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직장에서도 심리 상담을 권장하고, 우울증이나 극단적 선택과 관련한 교육을 많이 진행한다. 정신과적 질병은 더 이상 숨길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상담을 받으라 권하기도 한다. 쉬쉬하는 분위기도 여전하지만 예전에 비하면 감수성이 많이 좋아진 상태다.
하지만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인 그때는 지금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정신과적 질병에 대한 인식이 상당히 부정적이었다. 문턱을 넘는다는 것 자체로도, 아니 병원을 검색한다는 것 자체로도 이질감이 가득한 그런 것이었다.
주치의 선생님의 조언에 따라 병원 한 군데를 찾아내었지만 도저히 문을 두드릴 용기가 나지 않았다. 병원 문 앞에서 조금 망설이다 돌아갈 곳도 없고 해서 문을 열었다. 로비에는 40대 남성 한 분과 50대로 보이는 여성 두 분이 앉아 있었다. 카운터에서 무어라 인사를 하긴 했는데, 부끄러워 차마 고개를 들지 못했다. 마음을 다쳤다는 것이, 이곳 정신과에 온다는 것이 뭐 그리 부끄러운 일인가 싶지만 그때는 참으로 무지했다.
접수를 하기 위해 이름을 말해야 하는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모기 같은 목소리로 기어들어가듯 말하니 직원이 한 번 더 물었다. "000이요." 괜히 한 번 더 말하고는 소파에 앉아 차례를 기다렸다. 내가 가장 싫어하고 무서워하는 치과보다 더 이질감이 있었지만 호기심만큼은 가라앉지 않았다.
주변에 나와 같은 혹은 비슷한 증상으로 오신 분들은 어떤 분들일까 궁금해져 고개를 들었다. 그들은 모두 하나같이 바닥을 쳐다보고 있었고, 한 분만이 당당하게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나중에 어쩌다 알게 된 사실인데, 주변을 당당히 둘러보던 그분은 교통사고 후에 혹시 있을 외상후스트레스 장애와 관련해 진료를 받으러 오신 것 같았다.
"키랭이님 들어오세요." 내 차례가 되자 문을 열고 들어갔다. 의사와 몇 마디 나눈 후 이것저것 검사를 시작했다. 딱히 힘들었던 것은 없었으나 지금 생각해 보니 질문지를 작성할 때가 가장 귀찮고 힘들었던 것 같다. 작성할 때는 인지를 못하고 있었는데 작성이 모두 끝나고 결과를 들으러 다시 방에 들어가니 가관도 아니었다.
"숨이 잘 안 쉬어진다고요? 언제부터 그러셨나요?" 내가 대답했다. "아... 그게... 교통사고가 났는데, 퇴원하고 얼마 안 되어서 시작됐어요.", 의사가 말했다. "음... 키랭 군 결과를 보니까 우울증이 있어요. 정도로 치자면 가장 심하다고 할 수 있는 중등도구요. 호흡도 호흡인데, 우선 우울증을 관리해야 할 것 같아요. 혹시 가족관계는 어떻게 되세요?"
의사는 나의 과거와 가족관계에 대해서 물었고, 나는 기억나는 대로 하나 둘 이야기해 나갔다. 그제야 의사는 알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음... 이렇게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양동이가 하나 있어요. 양동이에는 키랭 군의 스트레스가 조금 담겨 있죠. 그런데 이건 나쁘지 않아요. 스트레스는 누구나 있으니까요. 문제는 이게 줄어들지 않았다는 거예요. 스트레스가 쌓이면 한 번씩 비워줘야 하는데, 키랭 군 같은 경우는 스트레스가 양동이에 점점 차다가 넘치기 직전까지 가 있는 상태였어요. 그런데 이번 교통사고로 인해서 그게 넘쳐버린 거죠."
"그럼 전 어떻게 해야 하나요?", "방법은 있어요. 우선 우울증의 원인이 되는 지점으로 가서 해결을 해줘야 해요. 그러려면 가족들 전체를 다 모셔와서 상담을 해야 하는데... 이게 사실 참 쉽지 않은 걸 알거든요... 혹시 할 수 있겠어요?"
사실 나도 어렸을 때부터 가족상담을 한 번 받아보고 싶었다. TV 프로그램에 보면 사회 각층의 전문가들이 모여 솔루션을 주고, 드라마틱하게 회복되는 모습을 보며 부러워했기 때문이다. 나에게도, 우리 가정에도 이런 행운이 오지 않을까 늘 꿈꿔봤지만, 그냥... 꿈이었다. 사실 몇 번 권유했었던 기억도 있다. 그때마다 크게 혼이 나며 거절당했지만 말이다.
의사에게 말했다. "저... 혼자서 상담받을 수는 없나요? 노력은 해 볼 건데... 안 될 것 같아요..." 시도해 보지 않아도 결과는 뻔했다. "혼자서라도 가능하면 해 봐야죠. 아 그리고 약도 있어요. 그런데 너무 어린 친구고 그리고 상담으로 먼저 접근하는 게 더 좋아서 권하지는 않아요. 그래도 너무 힘들면 이야기해요. 처방해 줄게요"
호흡곤란의 원인은 잘 모르겠지만 우울증이 심하다는 것 정도는 알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도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것이, 병원 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30분가량 호흡이 정상으로 돌아왔었다는 것이다.
'와... 이 얼마만의...'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냥 지금 이 순간을 즐기고 싶었다.
저녁이 되어 귀가한 어머니에게 말했다. "엄마... 나 우울증인가 그거래. 근데... 가족들이 상담을 다 받으면 좋겠다는데..." 엄마가 대답했다. "우울증? 내가 너 보면 멀쩡한데 무슨 우울증? 아빠한테 이야기해 봐." 나는 대답이 끝나기 무섭게 방문을 닫아버렸다.
다시 호흡은 불안해졌다. 매일 매 순간 몰아쉬며 간간히 버티고 있었다. 얼굴에 크게 남은 흉터 때문에 밖에 나가면 사람들은 손가락질하며 비웃었다. 지금은 티가 좀 나더라도 컨실러라는 화장품을 20여 년째 사용하며 가려서 살고 있는데, 그때는 그런 것도 몰랐다. 흉터 관리를 받아야 하는데, 감히 부모님께 말씀드릴 용기도 나지 않았고, 치료비를 달라고 손을 벌릴 형편도 아니었다.
나의 첫 신경정신과 방문기는 힘들게 시작해서 간단하게 끝나버렸다. 그리고 그날 이후 마음의 문도 굳게 닫아버렸다.
도대체 무엇이 원인이고 누구에게 도움 받아야 할지... 고민은 깊어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