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키랭이 Dec 10. 2023

신체화 장애와 글쓰기의 대환장 콜라보

꿈속에서 소설을 쓰다

나는 내가 언제 몸이 좋지 않은 지 거의 정확하게 안다


달콩이와 함께 나에게도 감기가 찾아왔다. 며칠 무리를 했더니 몹쓸 면역력이 또 떨어진 것이다. 어른들이 늘 하시는 말씀이 있다.


"종합병원이네 종합병원. 덩치는 산만한데 말이야"

'그래...' 덩치는 산만한데, 면역력은 만만하다.


나는 내가 언제 몸이 안 좋을지 거의 정확하게 예측한다. 내가 가진 '신체화 장애' 때문이다.

https://brunch.co.kr/@kiii-reng-ee/93


앉아도 누워도 숨이 잘 쉬어지지 않고 숨이 차서 잠을 못 들 정도로 괴로우면, 몸이 많이 지쳐있다는 것. 최근 사흘동안 그랬으니 크게 한 번 아플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지난밤이 고비였다. 원래 잠이 들고 나면 호흡이 고르게 되어 숨이 차는 일이 없는데, 어제는 정말이지 난리를 쳐댔다. 이리 움직이고 저리 움직이고 하며, 아내가 덮고 있던 이불을 몇 번이나 뺏어갔는지 모르겠다.


첫 잠이 쉬이 들지 못하니 잠이 들 때까지 숨을 몰아쉬며 뒤척이기를 반복했고, 기왕 잠 못 드는 거 평소 하던 상상이나 공상을 하기로 했다. 언젠가 쓰고 싶은 소설에 관한 것 말이다.



상상인지, 공상인지, 밥상인지는 몰라도... 어쨌든


몇 개월 전부터 어떤 구성으로 어떻게 쓸지 계속 구상하고 있던 것들이 있었다. 좋은 생각이 떠오르기를 바라며 틈나는 대로 상상을 해 보았는데 뜻대로 쉽지 않았다.


소설을 써 본 적도 없고, 일기도 똑바로 못 쓰는데, 무슨 자다가 소설 쓰는 생각인가 싶어 접을까도 생각했었다.


하지만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지난밤, 아니 새벽 1시 반즈음 잠에서 깼는데, 소설의 뿌리가 되는 세계관이 그려진 것이 아닌가! 잠에서 깨어 '아! 그래, 그렇게 가야지!'라며 생각이 떠올랐고, 나는 급히 협탁에 놓여있는 휴대폰을 들어 생각을 옮겨 적었다.


몸도 좋지 않고 잠이 너무 몰려와 키워드만 몇 개 적은 뒤 다시 잠이 들었다. 그리고 새벽 3시, 열이 오른 달콩이의 울음소리에 같이 깼고 아내가 달래주러 간 사이 나는 또다시 주인공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올라 휴대폰에 마구 옮겨 적었다.


새벽 6시, 원래 일어나야 하는 시간인데, 오늘은 어쩐지 몸이 너무 무거워 일어나지 못하겠다 싶어 다시 눈을 감았는데, 30분 뒤에 다시 놀래서 깨어 남은 캐릭터들에 대한 내용을 휴대폰에 옮겨 담았다.


아침 7시 30분, 출근 전 마지막 세계관을 정리하고 출근 준비에 나섰다. 이게 도대체 상상인지, 공상인지, 밥상인지 뭔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뭐라도 쓴 셈이다.



신체화 장애와 글쓰기의 대환장 콜라보


완치되지 않은 채 신체화 장애를 가족으로 받아들인 지 벌써 20여 년이 다 되어 간다. 불편할 때도 많지만 이 병이 시작될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여 늘 경각심을 갖고 살게 해주고 있고, 몸이 좋지 않을 때를 알려주는 브레이크 역할도 잘해주고 있다.


모두가 잠든 새벽시간, 나의 머릿속을 간지럽힌 이 신체화장애 녀석과, 글쓰기의 대환장 파티에 몸은 많이 무겁지만 오랫동안 고민하던 것이 해결되어 머리는 상쾌하다.


글쓰기를 배운 바가 없어 언제 내 첫 소설의 첫 삽을 뜰지는 모르겠으나,

조금씩... 조금씩... 써 나가 봐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글을 쓰면 생기는 좋은 일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