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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랭이 May 24. 2024

불안은 자아의 부재로부터 시작된다

키랭이 통신사 취직하다 ③

 끝날 것 같지 않던 빚을 모두 갚고 나니 생각은 다음 스테이지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그동안은 정말 살기 위해 살았다면, 이제는 내가 살고 싶은 대로 살고 싶어졌다. 우선 뭐부터 시작할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책, 그래 책을 보면 되겠다.' 순간 생각나는 것은 책이었다. 성공하는 사람들을 책을 읽는다고들 한다. 그리고 성공하기 위해서 책을 읽어야 하는 것으로 정말 막연하게 알고 있었다. 당시 나의 성공 기준은 '돈'이었다. 돈을 많이 벌어 비싼 외제차를 끌고 다니는 것이 성공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내가 읽어야 할 책의 범주는 점점 좁아져 '부'와 '성공', 부자가 되는 법 등의 책으로 정해졌다.


 빚을 막 다 갚고 통장에 돈이 좀 남아 있었다. 퇴근하는 길에 숙소 옆에 있는 서점에 들렀다.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있는 서점인데, 그동안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것이 애석하게만 느껴졌다. 5만 원이 채 안 되는 잔고였지만 모두 책을 사보겠다는 다짐으로 열심히 골라보았다. 그러다 한 권의 책이 눈앞에 들어왔다. 정말 운명과도 같은 만남이었다.


 자기혁명(박경철)

 책을 집어 들어 앞 뒤 표지에 쓰인 추천사와 몇 가지 요약된 문장을 읽었다. 그 순간 온몸의 전율이 흘렀다. 흥분된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카운터에서 결제를 진행했다. 꽤 있어 보이는(사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두꺼운 책을 손에 쥐고 서점 문 밖을 나서니, 당장 내일이라도 성공한 사람이 될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내일의 나는 여전했다. 역시 너무 어려운 책을 고른 탓이었을까. 두꺼운 책을 책상 위에 그대로 둔 채 그렇게 한 달여 가까이 시간이 흘러갔다. 그리고 남은 돈으로 새로운 책을 몇 권 구입했다. 책의 제목들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부'와 관련된 마인드셋을 할 수 있는 그런 책이었다. 그리고 '정리'와 '메모'의 힘 같은 책들도 구입해 읽어나갔다. 생활의 전반의 기본적인 것부터 뜯어고칠 필요가 있었다.


 책을 구입할 때 현재 꼭 필요한 것으로 구입하려고 신경을 썼다. 도서관에서 빌려볼 수도 있겠지만 소장하며 오래 읽고 싶었다. 근거 없는 말이지만 왠지 사서 읽은 책은 빌려 읽는 것보다 더 깊게 읽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책 몇 권 읽는다고 마이너 한 내 인생이 변할까...


 책을 읽으면서도 늘 의심은 가득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값을 지불하고 구입한 책이기에 셀프강제로 책을 읽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의심을 걷어내야 했다. 책의 저자를 온전히 신뢰하고 내용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은 우선 '믿음'이 필요했다. 이 책을 읽으면 내 인생이 조금은 나은 방향으로 갈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말이다. 


 책을 읽으며 줄을 치지는 않았지만, 그때그때 드는 생각들을 빈 공간에 메모해 갔다. 그렇게 '자본주의', '부자들의 습관', '정리의 기술들', '메모의 힘'과 같은 주제의 책을 몇 권씩 뚫고 나갔다. 


 그리고 보이기 시작했다. 


독서는
내게 없었던 것
내가 하지 않았던 것
내가 놓쳤던 것들을 깨닫게 했다. 


 이제 다시 두꺼운 책 '자기 혁명'을 펼쳐 들었다. 책을 읽는 속도가 아닌 사색을 목표로 삼았다. 앞선 독서 때와 마찬가지로 책을 읽고 떠오른 생각들을 빈 공간에 적어나갔다. 필요하면 수첩을 꺼내 길게 써보기도 했다. 답답하고 불안했던 마음이 점점 하나 둘 걷혀갔다. 가장 도전적이고 가능성이 넘치는 나의 젊은 날 20대를 모호한 프레임 속에 가둬버린 나를 다시 되돌아보았다. 반성했다. 하지만 후회하지 않았다. 아직 늦지 않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나는 나를 잘 안다고 생각했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내가 무엇을 싫어하는지, 나는 무엇을 못하는지, 혹은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 나는 나를 잘 안다고 생각했다. 하지막 깊이 있는 독서를 통해 나는 나를 잘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를 에워싸고 있는 세상의 프레임들을 한 겹 두 겹 벗겨내며 그 속에 숨어 있는 심연의 나를 들여다보기 위해 애썼다. 생각이 막힐 때는 옆으로 늘어서 있는 시골 논길이나 공원을 걸으며 사색에 잠겼다. 


 생각이 더 이상 내 메모리를 넘어서던 그때 나는 종이와 펜을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적어나갔다. 내가 하고 싶은 것, 되고 싶은 모습, 갖고 싶은 것, 내가 잘하는 것, 내가 못하는 것, 장점과 단점을 낱낱이 적어보았다. 차마 내 손으로 적기에 부끄러운 것들을 가감 없이 적어나가자 점점 내가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나를 바라보며,
이제 내 안의 작은 혁명을 이룰 준비가
 비로소 된 것이다.


 '내'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자 '나'의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직업에 대한 사색이 가장 먼저 시작되었다. 계속 이 일을 할 것인지, 아니면 내 삶의 변화를 위해 그만두고 다른 길을 찾을 것인지 말이다. 몇 날 며칠이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그리고 조금씩 결론은 나고 있었다. 삶의 비전과 목표를 세웠을 때에 그것은 더욱 뚜렷해졌다. 


 나의 비전은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는 선한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 되자'였다. 이러한 비전을 실천하기 위한 삶의 목표들은 가정, 경제, 건강, 신앙 등으로 세분화하여 세웠다. 특히 가정 부분에서는 유토피아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좋은 아빠 좋은 남편, 좋은 아들이 되는 것이 내 목표였다. 다시, 그것을 이루기 위해 또 세분화하여 한 차례 더 세부목표를 세웠다. 그랬더니 정말 결론이 나왔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나는 결혼을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리겠지. 지금의 직장에서 나는 좋은 남편,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을까? 될 수도 있다. 세상에는 많은 다양한 직업들이 있고, 사람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고 있다. 어떤 직업이나 어떤 사람이나 어떤 상황도 함부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다만 '가정'이라는 것에 있어서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중심가치는 뭘까? 바로 '시간'이다. 함께 하는 '시간'이야말로 가정을 작은 천국으로 만들 수 있는 열쇠가 아닐까 싶다. 사랑과 노력과 같은 것들은 뒤로 하고서도 말이다. 누군가는 '좋은 가정'을 위한 중심 가치가 '돈'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시간'이다. 저녁이나 주말에 시간이 조금 있고, 일을 하며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직업이 무엇이 있을까? 그리고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그리고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기에 부담이 덜 한 것이 무엇이 있을까? 지금의 수입의 절반 이하가 떨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앞서 언급한 조건을 충족시키는 직업이 무엇이 있을까?'


 소방관


 밤 12시가 다 되어갈 무렵, '소방관'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끝으로 이부자리로 들어가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직장 선배에게 이야기를 꺼냈다. 

 "저... 12월 31일까지 하고 그만두려고요."

 "으응? 왜?? 잘하고 있잖아. 다른 지점에 매장도 새로 내려고 하는데, 너 나가면 안 돼. 다시 생각해 봐."

 "죄송합니다... 생각 많이 해봤는데, 확신이 들어서요."

 "공무원 되면 월급도 지금보다 훨씬 적은데? 괜찮겠나? 네 지금 한 달에 얼마 벌어?"

 "음... 100만 원 조금 더에... 인센티브요"

 "너는 인센티브도 많이 받잖아. 나중에 가게 차려서 나가면 한 달에 천만 원은 벌텐데. 괜찮나?"

 "네! 선배! 돈은 아쉬울 수도 있지만 더 중요한 게 뭔지 깨달았아요."

 "그리고 너 공부... 그거 괜찮겠나? 다들 어렵다던데. 공부도 거의 안 해봤잖아"

 "죽기 살기로 해봐야죠!"


 선배는 확신에 찬 나의 눈을 바라보며 안타까워하면서도 더 이상 말리지 않았다. 그동안 알고 지낸 많은 사람들은 예상대로 우려와 걱정 어린 시선을 보내왔지만, 나는 힘들게 내린 결단인 만큼 마음을 굳혔다.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심리학자도 사회학자도 아니다. 책을 많이 읽은 것도 아니고, 내가 알고 있는 것에 대한 확신이 크게 없다. 다만, 경험으로 빗대어 이야기해 보자면 '불안'은 자기 자신을 제대로 정의하지 못하는 데에서도 온다고 생각한다.


 빈 상자 속에 손을 넣어 무엇이 들어있는지 맞춰보라고 하던 TV 프로그램을 알 것이다. 출연자는 그 속에 무엇이 들어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심장이 뛰고 땀을 흘리며 무서워한다. 불안이다. 반대로 상자 속에 무엇이 있는지 안다면, 손을 넣지 않는 선택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순간적인 긴장은 할 수 있으나 감정으로써의 불안으로 발전하지는 않는다. 


 사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잘하고 좋아하는지, 무엇을 싫어하는지 명확하게 알고 있다면 하루에도 몇 번씩 해야 하는 선택의 순간에 그나마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좋아하는 걸 붙잡을 줄 알고, 내가 약한 부분은 포기하거나 성장시키려고 노력할 것이다. 얼마나 재미있는 인생인가. 


 하지만 안타깝게도 많은 청년들이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을 소홀히 하고 있다. 도덕이나 인류애와 같은 필수 중심가치를 섭취할 기회가 적기 때문이다. 교육이 사라지고, 독서가 없어지고 있다. 책을 통해 가치를 발견하기보다는 SNS를 통해 세상을 배운다. '나'에 대한 관심보다는 '남'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진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비교해, 더 나은 내일을 꿈꾸기보다는
 더 나아 보이는 '남'과, 부족해 보이는 '나'를 비교해
나의 자존감을 더욱 깎아내리고 있다.

 불안과 우울이 반복되는 고통을 겪고 있는 분들께 조심스럽게 이 말을 건네고 싶다. 마음을 괴롭히는 것들을 과감히 끊어내고,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부터 시작하시라고 말이다.




 멋진 차를 끌고 큰 저택을 꿈꾸던 어느 20대 청년은 바닥을 찍고 쓰디쓴 지하수를 맛본 후 다시 지상으로 올라왔다. 땅을 딛고 서 있을 수 있음에 감사하고, 코 끝으로 들어오는 공기도 그저 감사한 하루를 보내며 하루하루를 충실하게 살아왔다.


 때로는 다시 넘어지고 일어나고를 반복했지만 그가 깊숙이 박아놓은 중심가치는 쉽게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신체에 남은 불안장애와 싸우고 있지만 그는 당당하다. 그가 가진 고통과 상처는 그가 앞으로 만날 거친 파도 속에서 사용될 칼과 방패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모년 12월 31일, 나는 어깨를 짓누르던 모든 짐을 내려둔 채 소방관이 되기 위해 고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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