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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랭이 Apr 27. 2024

공감할 수 없는 마음의 그림자

외로운 질환, 과호흡증후군

마음의 그림자, 과호흡증후군의 시작


 고등학교 때부터 남다른 학교생활을 보내고 있던 나였다. 고 1 때 처음 hyperventilation syndrome, 즉 과호흡증후군이 발생한 것이다. 맥박, 호흡, 산소포화도 등은 정상이지만 증상자는 호흡곤란 증상을 보이며 괴로워하는 증상으로, '증후군'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한 번 발현하면 자주 발생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주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갑가지 받았을 때 자주 발생하며, 과식, 과음, 손 발이 차가워진 상태 등 다양한 원인에 의해 나타나기도 하며, 숨을 몰아쉬어 몸 속에 산소가 과하게 들어오고 이산화탄소가 부족해지는 상태가 된다. 그러면 어지럽거나 경련, 실신을 하기도 하고 나와 같이 손 발이 저리기도 한다.


 증상의 치료는 대부분 안정을 취해주면 호전된다. 그래도 안 되면 약물을 투여하기도 하지만 극히 드물다.




 고등학교 1학년 제법 더웠던 어느 봄날, 중창단 동아리 모임을 위해 빗속을 뚫고 모임장소에 도착했다. 후덥지근한 날씨에 비까지 내리니 습기를 제거하기 위해 에어컨을 틀어놨었고, 마침 나의 손과 발은 물에 젖어 있었다. 모임 선배님들과 인사를 나눈 후 자리를 잡고 바닥에 앉았다. 그때! 갑자기 손과 발이 저려오기 시작했다. '바닥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있으니 피가 안 통하나?'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저린 증상은 점점 몸의 중심으로 파고 들어왔고, 하악과 목 아래로 번져나가기 시작했다. 호흡이 거칠어졌고, 금방 끝날 줄 알고 증상을 숨긴 채 대화를 이어가던 나는 턱관절이 굳어가 다음 말을 잊지 못했다. 손과 발 끝은 말려 들어갔고, 호흡곤란 증상이 시작되었다. 숨을 들이마셔도 마신 것 같지 않았고, 내 쉬어도 내 쉰 것 같지 않았다. 지릿하고 찌르는 듯한 통증은 마치 몸속 기생충 마냥 스멀스멀 기어와 심장을 조여왔다.


 처음 느껴보는 고통에 울며 소리를 질렀고, 몸은 꼬여갔다. 주변에서 그런 나를 지켜보던 사람들은 모두 몸을 펴 주기 위해 달려들었다. "야~ 야~ 얘 왜 이래? 간질인가?", "몰라, 나 이런 거 처음 봐", "원래 얘 좀 아팠나?", "아니, 모르겠는데" 온갖 걱정과 추측이 뒤섞인 말들이 오가며 나를 돌보았고, 누군가 나의 젖어 있는 양말을 벗겨주고 몸을 따뜻하게 해 주었다.


 얼마가 지났을까... 지옥 같은 고통이 끝이 나자 나는 잠이 들었다. 얼마 후 눈을 떠 보니 온몸에 힘이 빠져나가 물어 젖은 미역 마냥 흐물흐물 해진 상태였다. 


 "키랭아~ 이제 좀 괜찮아?"

 "네... 네..."


 말을 조금 크게 하려고 하니 저림 증상이 다시 올라와 일단 안정을 취하고 한 참을 누워있다 집으로 돌아갔다.


 인터넷의 발달이 지금과 같지 않고, 병원에 가기에는 두려움이 앞서던 그때 그 시절, 나는 그 증상이 어떤 원인 때문에 발생했으며 병명이나 증상의 이름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죽을 만큼의 고통은 있으되 죽지는 않는다는 것이고, 다시 정상으로 돌아와 원래의 생활이 바로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이후로도 나는 수년 동안 몇 차례 쓰러지며 이것이 정신적인 문제 때문에 발생한 것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경제적인 문제와 기타 다른 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는 부모님을 매일 같이 바라보며 심장이 제멋대로 뛰는 삶을 계속해서 살다 보니 나의 신경도 잔뜩 예민해질 대로 예민한 상태였다. 이 제멋대로 뛰는 심장 때문에 당장 내일 부정맥이 온대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어느 날이었다. 아침부터 어머니와 다투다 등굣길을 나섰다. 대충 지어진 삐걱거리는 컨테이너 문을 열고 집에서 나와 골목길 진흙땅을 밝고 걸어갔다. 큰 도로가 있는 인도로 나가니 등교를 위해 동으로 서로 북으로 움직이는 수십여 명의 학생들이 보였다. 오가는 버스에 숨 쉴 틈도 없이 빼곡히 서 있는 학생들까지 감안하면 백여 명은 훌쩍 넘어 보였다. 


 한 걸음, 한 걸음 걸으며 버스정류장 앞을 지나가던 그때 손과 발이 다시 저려 오더니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다. 주변에 있던 어른들은 "어머나! 쟤봐봐! 간질인가?" 라며 달려와 손과 발을 펴 주며 주물러 주었다. 그리고 내게 물었다. "얘! 괜찮아? 어디가 안 좋은 거니?" 손과 발이 말려들어가며 심장이 쪼이는 고통을 참으며 말했다. "조... 조금 일.... 으... 면... 괜.... 찮아.. ㅈ... 질... 거... 에요. 죄.. 송. 합니... 다... 별.. 거 아니.. 에요... 옆으로... 좀... 이대로... 누워.. 있을.. 게요.." 나의 예상치 못한 답변에 어른들은 놀랐고, 부모님을 불러야 되는 거 아니냐는 말에 다시 대답했다. "아.. 니예요... 괜찮아요... 진.. 짜 별.. 거아.. 니예요.."


 별 것 아니라는 말과는 다르게 꽤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한 참을 보도블록 위에 누워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호흡을 조절했고, 저림과 고통은 조금 남아 있었지만 다시 일어서기 위해 노력했다. 지각은 곧 선생님의 매질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결국 1교시도 못 들어간 나는 지각을 하고 말았지만, 담임선생님께 자초지종을 말씀드리고 무사히 석방될 수 있었다. 




과호흡증후군, 지금은 괜찮은가?


 안타깝게도 지금도 여전히 이러한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 다만 몇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정도로, 몸이 정말, 부서질 정도로 좋지 않을 때 나타난다. 그리고 나타나더라도 심장이 조일 정도의 고통까지는 가지 않는다. 지금은 적절히 대처하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이 증상을 알게 되고 대처한 지도 이제 20년이 훌쩍 넘었다.


 과호흡증후군도 그렇지만 불안장애(불안증)를 관리하는 방법은 없지 않다. 책의 말미에 더 자세히 다루겠지만 이번 편에서는 내가 직접 실천하고 있는 것들을 몇 가지 소개한다.


 1. 운동을 해야 한다. 꾸준히.

  나의 경우에는 무산소 운동, 즉 헬스와 같은 근력 운동을 할 경우에 과호흡증후군은 아니지만 불안장애의 신체화증상의 일종인 호흡곤란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러한 증상이 나타난다는 것은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유산소 운동을 즐겨하려고 하고, 무산소 후에는 유산소 운동을 충분히 하려고 애쓴다.


2. 과식, 과음하지 않는다. 

 맛있는 것을 먹는 것은 즐겁다. 이성을 마비시키는 음주도 사람들과 대화하며 어울리면 즐거울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이 과하게 되면 몸에 반드시 이상신호가 온다. 특히 과호흡증후군과 같은 전력이 있는 사람이 과식, 과음을 할 경우 몇 시간 후나 다음 날 과호흡증후군 증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 역시도 나의 호흡곤란 증상을 통해 실험(?)을 해 본 결과를 바탕으로 결론 지은 것이며, 적당한 식사와 적당한 음주 혹은 금주가 정서적 안정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이렇게 적고도 가끔 과식과 과음을 하기도 하는데, 그럴 때는 며칠 푹 쉬려고 노력하며 몸에 쌓인 스트레스 찌꺼기들이 다 빠져나가기를 기다린다.


3. 문제를 빠르게 해결하라.  

 직장에서 새로운 업무가 주어지면 불안은 자연스럽게 시작된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좋은 불안일 수도 있는데, 문제는 계속 불안한 상태를 방치하면 좋지 않은 불안으로 바뀌게 되며, 초기에 잡지 못해 지속적인 불안 증상을 야기할 수도 있다.

 따라서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는 시작 전 그 일에 대해서 충분히 파악하고 연구한 후 내 것으로 만들어 자신감을 올린다. 이것이 1차적인 초기 불안증상 제거 방법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이라면 최대한 빠르게 효율적으로 일을 처리하여 불안의 꼬리를 잘라버린다. 

 무엇을 먼저 시작해야 할지도 모를 정도로 일이 밀려들 때면 당연한 소리겠지만 우선순위를 반드시 정해서 처리하는 편이다. 후에 자세히 다루겠지만, 스케쥴러와 다이어리, 스마트폰 등을 활용하여 중간중간 정리해 줌으로써 전체 맥락을 파악해 불안을 잠재우려고 애쓴다.




 얼마 전 불안장애 약을 복용하고 있는 한 여고생을 이송한 적이 있다. 어떤 사연인지, 어떤 상태인지, 나로서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가슴 한편이 먹먹했다. 나와 같은 나이에 증상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생각했다. 하루빨리 책을 완성해야겠다고. 내가 할 일은 그것이다. 새 살 밑에 덮여있는 지난 상처를 세상에 드러내어 철저히 해부해,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빨리 이야기를 들려드려야겠다. 그들의 아픔이 조금이라도 빨리 끝날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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