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꿈.

10.

by 시기화

꿈풀이 아저씨에게 며칠간 미뤘던 값을 지불하고 건물 밖으로 나오자 하늘은 어느새 거무스름하게 바싹 익어있었다. 어둠이 내리자 바람은 세차게 불어서 입술 말린 미역처럼 바싹 쪼그라들었다. 나는 바람을 조금이라도 막으려고 손바닥으로 하관을 가리며 집으로 걸어가면서 저녁으로 뭘 먹으면 좋을지 생각했다. 하지만 머릿속에 백지장이라도 넣은 것처럼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다고 집에 있는 재료로 대충 먹기는 싫어서 중간에 마트에 들러서 눈에 들어오는 것들을 바구니에 넣었다. 내가 산 애호박과 부침가루 계란이 다였지만 가격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나왔다.


집에 도착하고 제일 먼저 비누로 손을 씻었다.

몇 년 전에 독한 감기에 걸려서 고생을 한 적이 있었는데 거실에서 힘없이 누워 혼자서 짹 각거리는 시곗소리와 식은땀을 흘리며 천장을 보 있노라니 세상에서 내가 제일 불쌍해 보였다. 그런 기분을 다시 겪기는 싫어서 그 뒤로 병의 확률을 낮추고자 외출 뒤에는 습관적으로 손을 씻으러 화장실로 들어갔다. (아이러니하게도 옷은 옷걸이에 그대로 걸어 놓는 경우가 많았지만) 얼굴이 화끈거려서 세수도 하고 수건으로 물기를 닦았다. 그러고 나서 간편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몇 개월 전에 인터넷으로 산 88이라는 숫자가 적힌 티셔츠와 스판이 있는 바지였다. 거실에 있는 FM라디오를 켜서 볼륨을 높이고 주파수를 맞춰놓고 주방으로 가서 사 온 것들을 정리하고 손질했다. 거실에서 틀어놓은 라디오에서 어딘가에서 우박이 내렸다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라디오소리도 놓치지 않고 가위로 부침가루를 자르고 애호박은 비닐을 벗겨서 씻고 또 계란은 깨서 포크로 잘 풀어놓았다. 그러고 나서 요리를 했다. 나는 가스레인지를 켜고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애호박을 한입거리로 잘라서 밀가루 계란물 순으로 묻혀서 부쳤다. 밥은 하기엔 너무 귀찮아서 구석에 있던 즉석밥을 전자레인지에 데워서 함께 먹었다.


저녁식사를 하고 나서 나는 거실에 있는 기다란 베개에 기대어 FM라디오 주파수를 이리저리 옮겼다. 들을 만한 건 없었지만 그렇다고 TV를 틀기는 싫었다. 나는 음악이 흐르는 채널에 멈추고 눈을 감고 음악을 감상했다. 이윽고 음악이 자장가 소리처럼 들리면서 잠이 쏟아져 내렸다. 밥을 먹고 바로 잠을 자버리면 안 되는데 하고 머릿속으로 생각은 했지만 눈커플은 겨울날 일요일 아침에 창밖으로 보이는 함박눈처럼 소리 없이 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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