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날리기와 글 날리기의 차이
어렸을 때 설 날만 되면 시골에 연을 항상 챙겨 갔었다. 딱딱하게 굳어버린 논 위를 뛰어다니면서 연을 날리면 추위도 금방 잊고, 내가 마치 연이 된 것 마냥 하늘 높이 올라가는 기분도 들어 연 날리기를 참 좋아했다. 연이 땅에 떨어지려고 하면 실을 내 쪽으로 잡아당겨 다시 오르게 만든다. 탄력을 받아 하늘 높이 올라가면 그대로 풀어 준다. 그럼 연은 끝도 모르고 올라가 이내 점이 되고 만다. 그렇게 고점을 찍던 연이 가끔 아예 내 손을 벗어나기도 한다.
날아가버린 연이 땅에 떨어지면 연행해 물어보고 싶었다. 왜 내 손을 떠났냐고. 연은 이렇게 대답할 것 같다.
"준비가 미흡했어. 오늘같이 바람이 매서운 날에는 더 튼튼한 실을 준비했어야지. 그리고 완급조절도 부족했어. 빳빳하게 텐션을 유지해 높이 날리는 것도 좋지만 실을 감았다 풀었다 하면서 적당한 텐션을 유지했었어야 해. 내가 날아가 버린 이유는 바로 너의 미숙한 조작 때문이라고 할 수 있지. 한 번 더 기회를 줄 테니 제대로 한 번 날려봐"
뮤지컬 공연 대기실에 쭈그려 앉아 현재 내가 느끼는 그 감정들을 브런치스토리 서랍에 차곡차곡 적어 나가고 있었다. 꽤 철저한 자료조사를 통해 밀도 있는 글을 적어나가는 중이었다. 한참을 쓴 끝에 글이 어느 정도 완성되었고 발행을 앞두고 있었다.
'음... 여기에 영상이 들어가면 너무 좋겠어. 영상을 하나 담아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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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을 선택하고 다시 브런치 화면으로 돌아온 나는 그 자리에 초음속으로 얼어버린 얼음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글의 10분의 1만 남기고 모두 지워진 것이다.
내가 추가하려고 하는 영상에 "하늘이시여~ 하늘이시여~"라고 하는 노래가사가 있는데, 딱 지금 나의 마음을 대변하는 곡조여서 슬픔은 더욱더 짙어져만 갔다.
아무 말 없이 화면을 바라보고 있는데, 한 3분 정도가 지났을까? 자가치유를 위해 지금 이 상황의 의미를 억지로 쥐어 짜내었다.
그리고 마침내 결론에 이르렀다.
1. 글은 나에게 겸손을 가르치기 위해 떠났다.
오래간만에 자료조사 좀 하면서 글이 술술 써지니까 내가 괜히 우쭐해하는 것을 글이 알았던 것 같다. 오만(傲慢)이 슬슬 올라오는 것을 느끼자, 글이 내가 조금 더 겸손하기를 원하는 마음에서 날아간 것 같다.
2. 글은 내가 준비를 더 철저히 하기를 원했다.
글은 그 종류에 따라 모습이 조금씩 다르다. 어떤 글은 수필이고, 어떤 글은 소설이고, 어떤 글은 시가 될 수도 있다. 글의 종류에 따라 쉽게 써지는 것이 있는 반면, 기고문처럼 정확한 자료조사가 필요한 것도 있다. 앞서 날아간 글은 자료조사가 조금 필요한 글이었다. 공연 대기실에서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면서 했던 나의 자료조사 방법이 마음이 들지 않았던 것 같다.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쉽게 써지는 것은 없다.
3. 글은 자기에게 더 집중해 주기를 바랐다.
글을 쓰는 장소나 시간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발행 단계에서는 신중해야 한다. 아무리 내가 잘 썼다고 우쭐해해도 막상 발행을 하고 나면 이불 여러 번 걷어 찰 만한 문장들이 많이 보인다. 집에 남아나는 이불이 없을 정도다. 발행 전엔 늘 신중하자.
4. 글은 내가 마지막까지 신중하기를 원했다.
그래서 신중해야 한다. 서랍 속 일기는 나만 보니까 괜찮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브런치스토리라는 최고의 글쓰기 플랫폼에 나의 저급한 문장들이 예의 없이 쏟아진다면 글을 읽는 분들의 마음을 다치게 할 수도 있다. 위로를 드리기 위해 글을 쓰고 있는데, 위로를 해 드려야 하는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 결국 글이 발행되어 다른 사람들에게 읽히는 것이 되므로 마지막까지 신중해야 한다.
글 쓰기가 마냥 재미있어 몇 달째 꾸준히 쓰고 있다. 브런치스토리를 만나기 전과 후의 나의 삶이 바뀌었다고 할 정도로 아주 즐거운 취미생활이 생겼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는 만큼 발행 전에는 늘 신중해야겠다고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조금은 불편할지 몰라도 다른 메모장에 쓰고 옮겨 담는 버릇을 들여야겠다.
그리고 글이 더 이상 나를 떠나지 않도록 글의 가르침을 잊지 않고 늘 가슴에 품고 살아야겠다.