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와 사과의 시간
사과(沙果)의 계절 끝에 사과(謝過)
사과(沙果)
코찔찔이 시절에는 과일에 제철이 있다는 것을 잘 몰랐다. 엄마가 깎아주면 먹고, 안 깎아주면 안 먹는 게 과일이었다. 시골에 가면 작은 과일 바구니에 늘 과일 몇 개가 담겨 있는데, 할머니는 사과 깎아줄까? 배 깎아줄까? 하면 높은 확률로 난 '사과'를 외쳤다. 아마도 그 시기가 9월에서 12월 사이었나 보다. 냉장고에 있던 사과라면 12월보다 더 오래 살아남았을지 모르겠다.
내가 과일의 제철에 관심을 가진 것은 불과 2년도 채 되지 않았다. 사랑스러운 딸이 태어나고부터는 좋아하는 과일을 사 주고 싶어 마트를 들락날락하다 보니 자연스레 제철을 알게 되었다. 얼마 전에는 시골에 들렀다 운 좋게 사과를 공급받아 사과를 열심히 깎아주고 있다. 요구르트와 사과를 믹서기에 갈아 사과주스를 만들어 주니 달콩이가 좋아한다.
사과가 익는 계절에는 사람도 건강해진다는 속담이 있듯이 사과의 효능은 굉장하다. 오죽하면 하루 사과 한 개를 섭취하면 의사가 필요 없다는 말까지 나왔을까. 사과를 먹으면 위장기능이 좋아진다. 각종 염증이 사라지고 변비도 완화된다. 나쁜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져 동맥경화에도 도움을 준다. 당뇨나 암에도 효과가 있는 사과의 미담은 끝이 없다.
사과(謝過)
사과(謝過)도 제철이 있다. 타이밍을 놓치고 냉장고 속에 묵혀 두었다가 꺼낸 사과는 그 당도도 확연히 떨어질 뿐만 아니라 효능도 떨어진다. 무엇이든 최상일 때가 있는 법. 맛있는 사과를 먹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감사도 사과도 적절한 타이밍에 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즉시적인 것이 중요하다. 누군가로부터 도움을 받았다면 늦지 않게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 달 두 달 지나다 보면 도움을 준 사람은 자신이 어떤 도움을 주었는지조차 잊어버리기 마련이다. 사과도 마찬가지다. 중요한 자리에 지각을 했는데 오늘은 뻔뻔하게 참석하고, 시간이 한 3년 즈음 지나 "아, 전에 제가 지각을 했었죠? 유감이네요"라는 식의 사과를 한다면... 차라리 혼잣말로 하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사과를 즉시 하지 않은 결과는 무섭게 나타난다. 스트레스로 인해 폭식을 하거나 바이오리듬이 깨질 것이고, 그것이 쌓이다 보면 나쁜 콜레스테롤 수치도 올라가 동맥경화에 이를 수도 있다. 반대로 사과를 즉시 하면 응급처치가 가능하다. 치료가 오래 걸릴지는 몰라도 당장에 급한 불은 끌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다.
다만, 너무 성급한 사과는 사고를 치고 만다.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 깊이 반성하고 자신의 깊은 내면을 들여다보며 자신의 어떤 면을 고쳐야 할지를 고찰한 후 상대방에게 진심을 다해 다가가야 한다. 겉만 번지르르하고 속이 썩은 사과는 목적을 달성하지 못할 뿐이다.
벌써 12월의 반이 지나간다. 시간은 잠시도 쉬지 않고 끝 모를 목적지를 향해 끊임없이 달린다. 한 해를 돌아보며, 혹시 내가 "다음에 밥 한번 살게"라며 지나쳐버린 감사할 분은 없었는지... "아, 미안 미안"이라고 하며 상처를 봉합하지 않은 채 고개를 돌려버린 사람은 없었는지 되돌아본다.
사과(沙果)의 계절이 끝나가는 지금, 사과(謝過)의 타이밍은 놓치지 않았는지 점검해 볼 좋은 기회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