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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랭이 Mar 13. 2024

프롤로그(죽고 싶었지만)

 생명이 움트고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 오면 썩 좋을 법도 한데, 한 가지 걱정되는 것이 있다. 바로 극단적 선택 출동이다. 어떤 이는 새로운 출발에 설레며 힘차게 뻗어 나가는데, 왜 어떤 이는 힘을 내서라도 극단적 선택을 하려고 할까. 실제로 지난해 개인적으로 출동했던 건수를 세어보니 유독 봄에 많이 몰려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날씨라도 우중충한 날이면 화재는 안 나겠거니 안심하지만 또 다른 이유로 긴장할 수밖에 없다. 


 다행인지 뭔지 몰라도 올해 봄은 동료들에게 현장을 맡기고 잠시 자리를 비웠다. 생명을 살리는 일에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는 구급대원이 되기 위해 응급구조사 양성과정 교육에 지원한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극단적인 선택과 관련된 출동은 대부분 사망에 이른 경우가 상당히 많다. 다시 말해 출동을 해도 할 수 있는 일이 극히 제한적이라는 말이다. 지난해부터 이런 출동을 많이 나가게 되면서 고민에 빠졌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정말 없을까? 현장에서 처치해 생명의 불꽃을 살리는 일은 쉽지 않지만,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려는 사람들을 위해 뭐라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아주 오랫동안 깊이 고민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떠오르지 않았다. 정신건강과 관련한 책을 수백 권씩 읽은 것도 아니고, 전공을 한 것도 아니다. 현장에 출동해 봤자 응급처치와 구조 말고는 구조대상자와 긴밀하게 접촉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잘 하는게 진짜 없을까...?' 그러던 어느 날 뇌리를 스치는 것이 하나 있었다.


 '나도 죽고 싶을 때가 있었구나...'


 그랬다. 나도 중등도 우울증으로 오랫동안 고생을 하다가 현재는 불안장애에 의한 호흡곤란 증상을 겪고 있다. 호흡곤란은 이제 벌써 20여 년이 다 되어가고 지금까지 관리해 왔으니, 이 정도면 불안장애 전공자나 다름없는 것 아닌가 싶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으로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살겠다"는 나의 비전은 현재도 유효하다. 불안장애를 '잘한다'는 게 이상해서 나의 '인사이트 알고리즘'이 주춤했는데, 불안장애를 '잘 안다'정도로 생각하니 나의 알고리즘이 '쌩쌩' 돌아갔다.


 쓰자. 글을 쓰자. 뭐라도 쓰자. 나의 어두웠던 과거를 낯낯이 써내자. 부끄러울 것 하나 없다. 나의 어둠은 누군가의 빛이 될 것이고 누군가의 희망이 될 것이다. 축 늘어져 에너지가 고갈된 그들의 마음에 폭포수까지는 아니더라도 한 방울의 이슬처럼 와닿을 수 있기만을 바란다. 내가 갈겨쓴 글 위로 누군가 한 명만, 단 한 명만이라도 지나가 준다면 나의 이 글은 그 소명을 다할 수 있을 것이다.


 오래전 내가 겪었던 중등도 우울증과 현재도 겪고 있는 호흡곤란을 동반한 불안장애를 갖고 살아가는, 그리고 이제는 우울증과 작별하고 불안장애를 컨트롤하며 누구보다 밝고 씩씩하게 살아가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통해 조금이라도 위로를 받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나의 어둠이 당신의 빛이 되기를


바라며, 글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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