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 세상에 나갈 준비가 되지 않았다
서툴렀다
군복무를 하고 있는 장병이라면 누구나 제대 후 '삐까뻔쩍한' 삶을 꿈꾼다. 꽤 망상 같을 수도 있지만 잠들기 전 눈을 감고 상상을 해 보면 전혀 불가능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희망이 생긴다. 나 역시 만기 제대가 얼마 남지 않았을 무렵 많은 생각에 잠겼다. 자격증 하나 따 놓지 않았지만, 무식하게 자신감 하나는 있었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당시 처음 도입된 전문하사에 지원하여 6개월 연장 근무도 했다. 얼마 되지 않는 월급이었지만 이른바 '장기' 선발에 우선권이 주어진다는 말도 달콤했다. 군인으로 평생 살고 싶었던 것은 아니지만 나가서 딱히 할 것이 정해져 있지 않으니,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6개월 추가 복무를 마지막으로 나는 덜컥 사회로 나왔다. 1년 간 다니던 대학을 그만두고 소방공무원 채용시험을 치기 위해서였다. 소방공무원이셨던 아버지는 이번에 정말 역대급 채용인원이라며 계속해서 권유하셨다. 하지만 엄두가 나지 않았다. 공부를 해 본 역사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바깥공기를 마시며 살고 싶기도 했고, 딱히 정해놓은 길도 없으니(정확히 말하면, 길이 없어진 거지만) 덜컥 제대를 하고 말았다.
"대학 그만두고 그냥 공무원 시험 쳐 봐라. 네 여동생은 대학을 계속 다녀야 하는데, 둘은... 둘은 너무 힘들 것 같다. 그러니까 네가 대학교 그만두고, 소방관 시험이나 준비해 봐라. 진짜 괜찮은 기회다."
정확한 길을 못 찾고 있는 내게 해주는 따뜻한 조언이었지만, 내가 가고 싶은 길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대학교를 그만둬야 한다는 것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애초에 음악이 좋아 음대에 지원해 합격을 했지만 한 학기 600만 원 가까이하는 학비와 불투명한 미래에 아버지는 진학을 거절하셨었다. 그래서 선택하게 하신 곳이 사범대인데, 이제 그만두라니... 모든 진로를 내 마음대로 결정할 수 없다는 사실에 잠들었던 사춘기 키랭이가 깨어나는 듯했다.
결국 2학기 등록을 포기하고, 고향에 내려와 막내고모부님이 운영하시는 독서실로 향했다. 공부하는 법을 전혀 몰라 우선 인터넷 강의를 끊었는데, 하루 1시간 이상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책 속의 지식과 정보보다는 세상이 궁금했다. 친구들과 연락해 술이나 마시고 싶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철없는 모습이었지만 그때 당시는 그랬다. 없는 살림에 아빠 카드를 받아 생활하며 아빠의 가슴이 구멍을 하나씩 뚫고 있었다. 아침 일찍 독서실로 나서는 아들을 보며 공부 좀 하겠지 싶으셨겠지만, 나는 근처 족구장 클럽에 가입해 하루에 기본 3시간씩 족구를 했다.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숨이 막혀 왔다. 불안장애의 일종인 호흡곤란 증상은 당시도 여전했다. 10분을 앉아 있기 힘들었다. 아니 10분이 웬 말인가. 1분도 앉아 있기 힘든 상황이 계속되었다. 집중을 하면 조금 낫지만 집중을 하는 방법도 몰랐다.
하루는 공부 방법을 도저히 모르던 차에 인터넷 강의 강사가 이런 말을 했다.
"애~ 그~ 저~ 책을 볼 때는 무조건 다 소설책 보듯이 읽지 말고, 중요한 부분에 힘을 조금 더 줘서 보세요. 그게 효율적입니다"
무식한 나는 그 말을 그대로 실천했다. 교재를 구입할 때 받은 나무 책받침에 책을 올려놓고 무슨 말인지 모르는 글자를 읽어가다가 줄이 그어진 부분이 나오면 눈과 미간을 찌푸리며 힘을 준 상태로 읽었다. 하지만 남는 것은 미간 주변의 주름뿐, 그 어떤 지식도 남지 않았다.
1층에 내려가 애꿎은 담배에 불을 붙였다. 때마침 담배를 태우러 오신 고모부님과 얼떨결에 맞담배를 피게 되었다.
"야~ 공부는 잘 돼 가나?"
"네? 아... 잘 모르겠네요. 어렵씁니더."
"차근차근 해봐라"
"네..."
그렇게 심심한 대화가 오간 후 다시 자리로 올라가 책을 쳐다보니 이제는 눈이 감겨 도무지 집중할 수가 없었다. 어느새 눈을 떠보니 족구장에서 족구를 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운동을 할 때는 호흡이 꽤 정리된다. 답답한 마음이 뻥 뚫리고 호흡곤란 증상도 90% 이상 완화된다. 우울한 감정도 완전히 사라졌다. 이대로라면 족구선수를 해도 되겠다 싶을 정도로 오랫동안 족구를 즐겼고, 결국 몇 차례 소방공무원 시험에 낙방하며 책가방을 완전히 쌌다.
나는 우선 내가 이 시험을 전적으로 원하지 않았다는 점, 나는 공부를 하기에 적합한 몸이 아니라는 점. 아버지 등골을 너무 빼먹었다는 점, 20대 중반에 겉멋만 들어 얼른 돈을 벌고 싶다는 욕구가 강했던 점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지역의 조그마한 회사에 취직을 해버렸다.
그리고 이러한 갑작스러운 이벤트가 내 인생을 그렇게 흔들어 놓을지는 당시엔 전혀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