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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랭이 Apr 09. 2024

사람이 많을 때 밀려드는 공포

(2/2) 군생활 에피소드 2. 자대생활

 불안은 누구나 겪는 일반적인 현상이다. 만약 불안이라는 감정요소가 없었더라면 우리 인간은 대자연에 삼켜져 버렸을지도 모른다. 불안하기 때문에 비를 피하고, 불안하기 때문에 집을 지었다. 불안하기 때문에 연구하고 개발해, 인류는 오늘날까지 생존해 왔다.

 납기일이 다가오는 불안 덕분에 일을 조금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처리하고, 미래에 대한 약간의 걱정과 불안 덕분에 사람들은 현재에 더 집중하고 미래를 위한 준비를 한다.

 문제는 이 불안이 병적 불안으로 발전할 경우에는 개인의 정신적, 신체적 증상을 유발고, 삶의 질은 저하되고 만다. 작은 불안에서 시작된 불안증은 점점 커져 일상을 집어삼킨다. 누구나 누릴 수 있는 평범한 삶은 더 이상 평범한 것이 아니게 된다. 평범하게 살고 싶었다. 정말로.



 갑자기 찾아온 불안장애로 특별한 이유 없이(혹은 당시에 알지 못했던) 호흡이 불안정한 상황이 지속되었다. 만성폐쇄성폐질환 환자나 천식환자와 같이 일상에 지장이 있을 정도였고 나는 더욱더 지쳐 갔다. 이곳이 사회라면 휴식을 취하든 병원에 가든 해 보겠건만, 이미 한 번 입대한 이상 아무 이유 없이 집으로 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훈련소에서 자대배치를 받는 순간까지 한 번이라도 '귀가'를 생각 안 해본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귀가를 선택할 경우 찍히게 될 낙인과 비난, 비웃음이 두려워 쉽게 선택하지 못했다. 동기들과 우정을 쌓아 나가며 버틴 덕분도 있지만...


 순간의 공포나 불안은 누구나 겪는 것이고, 시간이 지나면 잊히기도 한다. 그때 그 시절 누구나 그렇듯이 자대배치를 받으면 놀림도 당하고 욕도 얻어먹고, 이유 없는 갈굼도 당한다. 상병한테 혼나면 맞선임이 달래주고, 흡연장에 나가 담배 한 개비 피고 나면 조금 나아지기도 하다(사실 하나도 안 나아지지만). 하지만 정상이 아닌 나에게는 이런 일련의 과정들이 모두 힘겹게 느껴졌다. 생각보다 크게 뛰는 심장과 식은땀 때문에 순간을 견디는 것이 쉽지 않았다. 특히 호흡을 제대로 할 수 없어 나의 신경은 항상 예민했고, 잠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줄을 서 있는 것에 고통을 느끼는 내가 가로 70cm 정도 되는 모포 위에서 선임들 사이에 끼어 자니 여간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취침시간은 10시부터인데, 보통 30여 분 정도 선임들이 장난을 치거나 갈구거나 하는 것을 기다렸다가 잠들면 통상 11시에 잠이 든다. 나는 호흡을 몰아 쉴 대로 몰아 쉬다가 11시가 훌쩍 넘어 보통 잠이 든다. 잠버릇도 좋지 않았다. 깨어있을 때 못 쉬던 숨이 잘 때는 좋으리란 법도 없었다. 자다가 꿈에서 휘두른 팔에 선임을 깨워 하루가 멀다 하고 욕을 먹어 댔다. 마치 VR(virtual reality)을 착용하고 휘두른 기분이었다.


 그래도 교통사고 이전부터 가지고 있던 밝은 에너지와 긍정적인 사고 덕분에 무탈히 자대생활을 해가는 듯했다. 그 일이 벌어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어느 날 상급부대에서 뭔가 조사를 하러 온다는 소식이 들렸다. 군입대 전 사고로 외부와의 소통을 끊었던 터라 그것이 '소원수리'라는 것은 꿈에도 알지 못했다. 심지어 부대 내에서도 선임들이 '소원수리'라는 말을 거의 하지 않아 인지를 못하고 있었다. 설문조사 당일, 식당으로 들어가 앉자 한 관계자가 설명했다. "으레 하는 설문조사니까 편하게 적어라"라는 식의 말을 하고는 시작되었다. 문항을 읽어보니 별 내용은 없었다. 하지만 체크하지 말아야 할 곳에 체크를 하고 말았다.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도 생각해 보면 내가 왜 그곳에 체크했는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당시에 불안장애로 인해 자대생활을 힘들어하던 중 선임의 어떤 행동을 참지 못해 적은 것' 정도로 나름 합리화할 뿐이었다. 지금도 우리 사회는 내부고발자에 대한 인식이 좋지 못하다.


 며칠 뒤 중대장의 호출에 한 사무실로 들어갔다. 중대장은 나를 마치 유치원생이나 초등학생 다루듯 구슬려가며 유도질문을 시작했다. 나는 그 상황이 무슨 상황인지 도무지 파악되지 않았다.

 "혹시, 너 말고라도 누군가를 괴롭히거나 힘들게 한 걸 본 적 있니?", "없습니다.", "에이~ 괜찮아. 중대장이 너한테나 중대원들한테 해 되게 하려고 하는 거 아니야~ 진짜 괜찮으니까, 이 중대장한테만 살짝 이야기해 줘", "진짜 없습니다"

 이런 식의 질의답변은 무려 10여 차례 넘게 오갔다. 그러나 중대장의 끈질긴 회유와 협박 끝에 나는 손을 들고 말았다. "아... 그때 A일병이..."

 그러자 정말 영화(?), 드라마(?) 같은 데서 한 번쯤 봤을 법한 그런 표정을 쓱 지으며 엄하게 바뀐 말투로 말을 이어갔다. "A일병이 그랬단 말이지? 휴... 알겠다." 차갑게 변한 말투와 표정 덕분에 나는 알아차렸다. 


 '일 터졌네....'


 일과를 마치고 돌아간 막사는 더 이상 나의 집이 아니었다. 100여 명이 넘는 중대원들의 살벌한 살기를 피해 내 자리로 돌아갔다. 유일하게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내며 말을 걸어오는 맞선임 뒤로 무거운 목소리가 들렸다. 


 "야이 XX야, C일병, 너 미쳤냐? 앞으로 재랑 말 섞는 XX 있으면 나한테 죽을 줄 알아. 그리고 쟤 데리고 PX 가는 XX들 다 죽여버린다. 화장실 갈 때도, 담배필 때도, 전화할 때 허락 맡고 가. 알겠어?"


 분대장의 말이 끝나자 생활관 입구로 들어온 B일병이 이어 말했다. "분대장님, 부소대장님께서 인마 데리고 나오라는데 말입니다." 지금 무슨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도 안 되는데, 부소대장님의 호출이 있으니 '이제 살았구나'싶었다. 우선 한숨 돌리고 싶었다. 자욱한 흰 연기가 흡연장 주변을 감싸고 있는 것이 마치 불이라도 난 모양 같았다. 

 

 "야! 야!!! 너 내가 뭘로 보이냐? 야! 너희들 잘 들어" 뻐끔뻐끔담배연기를 내뿜는 중대원들을 향해 말했다. "앞으로 이 XX한테 말이라도 거는 XX 있으면 내가 가만 안 둘 줄 알아. PX, 화장실, 싸지방(사이버지식방-컴퓨터를 이용할 수 있는 곳), 아무것도 혼자 못 하게, 못 가게 해 알았어?, 눈길도 주지 마!!!"


 '그럼 그렇지... 중재는 무슨...' 사실 잘못에 대한 혼이 나는 것 정도는 받아들일 수 있는 정신연령인데, 고립이 가장 두려웠다. 지금 이 순간부터 나는 철저하게 고립된, 어찌 보면 모든 기본권이 차단된 물건에 불과했다.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스무 살... 꽤 멋진 인생일 거라고, 꽤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꽤 화려하게 살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나의 크고 작은 꿈들이 하나 둘 무너져 갔다. 바로 옆에 있는 전우들과도 어울리지 못한다는 자괴감은 더 이상 이 사회에 내가 존재할 곳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참아왔던 눈물을 쏟아 내었다. 


 "야, 이 XX 봐라. 우네. 네가 뭘 잘했다고 우냐. 야! 야!!! 안 그치냐!!!" 50여 명이 넘는 중대원들은 눈으로 혹은 감정으로 내게 돌팔매질을 하고 있었다. 



(공중전화 부스, 밖에는 맞선임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빠...", "어어~ 키랭~ 잘 지내나, 별일 없제?", "네...", "와 힘이 없니?", "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제가 소원수리라는 걸 썼는데...", "괜찮다. 시간 지나면 괜찮아질 거다. 조금만 더 참고 힘내라"


하지만 나는 시간이 별로 없었다.




 고립은 정말 무서운 것이었다. 관계의 고립은 사회적 고립으로 이어지고, 그것은 다시 내면의 고립으로 이어진다. 사람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듯이, 혼자가 되면 더 이상 살아갈 동력을 잃게 된다. 물론 혼자서 살아가는 자연인도 있지만, 나는 아직 자연인은 아니지 않은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어지는 갈굼과 욕설에 내 뇌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해 한계가 왔다. 방금 들은 말을 기억하지 못했고,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는 'ERROR'상태가 되었다. 모두가 잠든 시각, 군 병원에서 타 놓았던 약봉지를 뜯었다. 그리고 또 한 봉지 뜯었다. 한 봉지... 한 봉지 뜯다 보니 어느새 처방받은 모든 약봉지를 다 뜯었다. 


 몇 분뒤 잠이 들며 말로만 듣던 주마등이 스쳐 지나갔다. 후회되었다. 


 '조금 늦게 입대할걸... 치료를 다 마치고 들어올걸... 교통사고 나지 말걸... 소원수리 적지 말걸... 부모님께 더 잘할걸... 학교 다닐 때 공부나 열심히 할걸... 집이야 어떻든 나대로 열심히 살걸... '



"빰빠 빰빠빠 ~ 빰빠라빰빠 빰빠빠~~~~~~~....... (웅성웅성)"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아침이 되어 있었고, 나는 식당에 가 있었다. 옆에서 누가 나에게 욕도 하고 말도 거는데, 들리지 않았다. 다시 정신을 차려보니 작업장에 가 있었고, 다시 정신을 잃었다. 오후 2시가 겨우 넘어서야 나는 어느 정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이후 보직에서 제외되었다. 그리고 일을 맡았다. 공사장이었는데, 아침 7시부터 시작해 저녁 9시까지 하는 작은 공사였다. 먼지를 둘러쓰고 하루종일 공사를 하고, 혼자서 막사를 왔다 갔다 하니 서서히 증오와 원망이 가라앉았다. 타 중대 간부님들 몇 분이 조금씩 챙겨주기 시작했다. 음료수도 받아먹고, 간식도 받아먹으며 차츰 분위기에 적응해 갔다. 특히 같이 공사에 참여했던 한 상병의 계속된 도움 덕에 나는 다시 중대에 무사히 안착할 수 있었다. 형 동생 하며 지내다 전역을 해 지금은 무얼 하며 지내는지 알 수 없지만, 그때 그 상병이 아니었다면 나는 또다시 길을 헤맸을지 모른다. 




 수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당시의 일을 회고하며, '내가 왜 그랬지?'라는 물음만 도돌이표처럼 굴렸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나의 병증인 불안장애로 말미암아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물론 누군가의 잘못된 행동을 묵과하는 것이 올바른 행동이라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나를 사지로 몰아넣었던 사건이었던 만큼 그 당시 행동은 내게 있어서 만큼은 바른 판단은 아니었을 것이라는 거다.


 어쨌거나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은 추억으로 남아 되도록 좋은 기억만 가지고 살아가고 있지만 또다시 이렇게 과거의 일을 꺼내어 보는 것은, 나의 과거를 다시금 조명하여 지금의 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재료로 쓰기 위함이다. 한 단계, 한 단계 성숙해지고, 알아가는 것이 많아질 수록 얼려놓았던 과거를 녹여보면 새롭게 보이는 것들이 참 많다. 


 과거를 절대 두려워 하지 말자. 그 때의 나는 386 컴퓨터 같은 존재였지만, 지금의 나는 어두운 과거를 재해석하고 분석해 현재의 삶을 유의미하게 만들 수 있는 슈퍼컴퓨터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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