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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랭이 Feb 13. 2024

도로 위 딸기 줍는 아빠를 본 딸이 한 말

아빠는 ○○○이예요?

나의 엄마의 엄마, 그러니까 외할머니댁에 다녀온 그날은 올해 명절도 이제 곧 끝나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설명절 당일 당번 근무에 당첨되어 이번 스케줄은 밀려도 한참 밀려버렸다.


고향이 아니라 귀성길은 아니지만 나의 드라이빙 코스는 아버지댁에서 외가로 이어졌다가 귀가 시 다시 아버지댁을 지나오는 코스로 이루어져 있다. 그렇기에 아버지와 인사를 하고 나서면 집으로 돌아갈 때 아버지 동네를 한 번 더 지나면서 속으로 '뭐 하고 있을까~ 식사는 하셨나~'하면서 생각을 하게 되는 뭐 그런 상황이 생긴다. 오가는 차들이 즐비한 도로 위에 서 계실리 없으니 마을만 쳐다보다가 스윽 지나간다는 뜻이다.


그날도 '아버지는 뭐 하시나~' 생각며 마을 진입을 앞두고 있었다. 마을 앞 도로가 시작되는 구간은 1차선 커브길이라 속도를 조금 늦춰야 한다. 습관처럼 이때다 싶어 엑셀에 무겁게 올려놓았던 발을 떼고 자연감속을 기다렸다. 그런데 그때 앞선 차량의 후미등 쪽에서 비상등이 켜지는 것을 목격했다.


"어어!"

"왜 그래요?"


굵고 짧은 감탄사에 뒷좌석에 타고 있던 아내가 물었다. 천천히 속도를 늦추고 있는 차 안에서 나는 문장을 완성하지 못하고 단어 몇 개만 조합해서 입 밖으로 쏟아내었다.


"아! 그게, 앞에 아빠가, 아니 딸기가, 차가. 아빤데? 왜? 무슨. 딸기?  박스? "


랙이 걸린 컴퓨터마냥 버벅 대며 비교적으로 랙이 덜 걸린 손은 자연스럽게 창문을 열었다.


"아빠 뭐 하세요?"


마을주민일 뿐인 아버지는 수신호를 하며 홀로 도로를 통제하고 있었다.


"아~ 어!(휘잉~)"


아마 더 이야기하려고 한 것 같지만 나는 교통흐름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지나가며 상황을 파악했다.


"여보, 딸기상자들이 바닥에 쏟아진 것 같아. 차 돌려서 도와드리고 가자."


"그래요. 랭랭."


이제 막 잠이 든 하은이가 깰까 싶어 아내에게 미안했지만, 아무래도 자 서 있는 아버지를 두고 갈 수는 없는 모양이었다.


트렁크에 늘 싣고 다니는 작업용 장갑하나를 꺼내 끼고 현장으로 가보니 비싸서 사 먹기도 망설여지는 딸기가 가을철 은행나무 열매처럼 나뒹굴고 있었다. 안전벨트를 매지 않았던 흰 스티로폼 상자 속 딸기들은 스티로폼과 뒤섞여 그야말로 설향(雪香)의 자태를 뽐내었다(?)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고객의 한숨과 힘들게 수확한 자식 같은 딸기를 쏟아버린 농민의 눈물이 뒤섞인 설향을 치우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엄호(?)를 받으며 몇 통 해치우고 나니 이윽고 군청 기동대 어르신들과 경찰, 근처 식당 주인까지 가세했다.


경찰관 분들의 교통 통제와 현장의 일사불란한 삽질과 비질 덕에 도로는 금세 깔끔해지고 있었다. 몇 차례 인사를 나누고 돌아서니 꼭 내가 군청 주무관이 된 것 같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아버지께 인사를 드리며 나는 현장을 벗어났다.




차 안은 자고 있어야 할 꼬마아이가 깨어있었다. 짙게 선팅 된 창문 너머로 보이는 하은이의 입모양을 보니 "아빠, 아빠"라고 하는 것 같았다.


차에 올라탄 내게 아내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말했다.


"있잖아, 아빠가 차에서 내리니까 하은이가 깨는 거야. 자다 깬거라 혹시 짜증낼까 싶어서 그냥 지켜보고 있었지


그런데 한 참을 (20m 앞의)아빠를 쳐다보더니 갑자기 하은이가 '아빠는 소방관 아저씨예요?' 이러는 거야? 그래서 저 모습을 보고 어떻게 그걸 떠올렸지 싶어 신기하기도 하고 해서 대화를 해봤지. '하은이도 소방관 이에요?'고 물으니


'의사선생님이 되고싶어요'이러길래 '의사가 되려면 공부를 많이 해야 해요 하은이 할 수 있어요?'라고 하니까 '네, 아빠(?)' 이러는 거 있지"

글 쓸거라니 아내가 정리해준 카톡

돌잔치 때 청진기를 잡은 딸이 갑자기 의사가 되고 싶다는 게 나 역시도 무척 신기한 장면이었지만, 무엇보다 우리 부부가 놀란 것은 바로 상황을 인지하고 표현해 내는 딸의 말 한마디였다.


아빠는 소방관 아저씨예요?


어떻게 도로에 떨어진 딸기와 쓰레기를 치우는 아빠를 보고 그걸 떠올렸냐는 것이다.


나의 작은 행동도 아이는 유심히 관찰한다. 때론 나의 부정적인 행동까지도 말이다.


아이의 인생 교재인 나는 그래서 오늘도 교안을 실시간으로 수정하고 있다. 

아마 10쇄 100쇄 1,000쇄를 해도 나의 자기반성과 계발은 끝이 없을 듯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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