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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랭이 Mar 29. 2024

줄을 서 있을 때 밀려드는 공포

(1/2) 군생활 에피소드 1. 논산훈련소

 쌀쌀한 기운이 온몸을 파고들던 그 해 겨울, 꽤 이른 시간에 일어났다. 오늘은 논산훈련소로 가는 날이기 때문이다. 아버지 어머니께 인사를 드리고 집을 나섰다.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그런 환송(?)을 받지는 못했다. 교통사고로 침체된 분위기 탓도 있었지만 지금 날씨만큼이나 늘 썰렁한 집안 분위기도 한 몫했다. 비록 환송은 못 받았지만 환승을 위해 대전에 한 터미널에 내렸다. 터미널을 나와 조금 걸었다. 배가 고팠다. 편의점 한 군데가 눈에 들어와 안으로 들어갔다. 건너뛴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 '새우탕면'하나를 구매했다.

 "(사투리로) 먹고 가도 됩니까?" , "네?" , "(책 읽듯이) 먹고 가도 되나요?" , "네? 아~ 네 저기서 먹고 가면 됩니다." 사투리를 심하게 사용한 것도 아니지만 억양에 문제가 있었는지 점원이 잘 알아듣지 못했다. 하지만 차라리 그게 더 나았다. 몇 마디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긴장이 좀 풀어졌기 때문이다.

 훈련소 입구에 들어서니 사람들이 정말 구름 떼 같이 모여있었다. 훈련소 옆으로 늘어선 식당에는 주차장마다 차량이 꽉 찼고, 자리에는 앉을자리가 보이지 않았다. '점심시간이구나...(꼬르륵)'

 공중전화박스 앞으로 갔다. 생각보다 공중전화박스는 한산했다. 다들 가족들과 친구들과 사진을 찍고 웃고, 장난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급한 일이 아니라면 전화할 일도 없을 수첩에 적어간 전화번호 몇 개를 뒤적거려 전화를 거렸다. 전화를 받아도 크게 관심도 없을 테지만, 아마 잘 다녀오라는 인사를 받고 싶어 걸었던 것 같다. 그렇게 심심한 전화를 마치고 연병장으로 들어섰다.

 입소식 같은 행사가 끝날 무렵 모두 좌향좌를 시켰다. 무리 중간쯤 서 있다가 몸을 왼쪽으로 돌리니 꽤 많은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웃는 사람도 있고, 우는 사람도 있다. 팔짱을 끼거나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물끄러미 바라보는 사람도 있다. 대부분 친구나, 아버지들이다. 단상 앞에 있던 사람이 마이크로 "(누구누구를 향하여~) 경례"라고 선창 해주었고, 사람들은 일제히 손을 이마 위에 올렸다. 나는 경례할 대상을 찾지 못해 머뭇거리다 경례를 하며 앞에 서 있던 동기의 등을 바라보았다. 훌쩍 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나도 일단 훌쩍거렸다. 참으로 긴 하루였다.


 시간이 조금 지나니 동기들과 금세 친해졌다. 내무실 바로 옆 자리 동기는 같은 고향 출신에 동갑이었다. 훈련소 적응을 나쁘지 않게 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문제는 엉뚱한 곳에 있었다. 집합을 할 때나 제식을 할 때 호흡이 잘 되지 않았던 것이다. 집합을 해 차렷자세를 하면 눈동자도 움직여서는 안 되는데, 눈은 그렇다 치더라도 몸을 가누기 힘들었다. 이상하게 집합만 하면 호흡이 곤란해져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제식을 할 때는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요령껏 숨을 몰아 쉬었는데, 집합은 쉽지 않았다.

 결국 2주 차가 지나갈 때 즈음 조교에게 이야기했다. '교통사고를 겪은 후에 호흡이 잘 되지 않아 힘들다'라고. '최대한 규율을 지킬 건데 혹시 움직임이 조금 있을 수 있다'라고. 나의 나약함을 스스로 증명하는 꼴이라 여기서도 알리고 싶지 않았지만, 이유 없이 혼나기도 싫었고, 동기들에게 피해를 주기는 더더욱 싫었다.

 그 외에도 잠을 깊게 못 자 새벽에 몇 차례나 계속 깬다던지, 1주일 동안 화장실을 못 갔다던지 하는 사소한 불안증상들은 여느 훈련병들도 조금씩 겪는 것이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퇴소를 할 때는 정확히 용어가 기억나지 않지만, 우수 훈련병으로 퇴소했다. 호흡은 불안했지만, 2년 동안 건강하게, 무사히 복무를 마칠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당시에는 불안장애인지 뭔지 몰랐지만, 어쨌든 동기들과 함께 하며 힘든 시간을 이겨낼 수 있었다. 각자의 사정은 조금씩 다르지만 비슷한 환경에서 비슷한 경험을 함께 하며 서로 힘이 되어 주었다. 기댈 수 있는 곳이 있고 나는 누군가의 어깨가 되어주었다. 이대로라면 2년, 무사히 마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남은 군 생활을 계속 보내게 될 자대는 조금 달랐다. 예상은 어느 정도 했지만 내무반의 군기는 엄격했고, 시선 처리도 함부로 할 수 없는 곳이었다. 자대배치 첫날, 벌써 훈련소가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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