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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랭이 May 04. 2024

내 가치는 내가 스스로 만드는 것

키랭이 통신사 취직하다 ①

 제대 후 부모님의 지갑을 털어가던 수험생활을 모두 접고, 회사에 취직했다. 일을 고르는 기준은 특별히 없었다. 내가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일을 고르는 것이 최우선이었기 때문에, 사람을 상대하고 판매나 영업을 하는 쪽이 맞지 않을까 싶어 선택했는데, 그곳이 바로 통신사 대리점이었다. 


 개인 사장님이 따로 있지 않고, 대기업에서 운영을 하는 구조였는데, 당연하게도 나는 대기업의 관리하에 있는 하청(?) 업체 같은 곳에 소속되었다. 세후 월 100여만 원을 받는 대리점은 판매를 많이 하건 적게 하건 추가로 벌어가는 것이 전혀 없는 곳이었다. 하지만 제대 후 처음으로 처음 벌어보는 돈인 데다가 내겐 큰돈이라 그 마저도 만족했었다. 


 나는 '직업의 귀천은 없다'라는 정신을 모토로 삼고 꽤 최선을 다했다. 남들은 폰팔이라고 손가락질 해댔는데, 군에서 막 제대한 후 바로 수험생활을 시작해 내 직업이 그런 평가를 받는다는 것 자체도 몰랐었다. 서점에 가 '영업'이나 '판매왕'과 같은 주제의 책들을 잔뜩 사 보았다. 기라성 같은 고수들의 노력과 성과에 감탄하며 늘 책을 끼고 살았다. 책은 어렸을 때도 잘 읽지 않았는데, 군 복무를 할 당시에 너무도 할 게 없어 틈틈이 읽었었던 게 다였는데, 사회에 나와 먹고살기 위한 실전형 독서를 하다 보니 독서의 또 다른 참맛을 느끼기도 했다. 


 한 달 약 100여만 원을 받으며, 조금씩 돈을 모아가고 있던 어느 날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도 조금 더 벌 수 있지 않을까? 이 일을 하면서 인센티브 같은 것은 없을까? 일을 시작한 지 이제 막 3개월 즈음 지났을 때 점장님께 물었다. 


 "점장님~ 혹시 저희 대리점에서 물건 팔면 회사에서 주는 인센티브 있어요?"

나보다 몇 살 더 어렸던 점장님이 귀찮은 듯, 신기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네? 아, 키랭씨 있기는 있는데... 그냥 없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네? 있는데, 못 받는 건가요?"

 "네, 그렇죠?"

 이 대화를 듣고 있던, 다른 선배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아~ 인센티브가 있기는 있는데, 쉽지는 않아. 다른 상품을 판매해야 되거든."


 그랬다. 통신사 대리점에서 받을 수 있는 인센티브는 아주 아주 다양했고, 개인 사장님이 운영하는 대리점인지 아니면 회사가 운영하는 대리점인지에 따라 달랐다. 그러나 무엇보다 통신사 본사에서 주는 인센티브는 모양은 동일하지만 어째서인지 말단 직원들이 받기는 쉽지가 않았다. 


 

 나는 그날부터 인센티브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어떤 게 얼마나 들어오고 어떻게 하면 받을 수 있는지 말이다. 며칠을 그렇게 고민하고 연구한 결과 내린 결론은 유선 판매였다. 휴대폰과 동시에 인터넷이나 TV와 같은 유선상품을 개통하면 받을 수 있는 인센티브였는데, 그나마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인 듯 보였다. 


 하지만 막상 시작하려고 하니 쉽지 않았다. 우리 대리점뿐만 아니라 주변 대리점에서도 이 상품을 판매하는 직원이 그렇게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끽해봐야 시내 중심지 어디에 누구누구가 전설이라느니, 누가 잘 판다느니 하며, 좁은 중소도시에서 일부 극 소수만이 미담의 사례로 존재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인센티브와 상품 공부가 어느 정도 진행되었지만 더 구체적인 정보를 없어 다음 스테이지로 '고수 찾아 나서기'를 선택했다. 고수는 생각보다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다만 접점이 없어 컨택을 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중에서 나는 사장님으로 계시는 고수를 찾아가기로 마음먹었다. 


 먼저 전화를 드렸다. 


 "사장님~ 안녕하세요. 저는 OO대리점에서 일하는 키랭이라고 하는데요. 유선판매를 잘하신다고 하셔서, 조언을 좀 얻고 싶어서요.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한 번 뵈러 가도 괜찮을까요."


 사장님은 전화 한 통에 흔쾌히 허락하셨고, 나는 질문거리를 잔뜩 않고 매장을 찾았다. 사실 처음부터 바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며칠 정도 매장 앞을 서성이며 매장 인테리어와 유동인구, 손님을 대하는 사장님의 자세나 표정 등을 관찰한 후 입장했다. 조금이라도 배경지식이 있어야 짧은 시간 안에 최대로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처음 뵙겠습니다. 사장님."


 유선 판매뿐만 아니라 휴대폰도 엄청난 개수로 판매하고 있는 사장님은 예상외로 꽤 친절하게 많이 알려주시려고 했다. 하지만... 너무 기대했던 탓일까. 생각보다 '내용'이 많이 없었다. 다시 말하면 생각보다 '정형화된 레시피'가 없었다. 사장님은 계속 이 말만 반복했다. 


 "일단 권하는 거지. 하면 하는 거고. 안 되면 될 때까지 권하는 거지. 그리고 우리 상품이 얼마나 좋아? 손님들도 이득이고 나도 이득이고."


 이제 막 일을 시작한 나로서는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다. 분명 서점에서 구한 책에서는 

1. 이렇게 해라. 2. 저렇게 해라. 3. 요렇게 하면 성공한다. 4. 이렇게 하면 대박이다.라는 체계적인 솔루션이 있었는데... 하지만 사장님 앞에서 실망스러운 표정을 드러낼 수 없어서, '조금만 기다리면 분명 필살기를 알려주시겠지'라며 기다렸다. 


 시간이 벌써 1시간이 지나가는 동안 몇몇 손님들이 매장을 들락날락했고 나는 유심히 관찰했다. 하지만 특별한 것은 없었다... 고 생각하는 순간 나는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는 기분이 들 정도의 광경을 목격했다. 


 사장님은 나와 이야기를 틈틈이 나누며 손님을 응대하는 동안 한 분도 빠짐없이 끊임없이 '권매(구매를 권하는 것을 줄여 사용함)'를 했다. 


 "고객님~ 휴대폰이 오래되었네요. 이번에 한 번 바꾸시죠. 이게 대박입니다."

 "고객님, 전에 말씀드렸던 인터넷, 이번에 저희 걸로 설치 하입시다."


 그러면서도 손님들이 불편하지 않게 최대한 강약을 조절하며 지속적인 권매를 이어나갔다. 


 '아... 이게 비결인가...'



 이 외에도 몇몇 고수분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눠 보았는데, 모두 한결 같이 권매였다. 물론 권매 할 때의 멘트나 디테일한 사항은 조금씩 달랐지만 어쨌든 권매였다. 나는 그 길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유선 상품 판매와 휴대폰 판매 스킬에 대해 연구했다.


 흔히들 계산기 두드려 가며 보여줬다 뺐었다, 보여줬다 뺐었다하며 36개월 풀할부에 손님을 기만하는 판매기법이 아닌, (어차피 판매점이 아닌 대리점에서는 그런 판매를 혐오했었다.) 고객에게 최적의 상품과 요금제를 권하며 통신비를 설계해 주어 단순히 판매에서 그치지 않고 '실질적인 혜택'을 주는 방향으로 고민해 갔다.


 결국 통신사 입사 4개월 만에 첫 유선 판매가 이뤄졌고, 매장에서는 가뭄에 단비 같은 실적이 되었다. 이후 그래프는 꾸준히 우상향 했고, 우리 회사 지점 내에서는 유선 1위, 부산을 제외한 전체 지부 내에서는 당시 나의 스승이었던 사장님 다음으로 많이 판매하는 직원으로 기록되었다. 


 그리고 입사 6개월이 채 안 되어 점장으로 승진했고, 나의 노하우를 지역 소매 직원들에게 강의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루는 인터넷에서 이런 글을 본 적이 있다. '우리나라 3대 팔이는 차팔이, 컴팔이, 폰팔이'라고. '팔이'는 흔히 물건이나 상품 따위를 판매하는 사람들을 일컬어 낮게(혹은 비하하는) 지칭하는 말이다. 손님을 기만하며, 줄 수 있는 혜택을 감추고, 속이는 판매는 당연히 비난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모두가 그런 말을 들을 필요는 없다. 


 지금 나의 위치에 대해 의심할 필요 없다.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든지 남의눈을 의식할 필요도 없다. 내 직업의 가치는 내가 어떻게 하는지에 따라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직업을 가지고 있음에도 사회가 용인할 수 없는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다면 그는 자신의 가치를 깎아내린 것이다. 사회적으로 존경받지 못한다고 하기에는 조금 그렇지만 대부분이 밑바닥 직업이라고 하는 그런 직업을 가지고 있음에도, 선을 행하고 따뜻함을 실천하는 사람의 직업은 그 어떤 빛보다 밝게 빛날 수 있을 것이다. 


 수년 전 나는 2년 넘게 대리운전을 했다. 10여 년째 택시운전을 하시는 어머니와 함께 도시를 누비며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한 시간을 보낸 나이다.


 어느 날 덮친 우울과 불안에 쉽게 넘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의지가 필요하다. 살아내려고 하는 의지 말이다. 그 어떤 것도 쉽게 지나치지 않겠다는 의지 말이다. 


 "야! 네가 무슨 영업사원이냐? 그래봤자 우린 폰팔이야. 그냥 적당히 해~ 오버하지 마"


 언젠가 누군가에게 들었던 말이다.


 대기업이 아니면 망한 것인가. 서울이 아니면 망한 것인가. 연봉이 겨우 1,200만 원이면 망한 것인가. 폰팔이면, 차팔이면, 컴팔이면 망한 것인가. 나는 원한다. 이 땅의 모든 젊은 청년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소중히 여기기를 말이다. 


세상이 조롱하고 손가락질해도
내가 떳떳하다면
조롱의 손가락은
점점 그 방향을 틀어
 나를 비껴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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