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뒤로 넘어가는 사이렌 소리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같은 동네, 같은 아파트의 사건사고는 못 참는다.
"음... 화재는 아닌 것 같고..."
..
"반갑습니다~~~"
밝게 인사하며 센터에 들어서는데 밤새 근무한 대원들의 표정이 영 좋지 않았다. 구급차 주변으로 하나 둘 모여 정리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큰 건을 하고 온 것 같았다. 아스팔트 바닥에 흩뿌려진 물자국들이 내 추측에 힘을 보태어 주었다.
"무슨 일이야?" 후배들의 눈치를 보며 나지막하게 물었다.
"추락... CPR 다녀왔습니다..."
"아... 왜..."
"빚이 있었대요..."
"아..."
그 말을 들은 나도 조용히 장갑을 끼고 정리를 도왔다.
도심에서 일을 하며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은 줄 미처 알지 못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불안해하고, 우울해한다. 나이와 연령도 너무 다양하다. 10대에서 80대까지 남성, 여성,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아프다.
하지만 막상 현장에 가 보면 소방대원인 나는 크게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거나 눈물을 닦아주고 싶지만, 현실은 드라마가 아니다. 그렇게 나는 '도대체 내가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늘 고민만 하다가 사무실로 돌아온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주 없지는 않다. 바로 글 쓰기다. 이 글이, '정말 필요한 사람'에게 닿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한 자 한 자 정성 들여 쓰는 일이야 말로 내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싶다. 쓸쓸한 하루를 보내며 문득 나의 어두웠던 한 장면이 떠오른다. 벌써 10년도 더 된 일이다.
당시 나는 통신업계에 입문해 꽤 높은 실적을 올리며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회사도 함께 들떠 있었다. "야~ 이대로만 하면 매장 계속 늘려도 되겠는데?" 실적과 매출이 저조한 시기를 오랫동안 겪은 탓에 회사는 한 줄기 희망을 보게 된 것이다.
결국 매장을 늘리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나는 신생매장으로 이동했다. 그동안 갈고닦은 실력을 마음껏 뽐내며 휴대폰과 유선판매를 이어나갔고 신생매장은 단숨에 1등 매장으로 자리 잡아가는 듯했다.
하지만 그 영광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회사 내 다른 점장과 직원들이 나의 매장을 노리고 있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공탁금만 걸면 매장 소사장 자리를 주겠다는 윗선의 언급에 나보다 한참은 나이가 많았던 그들은 군침을 흘렸다.
모아놓은 돈도 없고, 마련할 능력도 안 되고, 마련할 수 있어도 방법도 모르는 나는 얼마 뒤 내 매장이 다른 사람 손에 넘어갈 수도 있다는 소식에 크게 좌절했다.
그리고 나의 선택은 제 발로 나가는 것이다. 나의 첫 퇴사다. 그리고 나는 바닥을 치기 시작했다. 판매실적과 매출은 어느 정도 관리가 되었지만 나의 가계를 관리하는데 실패하고 만 것이다.
함께 하기로 했던 사람에게 당하고, 급여와 퇴직금이 묶였다. 고객의 문제는 모두 개인인 내게 떠넘겨졌고, 나는 술에 빠졌다.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새 빚은 산더미처럼 쌓였고 나는 처음으로 마이너스 통장과 함께 채무자가 되었다.
일을 하고 있지 않는 기간 동안 카드값이며 통신비며 이것저것 나가는 탓에 결국 말로만 들었던 카드 돌려 막기를 시작했고, 결국 일이 커져 금리 26퍼센트에 달하던 3 금융 대출을 사용하게 되었다.
매일 같이 오는 금융회사의 전화와 고객들의 문의 전화에 나는 점점 지쳐갔다. 휴대폰의 모두 무음으로 바꾸었다. 어렸을 때 받던 독촉 전화에 트라우마가 있었는데 다시 그때의 기억 때문인지 무의식의 반응을 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곰팡이와 거미줄이 잔뜩 처진 방 안에서 그저 오늘 하루가 지나가기만을 바라며 그렇게 무기력하게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피하고 싶었지만 왠지 받아야만 할 것 같았다.
"네"
"아~ 점장님, 잘 지내시죠. 저 OO대리점의 A인데요. 요즘 일을 안 하고 계신다고 해서... 혹시 같이 해보실 생각 있으신가 해서요. 직원이 필요한데, 점장님이 워낙 잘하시고 하니... 한 번 만나서 이야기하시죠"
뜻밖의 전화였다. 내가 살던 곳에서 꽤 거리가 있는 곳에서 연락이 온 것이다. 바로 결심이 섰다. 써 준다는데 안 갈 이유가 없었다. '배운 것도 없고 자격증도 없다. 할 수 있는 일도 많지 않고, 해도 얼마나 잘할지도 모르겠다. 일단 가서 다시 일어서보자.'라는 마음으로 단 숨에 짐을 쌌다.
지갑에는 새 직장으로 갈 수 있는 시외버스 차비만 조금 남아있었다. 그 외에 생활비는 한 푼도 있지 않았다. 방은 회사에서 제공해 주기로 했다. 건물 지하주차장 옆에 있는 지하방이었는데 빛이 아예 안 들어와서 그렇지 꽤 괜찮은 공간이었다.
새로 얻은 방에서 직장까지는 걸어서 약 한 시간 거리였다. 부지런히 걸어가면 40분 내에 도착하는 곳인데, 운동삼아 걸어 다니기로 했다. 다행인 것은 매장 직원들이 가끔 태워주기도 했기 때문에 매일 힘들게 걸어 다니지 않아도 되었다.
식사는 매장에서 사주는 점심이 거의 전부였다. 저녁은 직원들이 집으로 초대해 주거나 식당에서 가끔 사주었다. 그마저 여의치 않을 때는 라면을 사서 반씩 쪼개어 끓여 먹기도 했다.
지역을 옮겼어도 매일같이 전화 오는 빚 독촉 전화에 매일 머리카락이 수백 개씩 빠지고, 호흡곤란 증상은 계속되었지만, 일에 집중하려 애쓰면서 마음을 다 잡았다. 무엇보다 직원들의 격려가 가장 큰 도움이 되었다. 별다르게 위로를 해준 것은 아니다. 다만 같이 있어주는 것. 함께 웃어주는 것만으로도 내겐 가장 큰 힘이 되었다.
내 옆의 친구가 마음이 불안하고 아플 때는 많은 말을 해주는 것이 필요치 않은 것 같다.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 주는 것만으로도 때로는 큰 위로가 된다. 함께 웃고 떠드는 것만으로도 한 인생이 다시 살아갈 용기를 얻는다.
그러고 보니 사실, 부모님께는 채무사실을 알리지 않고 '일을 배우러 타지에 가 보겠습니다.'라는 프레임을 씌어 도망쳐 내려갔다. 타지에 내려간 지 한 달 정도 지나 월급이 들어왔을 때 나는 곧장 시외버스터미널로 갔다. 엄마가 해주는 밥이 먹고 싶었다. 한 끼만, 딱 한 끼만 먹고 싶었다. 일주일에 평일 하루를 쉴 수 있기에 어차피 두 끼, 세끼씩 먹을 수 없었다.
오랜만에 집으로 간 나는 엄마가 해 준 밥을 입 안 가득 눈물과 함께 밀어 넣었다. '엄마... 아빠... 미안... 내 문제는 내가 해결할게...'
타지에서의 생활을 시작한 지 약 2개월이 지날 무렵 사장님의 호출이 떨어졌다.
"키랭이, 일하는 거 보니까 성실하게 잘하던데, 다음 달부터 점장 때 받던 월급처럼 올려 줄 테니까 마음껏 팔아봐"
사실 그동안 판매를 적극적으로 하지 말라는 사장님의 지시가 있었다. 지켜보기 위해서였다. 믿고 맡길 수 있는지 말이다.
"네, 사장님 감사합니다!"
이후 나는 곧받로 예전의 판매실적을 회복하고, 돈을 갚아 나갔다.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빚을 걷어내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객지생활 약 10개월 만에 나의 3 금융 생활은 막을 내렸다. '대출이 상환되었습니다' 떨리는 눈으로 문자메시지를 바라보며 닭똥 같은 눈물을 액정 위로 한 방울 흘렸다. 나는 기다릴 것도 없이 엄마에게 전화했다.
"엄마... 나... 빚 다 갚았어..."
"빚? 무슨 빚?"
"아... 원래 빚이 있었는데, 방금 다 갚았어."
"그래?"
"아, 응, 나 직워들이랑 밥 먹으러 가니까 끊을게~ 이따 연락할게"
흔들리는 목소리를 들키지 않으려 황급히 끊은 나는 직원들과 기쁨의 축배를 다시 한번 들었다.
내가 돈을 잃게 된 경위는 전적으로 내 잘못에 있다. 돈을 소중히 다루지 않았던 것. 돈을 잘 관리할 능력이 없었던 것. 분수에 맞지도 않게 흥청망청 쓰며 위기를 관리하지 않았던 것. 사람을 쉽게 믿어 큰돈을 잃은 것 등 따지고 보면 모두 나의 문제다. 하지만 나는 나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나를 붙잡았다.
돈을 잃고 모든 것을 포기하기에는 아직 너무 어리고 젊다고 생각하며, 다시 한 번 더 올 기회를 붙잡기 위해 밖으로 나아갔다. 전혀 보이지 않았던 탈출구도 어느샌가 내 눈앞에 가까이 와 있었다. 26퍼센트의 고리의 이자를 갚아나가며 아깝다고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인생을 가벼이 여겼던 한 청년의 인생수업료라고 생각하며 버텼다.
밥을 먹지 못해 배가 고픈 것은 그동안 흥청망청 먹어댔던 것에 대한 반성이라고 생각했고, 뚜벅뚜벅 걸어 다니며 출퇴근을 할 때에도 새벽이슬과 석양을 즐길 수 있음에 감사했다. 빛이라고는 들어오지 않는 어두운 방 안에서는 오래 있으려 하지 않았고, 시간이 되면 밖에 나가 언젠가 내게도 닿기를 바라는 햇살을 마주하며 시간을 보냈다.
실패했다고, 빚이 있다고, 모든 것을 멈춰서는 안 된다. 맛있는 것이 먹고 싶을 때는 먹고, 한 잔 술이 생각날 때는 직원들과 어울리기도 했다. 예전의 삶으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 절제하는 법도 배우며 고장 난 나를 다시 고쳐 나갔다.
"어? 형님~!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아! 야~ 오랜만이다. 나? 나 요즘 영업 뛰잖아~"
"와~ 아니, 형님 얼굴이 너무 좋아지셨어요~"
"그래? 고맙다야. 가게 접고 빚만 잔뜩 생겨서, 요즘 이 일 하는데, 너무 행복해"
"아니, 근데 형님 진짜 행복해 보이세요. 비결이 있으세요?"
"비결? 다 내려놨다. 빚도 내 일부인걸. 받아들이기로 했지. 내일 어떻게 될까, 다음엔 어떻게 될까 고민할 시간에, 오늘 어떻게 행복하게 살까, 오늘 얼마나 가족들과 많이 웃을까. 그것만 생각하지."
"와..."
병원에 들렀다 집에 가는 길에 우연히 만난 오랜 지인인 형님을 만난 적이 있다. 소식이 뚝 끊겨 사실 걱정을 많이 했었는데, 나의 괜한 걱정이었나 싶다. 현님은 억울한 소송에 휘말려하시던 가게를 접고 영업을 뛰고 계셨다. 빚은 말할 수도 없이 크게 졌지만, 그의 얼굴만큼은 빚 있는 남자가 아니라 빛 있는 남자의 얼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