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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랭이 Aug 03. 2023

초보아빠라 두 번째 열경기도 적응이 안 됩니다

열경기를 예방하지 못한 아빠의 반성문

오늘 잠시 아이를 봐주러 엄마가 집에 왔다. 저녁에 나와 아내가 집에 없어 2시간 정도 봐주기로 한 것이다. 달콩이가 24개월이 다 되어 가니 이제 말도 잘 알아듣고, 의사표현도 잘한다. 할미와 큰 트러블만 없으면 원만히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유달리 활동적인 달콩이지만, 요즘 아기상어나 랄라(뽀로로)도 잘 보니 잠시라면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한 가지 걸리는 것은, 미열과 콧물이 있었다는 것.



문제의 시작


저녁 9시 즈음 이제 집에 가려고 하는 순간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달콩이가 좀 이상한데? 바로 와 줄 수 있어?"


당황한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전에 그때랑 비슷한 것 같아"


https://brunch.co.kr/@kiii-reng-ee/1



올해 초 처음으로 열경기를 했었는데, 엄마가 많이 놀란 것 같았다. 짐을 챙겨 곧바로 집으로 달려갔다. 가서 보니 이마에는 열패치를 붙이고 소파에 누운 채 눈은 반쯤 감겨 아기상어를 보고 있었다. 걱정만 해야 하는데 순간 귀엽다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그 순간 부들부들 떠는 모습이 관찰되었다. 말을 걸면 두 배 세 배로 대답하는 달콩이인데, 말을 걸어도 전혀 대답을 하지 못했다.


열이 있을 때 안으면 열이 전달되어 위험할 수 있어 안지 않으려고 했는데, 방으로 이동시키려고 안아보니 갑자기 눈이 살짝 돌면서 한 번 쳐지고 말았다.




하는 수 없이 또 119 안전센터 직원들을 불렀다. 다른 응급상황도 많을 텐데 이럴 때마다 이웃 시민들이나 직원들한테 너무 미안하다. 내가 조금 더 잘했으면 이런 소방력 낭비는 없을 텐데...라는 생각을 잠시 하며, 짐을 꾸렸다.



회복되는 달콩이


아이가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지난겨울, 온갖 검사와 바늘들로 인해 공포심이 생겼는지


"갈 거야~ 갈 거야"를 외치며 정신을 차렸다.


울어대는 달콩이를 보며 한 편으로는 다행이라 생각하며, 의료진과 구급대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밤 11시가 다 되어 아이의 체온을 낮추기 위해 옷을 겨 주고 목 부분을 계속 닦아 주었다.


구급차를 처음 타 본 나의 엄마, 북극곰은 거의 실신 직전이었다. 구급차의 뒷 자석이 생각보다 어지러우셨던 것 같다. 헛구역질을 하며 식은땀을 흘리는 북극곰은, 저도 힘들 텐데 달콩이의 체온을 낮추기 위해 계속 곁에 있어 주었다.


나는 주기적으로 가 채온을 재고 엄마를 보조해 주었다.


밤 12시... 잠든 달콩이와 잠시 쉬고 있는 북극곰을 뒤로하고 방으로 갔다. 북극곰을 깨워 집으로 보내주고 싶지만 조금이라도 눈을 붙이게 하고 싶었다. 새벽에 다시 일을 나가야 하는 북극곰이 안 쓰러웠다.


침대 위로 올라가 조용히 기도를 시작했다.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체온계가 고장 났을 때 빨리 다시 샀었어야 했는데... 열관리를 제대로 못한 내 책임이야...'

'덥다고 에어컨을 켰다 껐다 하니 감기에 걸리지... 내 책임이야...'


달콩이가 이번이 이렇게 아팠던 것은 분명 나의 잘못이 큰 것 같았다. 나보다 아이를 더 위한다면서도 정작 기본적인 부분을 많이 놓친 무능함에 꿀밤을 한 대 쥐어 박고 싶었(지만 아플 것 같아서 그러지 않았다)다.


새벽 2시 30분이 되자 달콩이가 갑자기 일어났다. 흔들어도 깨지 않았는데 꿀잠을 잔 것인지, 갑자기 텐션을 올리기 시작하더니 춤도 추고 말씀도 많이 하셨다.


체온을 재어 보니 36.7도!!!


엄마와 난 달콩이를 가운데 두고 서로 쳐도 보며 말없이 웃었다.

새벽 5시... 달콩이를 겨우 다시 재우고 엄마는 집으로 보내드렸다. 새벽 5시부터 택시 일을 나가셔야 되는데, 무척이나 미안했다...


새벽 7시 반, 달콩이가 "아빠~"하고 밝은 목소리로 나를 깨웠다. 기쁜 마음에 아이를 번쩍 안아 올리니 열이 다시 펄펄 끓었다. 38.9도. 놀래서 다시 해열제를 먹이고 냉마사지를 시작했다.


아침 8시가 다 되어서야 열은 다시 37.5도로 떨어졌고, 첫 차를 타고 황급히 달려온 아내가 도착했다.

아내와 나는 서로 인수인계를 하고 나는 다시 24시간 근무를 위해 출근, 아내는 다시 육아를 시작한다.




이번 일은 자연재난이 아니라 인재였음을 깨달았다. 미숙한 준비와 안일한 대처가 만든 인재(人災) 말이다. 앞으로 더 많은 이벤트들이 닥칠 것인데 더 마음을 단단히 먹고 철저히 준비해 예방을 잘해야겠다.


아빠가 되는 것은 쉽지만

좋은 아빠가 되는 것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으며,



미뤄왔던 체온계와 온도계 구입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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