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계기... 생각나는 게 있긴 하지만 그것 때문인지는 모르겠어요. 그래도 말하자면 학교에서 집으로 가는 길이였고 날은 추웠어요. 가을이었죠. 오후 세 네시쯤 됐을 거예요. 하늘은 우중충하고 바람이 굉장히 세게 불었는데 힘을 빼고 있으면 그대로 날아가 버릴 듯이 매서웠어요. 바위도 뚫을 만큼 부는 찬바람에 몸은 둔해지고 감각도 잃었어요.
비처럼 보이는 작은 얼음파편이 제 뺨을 따갑게 만들었죠. 저는 횡단보도 맞은편에 있는 은행 건물 뒤편으로 몸을 피하고 거기서 추위에 떨며 서있다가 그대로 쪼그려 앉았어요. 그리고 입김으로 손을 녹이면서 집으로 언제 출발해야 할지 생각하고 있었죠. 다리사이에 있는 두 손을 녹이면서 발 쪽을 봤는데 작게 만들어 놓은 화단 위로 제가 서있었더군요. 나중 돼서야 알았지만 법으로 인해 건물 근처에 일정 면적으로 만들어 놓은 조경공간이더라고요. 아무튼 그 공간은 버려졌다시피 관리가 안 되어있었어요. 흙이 간간이 보였고 잡초라고 하기에는 애매한 억 센 풀과 크로버가 뒤엉켜있었어요. 이 날씨에도 죽지 않고 살아있는 게 신기해서 네 잎클로버를 찾아볼까 생각하고 손을 갖다 대고 크로버를 쓸어내렸는데 그 순간 바람이 불면서 눈 속으로 무언가가 들어왔어요. 가시라든가 흙먼지라든가 아니면 그 이상의 무언가가 그 뒤로 시력은 점점 나빠졌고 꿈을 꾸기 시작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