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by 시기화


이불에 햇볕이 따뜻하게 내리쬐고 있었다. 출근하기 위해 몸부림쳤던 여느 날과는 다르게 깊은 바닷속 커다란 조개 속에 누워 삼 일간 잔 것처럼 몸이 상쾌했다. 창밖에서 새소리가 들리고 어딘가에서 바삭하게 구운 토스트 냄새가 났다. 나는 그것을 크게 들이마시고 눈을 감고 음미했다. 내가 꿈꾸던 하루의 시작이었다. 버스정류장에서는 오랫동안 기다리지 않아도 원하는 버스가 왔고 도로에도 유난히 차가 없어서 막히지 않았다. 신호도 딱딱 맞아떨어져서 금방 헌책방에 도착할 수 있었다. 가방에서 열쇠를 꺼내 가게를 열고 사장에게 출근했다고 문자를 넣어두었다. 무리 없이 할 수 있는 수월한 일이라 혼자서 가게를 본 지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가게가 좁은 탓도 있지만) 사장은 삼 개월이 지났을 무렵 열쇠를 건네며 ‘나 다른 곳에 가게를 하나 더 냈어. 네가 책임감 있게 출퇴근하면서 맡아줬으면 해.’라고 말하고 이따금 소리 없이 들려서 샌드위치를 주고 십오일마다 수금해 가는 게 다였다. 헌책방 첫 번째 손님으로 이십 대 중후반으로 돼 보이는 남자가 들어와서는 야생초에 관련된 사전을 골라오더니 계산하고 초콜릿을 주고 갔다. 나는 생긋 웃으며 고맙다고 말했다. 그러고 나서 친구와의 술자리에서 듣게 된 첫 손님점을 떠올리며 운이 좋은 날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 친구는 일할 때 첫 손님이 꺼림칙하면 그날 하루는 저주라도 받은 것처럼 그런 일이 계속되고 첫 손님이 느낌이 좋다면 가만히 있어도 좋은 기분이 이어진다고 했다.

나는 초콜릿을 입안에 넣고 헌책에 붙어있는 쓸데없는 스티커를 조심스럽게 떼며 손목시계를 봤다. 오전 아홉 시 오십오 분. 팝콘과 루비는 곧 출발하겠다고 생각했다. 문자라도 보내놔야 하나? 아냐. 알아서 다녀오겠지. 재밌는 시간 보내고 오라고 더 이상 귀찮게 하지 말고. 나는 헌책에 붙어있는 노랗게 변색된 테이프 조각을 마저 떼어내고 몇 권의 책을 열어 지저분한 게 껴있나 확인하고 번호를 부여해서 종류별로 분류했다. 이따금 책 면지에는 짧은 글귀와 함께 날짜가 적힌 채로 누군가의 표식이 적혀 있었다. 나는 그것들을 멀리서 떠내려온 잊힌 책처럼 가엾게 볼 뿐이다. 헝겊에 물을 묻혀서 책표지의 얼룩진 곳을 닦고 있을 때 휴대폰으로 전화벨이 울렸다. 팝콘 어머니에게서 온 전화였다. 통화 버튼을 누르자 울면서 전달되는 내용에 힘없이 주저앉아 숨죽이고 눈을 깜빡이며 몸을 웅크렸다. 무중력의 공간이라도 된 듯이 귓속으로 들어오던 소리가 소멸됐다가 작은 틈새로 단계적으로 올라가듯 증폭되기 시작했다. "연준아, 오늘 오전 차 사고로 재혁이가 사망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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