아와서 계산했다. 나는 모든 짐을 오른손으로 옮기고 휴대폰으로 팝콘에게 전화를 걸고 통화를 하며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하고 나서 그와의 전화를 끊고 부엌으로 가서 팝콘의 짐을 냉장고 옆 트레이 위에 올려 두고 물을 꺼내 마셨다 그러고는 옷을 갈아입고 티브이를 틀어 흥미가 가는 채널을 틀어놓고 보다가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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